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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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수능란한 ‘不敗’의 ‘대화 일꾼’

  • 입력2005-08-18 11: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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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수능란한 ‘不敗’의 ‘대화 일꾼’
    전금철의 본래 역할은 ‘대화 일꾼’이다. 협상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인 것이다. 단언컨대, 남북을 통틀어 그만한 프로 협상가를 찾아보기 힘들다. 회담을 깨는 데도 프로, 회담을 성사시키는 데도 프로다. 손해보는 협상은 결코 하지 않는다.

    전금진. 일명 전금철. 65세.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대남관계 전문 ‘대화 일꾼’. 각종 회담에서 패한 적이 없는 백전노장이자 협상의 귀재.

    전금철이 서울에 왔다. ‘내각 책임참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남북장관급회담의 수석대표(단장) 자격으로…. 단언컨대, 남북을 통틀어 그만한 프로 협상가를 찾아보기 힘들다. 회담을 깨는 데도 프로, 회담을 성사시키는 데도 프로다. 손해보는 협상은 결코 하지 않는다.

    이번 남북장관급회담을 두고 말들이 많다. 전금철이 무슨 장관급이냐는 것이다. 우리측 수석대표인 박재규 통일부 장관과 격이 맞지 않다는 이야기다. 맞는 말이다. 북한은 외국과 회담할 때 필요에 따라 가명(假名)과 가직위(假職位)를 쓴다. 내각 책임참사는 가직위다. 말하자면 회담을 위해 급조한 대외용 직함인 것이다. 전금진이라는 이름도 가명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한에서는 모두 ‘전금철’로 통한다.

    전금철의 본래 역할은 ‘대화 일꾼’이다. 협상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인 것이다. 따라서 내각 책임참사든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이든 타이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화 일꾼’이라는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그는 아태평화위에 소속돼 있다. 아태평화위나 조평통은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외곽부서다. 통전부는 대남담당 비서인 김용순이 관할한다. 따라서 정확히 격을 맞추려면 김용순이 장관급회담의 수석대표로 와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중앙당 비서들을 남한의 부총리급으로, 중앙당 부장을 남한의 장관급으로 맞추려고 한다. 물론 당(黨)국가 체제인 북한과 남한의 행정부를 수평 비교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렇더라도 북한의 중앙당 비서들을 우리의 부총리급에 맞추면 북한은 부총리가 11명이나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게다가 내각에 부총리가 있고, 장관에 해당하는 내각의 상(相)들까지 포함하면 장관급 이상만 해도 부지기수다. 이는 남북한의 인구비례로 따져보아도 형평에 맞지 않는다. 전금철의 지위를 좀 올려서 맞춘다 하더라도 우리의 차관급 정도다. 수석대표의 격이 문제가 될 것이 뻔한데도 김정일이 전금철을 내보낸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먼저 이 회담의 성격을 ‘정치회담’으로 가져가자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회담에서 경제 군사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남북간에 신뢰를 구축하고 교류 협력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룬다는 입장이다. 반면 북한은 통일문제를 우선 협상하고 싶어한다. 당국간 협상에서 정치문제 우선 해결은 수십년간 변하지 않는 북한의 원칙이다. 남북정상간에 합의한 6·15 공동선언문도 1, 2항이 정치문제고 3, 4항이 경제 및 인도적인 문제다. 이 회담을 정치회담으로 몰고 가려면 첫 당국자 회담부터 김용순이라는 ‘큰 카드’를 쓰는 것은 모험일 수 있다. 전금철은 실수를 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하며, 상대를 다루는 솜씨 역시 능수능란하다. 말하자면 이 회담의 성격을 정치회담 우선으로 몰고 가면서 남측의 ‘수’(手)를 정확히 재보자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7월14일부터 평양방송 등을 통해 “북남 대화는 조국통일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유일한 출구”라며 이 회담을 통일회담으로 규정하는 방송을 연속적으로 내보냈다.

    북한은 대표단 단장을 누구로 하는지에 따라 회담 자체를 성사시키려고 하는지, 깨려고 하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베이징 차관급회담 때 북한은 ‘서울 불바다’ 발언의 박영수를 내보냈고 그 결과 회담은 깨졌다. 반면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예비회담 대표로 나온 김영성 같은 인물은 회담을 성사시키는 역할을 했다. ‘역할 분담’이 어느 정도 되어 있는 것이다. 전금철은 회담을 성사시키기도 하고 깨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남북 정상이 합의한 6·15선언의 후속회담 성격을 띤 것이어서 원만한 합의가 예상되었다. 전단장도 7월31일 남북 양측이 공동보도문 6개항을 합의하기에 앞서 이날 오전 박재규 수석대표와 만나 “큰일을 하는데 꼭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짧은 시간에도 힘과 의지를 합치면 큰일을 할 수 있다. (이번 회담은) 북남 대화에서 아주 좋은 시범을 창조했다”고 말해 회담 결과에 대한 전망을 밝게 했다. 제아무리 불패(不敗)의 프로 협상가라 해도 ‘6월 대사변’의 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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