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2

2000.09.21

北 무역일선에 개방파 대거 포진

남한 경제개발 패턴에 큰 관심…제도적 개혁 뒤따를지 주목

  • 입력2005-06-21 10: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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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 무역일선에 개방파 대거 포진
    북한은 금년 8월15일 ‘정부-정당-단체 연합대회’에서 중요한 ‘공동결의문’을 채택했다. 이 결의문은 “북과 남에 존재하는 두 제도를 그대로 용납하고 인정하는 기초 위에서 공존-공영-공리를 도모하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나갈 것”이라면서 “우리 인민이 창조하고 발전시켜온 우수한 경험과 기술, 고유한 전통을 북과 남이 함께 향유하고 더욱 발전시킬 때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강국이 될 수 있다”고 남한과의 공영을 위한 경협 의지를 밝혔다.

    북한의 이러한 자세 변화는 이미 90년대 초반 동구권이 붕괴하고, 북한의 경제난이 심각해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북한은 변화하고 있는 세계경제질서에 적응하기 위하여 수출증대를 위한 무역 분권화를 추진하였고, 1998년 3월에는 무역법을 제정하여 지금까지의 구상무역방식의 한계에서 탈피해 자본주의적인 신용거래방식에 적응하고자 하는 노력을 해왔다.

    뿐만 아니라 98년에는 대외경제위원회를 폐지하고 내각에 무역성을 신설함으로써 일반무역업무와 외국과의 합영 및 대남 교역을 담당하는 기구들은 대폭 개편, 기존의 무역질서의 혼란과 문제점들을 해소하고, 무역에 관한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무역성의 기능을 강화시켰다.

    인물 측면에서도 구본태 구성복 김동명 김룡문 김봉익 임태덕 등 주로 50대의 젊은 관료들을 기용,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실무적인 내각 편성에 중점을 두고자 하였다. 이들은 해외에서 유학을 하였거나 투자설명회 참석 등으로 외국을 자주 돌아다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많이 접할 수 있었던 인물로서 대부분 개방성향이 강한 사람들이다.

    특히 무역성의 신진관료들 중에서 강정모 무역상, 김봉익-임태덕-김룡문 부상과 경제협조관리국장 김용술, 민족경제협력연합회장 정운업 등은 대남 경협에 상당한 실무를 쌓은 개방적 성격이 강한 인물들로, 향후 남한과의 실무회담 및 경제사절단 그리고 경제관련 협상에 자주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을 한 사람씩 살펴보면, 강정모는 현직 무역상으로 남한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직책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외무역의 실질적 책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50년대 초반에 구동독지역인 로스토크(Rostock)에서 유학하였고, 81년부터는 동독대사관에서 무역참사관으로 지내다가 93년부터 독일 주재 북한이권보호소(이익대표부) 소장을 지낸 바 있다.

    김봉익은 평양 출생으로 무역은행 부장과 조선국제무역은행 총재를 역임한 금융분야의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94년 12월부터 남한과 위탁가공 업무를 취급해온 삼천리총회사 총사장을 지냈고, 95년 10월부터는 남북교역의 북측창구인 광명성총회사 총사장을 지냄으로써 북한 무역성 내에서 주로 대남교역 분야를 다루어온 인물이다. 98년 4월부터 대외경제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되었고, 그해 9월에 무역상 부상으로 발탁되었다.

    임태덕(54)은 평양 출생으로 김봉익 부상과 함께 대남사업의 전문가다. 75년 김일성종합대학교 경제학부 졸업 후 대외경제사업부와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현재는 무역성 부상으로 재임중이며, 상당히 분석적이고 침착한 성격의 보유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임태덕은 1992년에 두만강개발계획관리위원회 회의 참석차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다.

