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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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장관의 “날 좀 보소~”

잇단 돌출 발언은 관심끌기용?… 여권 인사들도 “김대표 체제 이후 초조함의 발로” 추정

  • < 윤종구/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kmas@donga.com>

    입력2005-03-21 13: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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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장관의 “날 좀 보소~”
    “‘나좀 봐주소’가 아니겠느냐.” 언론사 세무조사에 때맞춰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한 노무현(盧武鉉) 해양수산부장관에 대한 민주당 한 관계자의 촌평(寸評)이다. 그는 노장관의 최근 언행은 ‘촌평’의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사실 노장관의 발언은 여권 내에서도 엉뚱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언론사 세무조사가 정국의 핫이슈로 떠오르기는 했지만 해양수산부 장관이라는 직책이 언론이나 세무조사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기에는 너무도 부적절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2월7일 해양수산부 출입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정권이 언론과의 전쟁 선포도 불사해야 한다”고 선언했던 노장관의 발언은 일회성 선언에 그치지 않았다. 이틀 뒤인 9일에는 인터넷신문인 ‘오마이뉴스’와 전화인터뷰를 갖고 “‘조폭적 언론’이라는 말에 공감한다”는 등 ‘튀는 발언’을 계속했다.

    뿐만 아니다.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여권의 공식 입장은 법인에 대한 정기세무조사일 뿐 아무런 정치적 배경이 없고, 또 있을 수 없다는 것인데도 노장관은 “의도 없는 행위가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12일 MBC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는 “언론개혁의 본질은 몇몇 수구 족벌언론의 문제이며 그 이외의 언론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고 ‘질주’했다.

    노장관의 ‘튀는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깝게는 지난해 말 김중권(金重權) 대표가 서영훈(徐英勳) 전 대표에 이어 민주당 대표로 취임하자마자 김대표를 향해 “기회주의자는 포섭대상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지도자는 될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려 그렇지 않아도 ‘권노갑(權魯甲) 2선 퇴진 파문’으로 극심한 분열상을 겪고 있던 민주당을 들쑤셔놓기도 했다.



    노장관이 불쑥 불쑥 터뜨리고 있는 ‘튀는 발언’에는 그러나 두 가지 주목할 대목이 있다.

    먼저 발언의 형식이나 수위, 그리고 타이밍을 제쳐놓고 본다면 핵심화두는 상당수 여권 인사들이 내심 내뱉고 싶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과의 전쟁’ 발언도 “이번에 언론을 잡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보다도 사실은 언론이 더 문제다”는 여권 내의 뿌리깊은 불만을 대신 표출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김중권 기회주의자’ 발언 역시 비슷한 맥락이었다. 남궁진(南宮鎭) 대통령정무수석이 공개적으로 김대표의 ‘무임승차론’을 언급할 만큼 여권 내에는 김대표 비토그룹이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노장관의 발언이 유독 김대표체제 출범 이후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것은 뭔가 ‘초조함의 발로’ 같다는 게 여권 핵심인사들의 관전평이다.

    노장관을 지켜본 한 핵심인사는 “김대표 취임 이후 노장관은 확실히 초조해진 것 같다. 물론 김중권씨를 대표로 인정할 수 없는 노장관의 자존심도 작용했겠지만 날이 갈수록 ‘영남주자=김중권’이라는 등식이 확산되고 있는 데 대해 초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장관의 한 측근은 “국무위원이라는 직책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해서 해양수산부 이외의 일정은 잡기도 힘들다”면서 “(대권)경쟁자는 벤츠 타고 가는데 우리는 티코나 타고 있으니…”라고까지 말했다.

    노장관에 대한 여론조사 지지율도 전 같지 않다는 게 조사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노장관의 초조함은 아무래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차기 대권구상이 점차 자신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는 듯하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 같다. DJP구도는 이미 차기 구상의 기본전제처럼 돼있다. 민국당 장기표 최고위원이 전망한 것처럼 DJP구도, 특히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가 차기 후보의 ‘칼자루’를 쥐는 구도가 계속되면 노장관은 97년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 때의 박찬종(朴燦種) 전 의원처럼 ‘들판의 외로운 늑대’ 같은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노장관에게는 사람도, 돈도 모여들지 않는다는 전언이다. 그래서 더욱 더 ‘나 좀 봐주소’를 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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