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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특집|닮은꼴 한-일 서로 배우기

“뭘 잘못했냐” 뒤틀린 역사관 여전

침략 부인 등 왜곡된 중학교 역사교과서 검정 신청…피해국가 또 유린

“뭘 잘못했냐” 뒤틀린 역사관 여전

“뭘 잘못했냐” 뒤틀린 역사관 여전
최근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라는 일본 학술단체가 만들어 문부성에 검정을 신청한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오늘의 한일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역사교과서는 일본의 침략사실을 전면 부인한다. 일본이 뭘 잘못한 게 있느냐는 식이다.

한국과 일본을 얘기하며 ‘과거’를 건너뛸 수는 없다. 그러나 해방된 지 55년이 지나며 한일간의 관계는 과거를 들먹이지 않아도 그럭저럭 유지되는 시점까지 왔다. 한국의 증오심이 무디어지기도 했고 일본이 애써 과거를 건드리지 않으려 한 덕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교과서는 오히려 일본이 고개를 숙여온 것이 잘못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들으면 한국이 일본에 너무 빨리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징용도 강요한 것 아니다” 황당한 주장

내용을 보자. 교과서는 일본이 개전 초기에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에서 미국 영국 네덜란드와 싸워 승리를 거둔 데에 대해 “이것은 수백년에 걸쳐 백인 식민지 지배에 신음해 온 현지인들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에 얻은 승리였다. 이 일본의 승리는 동남아시아와 인도인, 더욱이 아프리카인에게까지 꿈과 용기를 줬다. (중략) 일본의 전쟁목적은 자존자위와 아시아를 구미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고, ‘대동아 공영권’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교과서는 이어 “일본군의 남방 진출을 계기로 일본 패전 후 아시아로부터 아프리카까지 유럽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의 독립파고는 멈출 줄 몰랐고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지도는 일변했다”고 썼다. 이 기술에 따르면 일본군은 아시아의 ‘해방군’이었다.



징용과 관련해서는 “대동아 전쟁의 전황이 악화되면서 국내체제는 더욱 강화됐다.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징용(식민지였던 대만과 조선에도 적용됐다)이 이뤄졌고…”라고 기술했다. 일본에서도 징용을 실시했으므로 대만이나 조선에만 부당하게 강요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 교과서는 미군이 공습과 원폭투하를 통해 얼마나 많은 일본인을 희생시켰는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면서도 일본이 아시아에 안겨준 피해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 소련 스탈린의 부르주아 처형, 중국 마오쩌둥의 만행 등은 제노사이드(인종학살)에 해당한다고 지적하면서, 일본은 독일과 동맹을 맺고 있으면서도 인종차별 반대라는 국가방침에 따라 유대인을 도와줬다고 기술했다. 극동국제군사재판의 당위성을 부정했고 중국 난징(南京) 대학살도 의문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 교과서를 만든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96년에 결성됐다. 이 단체는 일본이 과거에 대해 속죄하는 것은 ‘자학사관’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단체의 회장인 니시오 간지(西尾幹二) 전기통신대 교수는 지난해 10월 ‘국민의 역사’라는 책을 썼다. 이번에 검정을 신청한 교과서의 원본에 해당되는 일반인용 역사책이다. 이 책은 수십만부가 팔려나갔다. 그만큼 일본에는 이런 유의 사고방식에 동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 교과서는 10월경 검정이 끝나 내년 3, 4월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 합격된다면 2002년 4월 신학기부터 일선 중학교에서 사용된다. 다른 역사교과서도 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학교가 이 교과서를 채택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채택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교과서를 만들려는 그룹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아직 ‘과거청산’이 안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자학사관’을 탈피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피해국가를 또다시 유린하는 ‘타학사관’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주간동아 2000.08.24 248호 (p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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