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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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이어진 ‘발라드의 힘’

  • 입력2005-09-05 1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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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세기 이어진 ‘발라드의 힘’
    스탠더드 팝, 이지 리스닝, 어덜트 컨템포러리(Adult Contemporary), MOR(Middle Of the Road) 같은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는 대중음악의 영원한 주류 문법이 요즘 우리가 흔히 발라드(Ballad)라고 부르는 음악이다.

    ‘발라드’라는 용어는 서구 음악사에서 유구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 중세 가톨릭 교회 시대엔 교회 미사음악에 대항하는 세속의 사랑 노래를 의미하기도 했고, 쇼팽 피아노곡 발라드에서 알 수 있듯이 고전-낭만주의 시대에는 ‘이야기’(narrative)의 서사구조를 지닌 음악을 의미하기도 했다.

    발라드가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뜻으로 정착된 것은 음악산업이 막 형성되던 19세기 말~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의 이른바 틴팬앨리(브로드웨이의 거리명) 중심으로 음악산업이 일어나면서 뮤지컬이나 단독 출판되는 노래 중 사랑에 빠진 주인공들이 부르는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를 발라드라고 지칭하게 됐다.

    우리 근대사에 이와 같은 서구적 발라드가 유입된 것은 전쟁으로 황폐했던 50년대였다. 스탠더드 팝의 제왕 프랭크 시내트라, 왈츠의 여왕 패티 페이지(패티 김의 애칭이 바로 여기에서 탄생했다) 등의 미국 발라드 음악들이 등장했고, 당시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가 그러했듯 우리의 음악인들도 미8군 무대의 자장으로 빨려들어갔다.

    이렇게 시작된 한국 발라드는 고도성장 시기의 70년대에 김정호나 이장희 김세환 같은 청춘스타들을 거쳐 80년대 조용필과 이문세 변진섭을 거치며 단연 주류 장르로 군림하기에 이르렀다.



    발라드의 위용은 댄스뮤직의 질풍노도기인 최근에도 조성모라는 슈퍼스타를 낳으면서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데뷔 앨범의 좌절을 딛고 급속히 부상하고 있는 ‘어제처럼’의 J(제이) 역시 신세대 발라드, 즉 리듬앤드블루스 발라드의 전형을 보여준다. J의 두번째 앨범엔 전 세대의 발라드 영웅들, 가령 조용필이나 이광조 이선희 신효범이 보여주었던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노래말이나 주제, 리듬도 한결같이 매끄럽고 산뜻하다. 구질구질한 것을 더 이상 참지 못하는 요즘 세대의 인스턴트 사랑의 철학이 그대로 반영된 것일까.

    초기 스탠더드 팝의 여걸 중 한 사람이던 현미는 미8군 무대의 스타로서 스윙 재즈 밴드 스타일의 ‘밤안개’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등 숱한 히트곡을 분만했고, 패티 김과 더불어 서구문화가 밀려오던 60년대의 상징적인 아이콘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천년, 대중음악의 본고장 미국에서 직수입된 듯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J의 앨범은 우리의 내면에 미국이라는 초자아가 어떻게 음각됐는지 음미하게 해준다.

    그리고 밀려드는 몽상 한 가지. 우리 고유의 발라드는 어떻게 형상화할 수 있을까. ‘춘향가’의 한 자락이나 ‘육자배기’에 담긴 사랑의 정서가 서구적인 근대와 조우할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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