    김룡문(52)은 5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북한 무역정책의 실질적인 입안자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1991년부터 싱가포르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무역참사를 지내면서 동남아시아 각국의 나진-선봉 지대 투자유치에 노력을 기울인 바 있으며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98년부터 대외경제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발탁되었고 현재는 무역성 부상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무역성 부상직 외에도 조선국제무역촉진위원회 위원장직도 겸하고 있다.

    김용술은 경제협조관리국장으로 해외동포들과 합영 합작 가공무역 등 경제사업 및 관련 대외사업을 전담하고 있다. 특히 재일 조총련과의 합작사업은 주로 김용술 국장이 관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운업(59)은 평남 회창 출신으로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졸업, 89년 6월부터 금속 및 기계수출업 총회사 사장을 지냈으며, 89년 10월부터 평양기계상사 총사장을 역임하였다. 92년 7월에는 삼천리총회사 사장직에 있으면서 남북경협에 참여하기 시작해 서울을 방문한 적도 있다. 95년 3월부터 개선무역총회사 총사장을, 98년 6월부터 지금까지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회장직을 맡고 있다.

    남한과의 교역, 위탁가공사업, 대북 투자유치 등은 조선아세아태평양위원회(위원장 김용순) 산하의 민경련이 주도하고 있어 앞으로 정운업의 활약이 기대된다. 정운업은 우리에게 현대금강산관광사업을 성사시킨 북측의 파트너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며, 지난 정상회담 기간인 6월14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남북한 대표단 공식면담에 민족경제협력연합회 회장 신분으로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남북 간의 경제협력은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가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아태평화위 내에는 전문경제관료의 수가 적어서 제도적 장치를 위한 실무자급 회담에는 주로 경제부서의 담당관료가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경제사절단의 경우는 그 동안 남한과의 경협을 담당해왔던 민경련이나 아태평화위의 인물, 특히 광명성 총국의 관료들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남 경제사업은 사실상 노동당의 통일전선부와 국가보위부에서 관장하고 있어서 이들의 통제하에 이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따라서 앞으로 남한에 올 북한 경제사절단엔 노동당과 내각의 경제관련 관료들도 포함될 것으로 예측된다.

    북한은 남한과의 경제협력 확대를 통해 경제회생을 도모하고자 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99년 말부터 연합기업소를 대대적으로 개편함으로써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틀 내에서 기업소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정책적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계획경제의 성향을 강조하면서도 생산성 향상을 위한 다방면의 노력과 남한자본 유치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대남경협 차원에서의 변화는 김정일 위원장의 적극적인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김위원장은 70년대 중반부터 경제정책에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경제부문의 균형적 관리보다는 중요한 산업이라고 평가되는 분야에 대해서 현지지도와 투자자원을 집중 지원해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위원장은 평양컴퓨터센터 평양프로그램센터 평양집적회로공장 중화승용차공장 등 여러 기업들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김위원장의 경제정책 성향으로 볼 때 경제정책의 중점은 앞으로도 전자 자동차 소프트웨어 등 첨단산업에 집중될 것이며, 따라서 이 분야에서의 남북경협이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김정일 위원장은 99년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의 면담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남한 경제개발에 상당한 관심을 보여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사실로 보아 김위원장은 남한의 경제발전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고, 또한 남한의 경험을 토대로 경제개발을 추진해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서구 선진국의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남한의 경제체제보다 더 건전하게 형성되었음에도, 북한이 굳이 남한의 경제발전 모델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남한경제가 짧은 시간 내에 급성장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남한은 수출주도형 경제발전 모델을 취해왔고, 국제분업에 따른 이익을 극대화해왔다.

    그러나 제도적 개혁이 뒤따르지 않는 북한식 사회주의 경제체제하에서의 남한식 경제발전 모델의 적용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남한이 국가 주도하에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사유재산의 보장과 경쟁의 자유, 안정된 화폐를 보장하는 시장경제적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따라서 사회주의적 재산권 질서하에서 남한식의 경제개발을 시도한다는 것은 ‘착각’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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