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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지금 ‘性의 해방구’

베를린 러브퍼레이드 130만 半裸의 물결…주저없는 성의 몸짓·과감한 자기 연출

독일은 지금 ‘性의 해방구’

독일은 지금 ‘性의 해방구’
지난 7월8일 ‘러브 퍼레이드’가 열린 독일에는 전세계에서 130만의 ‘레이버’들이 모여 수도 베를린을 점령해버렸다.

12년 전 불과 150여명의 베를린 테크노 팬들로 시작한 러브 퍼레이드는 마치 전염병처럼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20만명, 영국 리드에서는 50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오는 10월에는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서까지 러브 퍼레이드가 열릴 예정.

올해 베를린 러브 퍼레이드는 잔뜩 찌푸린 쌀쌀한 날씨 속에 진행됐으나 형형색색의 가발을 쓴 반나체족들이 뿜어내는 열기는 냉기를 녹이기에 충분했다. DJ들이 틀어대는 굉음에 맞추어 호르라기를 불며 춤을 추는 모습은 광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육체를 드러내기 위한 상징적 복장이나 주저없는 성적 몸짓들, 그리고 일반적 성의 표현방식을 넘어선 과감한 자기연출 등 한국인에게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런 반나의 춤은 현재 독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성의 시각화와 공개화 추세에 비추어 보면 오히려 욕망의 절제된 표현일 뿐이다.

온갖 매스 미디어에서 매일같이 쏟아지는 에로티즘 영상들은 이제 독일에서는(유럽 전역이 비슷한 상태다) 성에 대한 모든 터부가 사라져 버렸음을 실감하게 한다. 민영방송사 프로그램에서 매일 밤 “나에게 전화를 해주세요”라며 배우들이 노골적인 포즈로 전화섹스 광고를 하고 있다. “침실 이야기”로 불리는 포르노 프로그램들은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성애 장면들을 방영하고 있다.



성적 표현과 관련, 엄격하다고 평가받는 방송사들조차도 ‘전격보도’라는 미명 아래 스트립쇼 현장을 그대로 방영하거나, ‘여성들을 자극하는 것은 무엇인가?’‘놀이기구를 이용한 섹스’ ‘카메라 앞에서의 섹스’ ‘2000년의 포르노 경향’ 등의 제목으로 자극적 영상들을 쉼없이 제공하고 있다. 더욱이 섹스에 대한 다양한 토크쇼 프로그램들이 선보이면서 이성간 또는 동성간의 에로틱한 관계가 낱낱이 공개되고 있다. 동성연애자인 음모미용사의 경험담을 비롯, 섹스숍에서 판매되는 기구들의 소개나 남성 성기를 확대했을 때의 외과적 문제점에 이르기까지 성과 관련된 것들 중 보여줄 수 없거나 말할 수 없는 한계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독일은 마치 음탕한 마녀들의 나라, 사드-마조히스트적 에로티즘의 나라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맹인이 아닌 이상 어떤 장소에서도 성적 표현을 피할 수가 없다. 신문 잡지의 광고나 길거리 대형 게시판의 광고사진에서, 영화나 극장 또는 인터넷, 패션 쇼, 심지어 헬스클럽에서조차도 성적 유혹과 욕정을 가시화하는 그림들과 만나며, 성적 욕구를 자극하는 신체적 아름다움을 접하게 된다.

‘선전과 판매’라는 전문 잡지는 “점증하는 광고 경쟁이 섹스를 주제로 하면서부터 사회의 마지막 금기까지 파괴하고 있다”며 “성적 유희의 장면은 그 어느 때보다 노골적이고도 사실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에 대해 사회문화 연구가인 호르크스는 ‘사회의 포르노화’라고 진단했으며 또 다른 학자는 ‘섹스 소사이어티’라고도 개념지었다. 포르노는 이제 더 이상 지하문화적 코드가 아니라 주류문화로 자리잡았다는 것.

유럽 대중문화의 현실이 이렇다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개인의 실제 성생활은 어떨까.

