주간동아 272

2001.02.22

강경파 샤론, 팔레스타인 목 조른다

팔레스타인도 경제난으로 ‘이판사판’ 투쟁수위 높일 듯 … ‘이-팔’ 사태 격화 예고

  • <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입력2005-03-21 15: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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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파 샤론, 팔레스타인 목 조른다
    이스라엘 2·6 총리선거 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유혈충돌은 그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도살자”로 일컬어온 아리엘 샤론이 당선된 까닭에 분노는 더 깊고 크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샤론의 당선이 “이스라엘과 중동지역에 재난이 될 것”이란 시각을 지니고 있다.

    팔레스타인 2대 무장세력이라 할 수 있는 파타(Fatah)와 하마스(Hamas) 지도자들은 인티파다(intifada·봉기)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스라엘인들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샤론에게 타협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 셰이크 아메드 야신은 “이스라엘 총리가 누구든 간에 침략에 저항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 말했다. 하마스는 지난날 이스라엘인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자살폭탄 공격을 더 세차게 꾀할 가능성이 크다. 중동의 앞날엔 긴장만이 깔려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아리엘 샤론은 공적 1호다. 지난 10월 말 팔레스타인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 앞에서 그의 이름을 꺼내지 말라”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지난 9월 이래 지금껏 400명에 이르는 사망자를 낳은 충돌도 따지고 보면 샤론이 예루살렘의 회교사원에 발을 들여놓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같은 팔레스타인의 흉흉한 민심을 반영, 파타는 이스라엘 총리 선거 결과와 관련한 성명에서 “샤론은 그의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경파 샤론, 팔레스타인 목 조른다
    말이야 제법 기세등등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매파’라 알려져온 샤론정권의 등장은 이만저만 심각한 일이 아니다. 에후드 바라크 전 총리는 역대 노동당 정권의 중도좌파적 성향에 따라 팔레스타인에 상대적으로 타협적인 자세를 보여왔다.

    반면 샤론의 리쿠드당은 말이 우파이지, 유대정착민들과 보수적 종교집단의 흐름인 극우 극단적 시오니즘 세력에 지지기반을 두고 있는 극우정당이라 보는 것이 정확하다. 중동평화회담 과정에서 바라크 전 총리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게 서안지구 95%, 가자지구 100% 주권행사를 제안했던 반면, 샤론 총리는 그 절반에 그치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만 봐도 큰 차이다 (현재 팔레스타인의 자치구역은 서안지구 42%, 가자지구 90%에 머물고 있다). 샤론은 그동안의 선거유세 과정에서 1993년의 오슬로 평화협정 이후 진행돼온 일련의 대화를 부정해왔다. 샤론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벌이고 있는 인티파다가 계속되는 한 평화회담이란 있을 수 없다고 못박는다. “이스라엘 시민의 안전이 100% 보장된다면, 그때 가서 평화회담에 응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50년 넘게 눌려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눈에 그같은 샤론의 발언은 한낱 정치적인 수사일 뿐이다. 더욱 강화된 무력순찰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강공책으로 밀어붙이는 한편 도로봉쇄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팔레스타인 경제의 숨통을 죄면서 끝내는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게 샤론의 전략으로 비친다.

    이렇다할 산업기반이 없는 팔레스타인으로선 이스라엘이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다. 지난 9월 인티파다가 일어나기 전에는 12만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쪽으로 건너가 노동력을 제공하고 생활비를 벌어 썼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이 탱크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접경지역 도로를 막는 바람에 하루 임금 손실만도 35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1인당 구매력이 연간 2000달러를 밑도는 가난한 팔레스타인 지역의 젊은이들은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가 마땅치 않다. 기껏해야 재래식 기술에 의존하는 중소 제조업체 정도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실업률은 50%를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의 충돌로 이스라엘 경제도 어려워진 게 사실이다. 이스라엘은 90년대 들어 전통적인 농업-경공업에서 첨단기술 분야 중심으로 경제를 재편, 해마다 15∼20%의 고성장을 거듭해왔다. 1999년 1인당 구매력이 1만8300달러로 우리나라보다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지난 가을 이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티파다에다 이스라엘의 주요 수출국(40% 비중)인 미국경제가 하강곡선을 그림에 따라 경제사정이 어려워졌다. 올해 경제성장은 4~4.5%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팔레스타인 노동력에 기대왔던 농업과 건설업이 타격을 입고 있다. 서안지구와 가자지역의 팔레스타인 노동자 12만여명이 도로봉쇄로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노동력 대신 8.8%(1999년)에 이르는 이스라엘 실업군으로 대체하면 문제가 없다는 분석이다.

    미국 신용평가기관 무디스의 분석에 따르면, 이스라엘 경제에 대한 미국 불경기의 여파가 팔레스타인과의 충돌에서 비롯된 그것보다 훨씬 클 것이란 분석이다. 이스라엘 경제가 이미 첨단산업 위주로 재편된 상황이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티파다 영향을 그만큼 덜 받는다는 분석이다. 최근의 충돌로 관광객들이 절반 가까이(45%)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이것도 이스라엘로서는 큰 부담이 아니다. 관광산업이 이스라엘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지나지 않는다. 이래저래 최근의 충돌로 팔레스타인 사람들만 실직과 가난으로 고통이 가중될 뿐이다. 아랍형제국들의 지원도 소리만 요란할 뿐 실질적인 도움이 못 되는 형편이다.

    강경파 샤론, 팔레스타인 목 조른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미국에 기대를 하기도 어렵게 됐다. 2월 들어 진용이 갖추어진 부시정권의 중동정책 담당자들은 친이스라엘 일색이다. 국무성 서열 3위인 정치담당 차관 마르크 그로스만(전 터키대사), 리처드 하스 정책기획(대사급, 전 부르킹스연구소 부소장), 딕 체니 부통령의 중동분야 보좌관 존 한나, 미 국무성 근동(Near East) 담당 차관보 내정자 윌리암 번스(현 요르단 대사)들이 그러하다.

    실업에 따른 경제적 고통과 정치현실에 대한 절망감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이스라엘 강경투쟁으로 더욱 눈길을 돌리게 하는 요인으로 보인다. 필자가 서안지구 북쪽 도시인 나블러스에 갔을 때 만난 한 50대 난민은 “알라신이 지금 우리에게 계시하는 것은 오직 투쟁”이라며 여윈 손목을 허공에 내둘렀다. 극우강경파인 샤론정권이 들어선 지금 중동에 더 큰 긴장사태가, 그것도 장기간 이어질 것이다. 그 긴장이 더 많은 팔레스타인 희생자들을 담보로 하는 지구전으로 그치지 않고 주변국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이스라엘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이웃 나라 레바논, 또는 시리아와의 국지전, 또는 전면전이다. 특히 레바논과의 국지전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남부 레바논 접경지대에는 수천명에 이르는 시아파 무장조직인 헤즈볼라 세력이 이스라엘군과 대치중으로, 언제 무력충돌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샤론은 지난 1982년 국방장관으로 있을 당시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침공을 기획한 장본인이다. 집권자들이 통치술의 일환으로 애용하는 고전적인 수단의 하나가 바로 전쟁이다. 이스라엘 안에서 여러 정치세력이 저마다 목소리를 낼 경우, 정략적으로 레바논 또는 시리아와의 일전도 마다하지 않을 인물이 샤론이다. 300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난은 샤론 집권 기간 조금도 나아질 전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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