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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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독자를 고생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정성껏 읽지요”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5-07-12 1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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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인교수(64·전북대 영문과)를 생각하면 소설 ‘달궁’과 ‘봄꽃 가을 열매’가 떠오른다. 직접화법인지 간접화법인지, 내가 말하는지 네가 말하는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숨 한번 쉬기 어렵게 이어지는 4·4조의 구어체 서술법, 여기에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가 일품이다. 때로는 그것이 말장난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 혼란스러움 속에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숨어 있음은 물론이다.

    새 중편 ‘말뚝’(작가정신)에서도 서교수의 솜씨는 여전하다. 하지만 배경은 낯선 르네상스시대의 이탈리아. 그는 ‘사팔뜨기’ ‘거푸집’ ‘용병대장’ 등 일련의 르네상스시대 소설의 완결편으로 ‘말뚝’을 발표했다. 왜 하필 중세 이탈리아냐는 질문에 그는 “엄숙주의로 포장된 그 시대에 희랍 인문학을 되살리기 위해 용병들이 앞장섰다는 사실이나, 교황과 주교로 대표되는 교회의 타락성이 흥미를 끌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뚝’은 처형을 앞둔 수사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를 구하기 위해 벌이는 거사 이야기다. 보티첼리를 중심으로 당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이 수사를 구하기 위해 모인다. 하지만 무력하게 입만 놀려대는 지식인들은 이렇다할 행동도 해보지 못하고, 결국 사보나롤라는 말뚝에 묶여 화형에 처해진다. 그러자 수사를 구하겠다고 나섰던 이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화가의 집에 모여 삶은 달걀을 까먹는다. 그리고 수사가 남긴 마지막 말을 음미한다. “당신들은 나에게서 짧은 삶을 빼앗고 긴 삶을 준다”고….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태연히 달걀을 까먹을 수 있느냐고 따지는 이도 있는데, 무엇이 그들을 허기지게 했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 거예요. 그리고 한 사람의 이름이 하나 이상으로 불려 혼란스럽다고 출판사에서도 불평을 했는데 그게 이 작품을 읽는 묘미지요. 문학은 독자를 고생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정성껏 읽지요. 제가 쳐놓은 함정을 피해가면서 하나하나 의미를 새기다 보면 문학의 깊은 맛을 알텐데, 따라오지 못하겠다고 아예 포기하니 참 답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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