지난 7월 초 베를린에서는 300여명의 세계적 성연구 전문가들과 WHO

(세계보건기구) 관계자들이 모여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전세계적으로 성이 범람하는 현상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펼쳤다.

WHO 대변인 매케이는 자신의 보고서에서 유럽 국가 중 개인 성생활에서 가장 한심한 나라로 ‘카사노바’의 나라인 이탈리아를 꼽았다. 성적 흥분상태를 해결하는 데 평균 14분이 걸리며 4일에 한 번 정도 섹스를 한다는 것.

각국의 비교에서 독일은 중간 정도의 위치를 차지했다. 16-45세 연령층에서 ‘사랑의 유희’가 17분 동안 지속돼 프랑스보다 1분이 더 길었다. 영국인은 유럽 전체 국가에서 가장 긴 21분을 기록했다.

파트너 선택에서 독일인은 상당히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여성의 아름다움, 여성은 남성의 재력과 두 살 정도 많은 나이를 선호하고 있다는 것. 반면 프랑스인들은 파트너 선택에 까다롭지 않아 그만큼 많은 기회를 부여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년 평균 100∼129회의 미국 러시아 프랑스보다 독일인의 섹스 횟수가 훨씬 적은 것은 당연한 일. 매케이 보고서는 그러나 여성들의 성적 욕구는 예상 밖으로 높지 않다고 지적한다. 미국 여성의 46%는 방해받지 않는 잠이 섹스보다 더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세계 21개국 여성들 다수가 자신의 파트너를 이상적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들도 성적 불만족 상태에 있기는 마찬가지. 유럽과 미국의 5000만 남성들이 이 카테고리에 속한다. 미국인의 30% 정도가 조기 사정에 불만을 느끼며, 인도 남성 중 적지 않은 수가 성기의 크기 때문에 걱정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보고서를 쓴 매케이는, 모든 성적 문제를 포괄하는 국가간 비교는 가능하지 않다고 결론내렸다. 클린턴 미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에서 나타난 것처럼 섹스를 규정하는 개념이 나라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

“섹스는 이제 자원이며 자기 생존의 자본이다. 그림 알아맞추기 놀이의 재료이자 대형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되었다. 섹스는 더 이상 성취할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불과하다.”

현대인의 섹스에 대한 베를린 학술대회에서 전문가들은 다양한 진단과 평가에도 불구, 섹스가 과거처럼 신성한 에로스가 아니라는 점에는 모두 동의했다.

독일학자 슈미트도 성의식의 변화에 대해 “현대인의 성은 금기에 얽매였던 거친 성욕의 시대를 벗어나 성의 홍수시대에 들어서면서, 그 마력을 상실한 채 사무적이고 극적 요소도 사라진 사소한 무엇으로 변하고 있다. 섹스의 일상화는 실제 행위보다는 시각적 섹스, 즉 성에 대한 상상이나 영상 및 그림을 더 중요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프랑크푸르트 성연구소 소장인 지구쉬는 “백만 이상의 참가자를 가진 베를린 러브 퍼레이드 속에서 현대 젊은이들의 성적 시대정신을 읽어낼 수 있는 모든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함께 모여 있으나 혼자 춤추며 자기연출과 자기개성의 표현공간이 돼버린 러브 퍼레이드는 셀프 러브퍼레이드라는 것. 다시 말해 ‘성적인 것의 자기 스타일 만들기 공간’이라는 이야기다.

미디어를 점령한 ‘성의 혁명’이 마지막 금기와 성욕 회피의 빗장을 제거함으로써 육체적 쾌락에 대한 죄의식도 사라졌지만 그와 함께 오르가슴의 유토피아도 사라졌다.

엠니드 연구소의 여론 조사에 의하면, 독일 젊은이들 중 62%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족이라고 대답했다. 그 다음으로는 우정 건강 사랑 출세 순으로, 섹스는 겨우 6%만을 차지해 최하위를 기록했다. 독일 청소년들의 이런 태도는 성의 쾌락적 측면만을 부각시키는 매체들에 대한 극단적 피해심리나 거부반응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만큼 상이한 삶의 차원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간동아 2000.08.10 246호 (p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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