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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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액션의 대서사시

  • 입력2005-07-12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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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액션의 대서사시
    학창시절, 선생님의 눈을 피해가며 수학책 밑에 깔아 놓고 몰래몰래 훔쳐보던 만화 ‘비천무’는 80년대 후반의 여중-고생들에겐 단순한 만화책 이상의 의미였다. 지금쯤 대부분 아이 엄마가 되어 있을 그들은 가혹한 운명의 굴레 속에서 이뤄지지 못한 ‘설리’와 ‘진하’의 사랑에 눈시울을 적신 기억과,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누가 설리와 진하역에 어울릴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던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비천무’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일찍부터 가슴 설렌 사람들, 또 오랜만에 부활한 무협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로 ‘비천무’ 시사회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개봉 영화의 흥행 여부가 대부분 시사회장의 분위기로 판가름난다는 기자의 경험론에 비춰보면, ‘비천무’의 흥행 가능성은 비교적 높다고 하겠다.

    영화 ‘비천무’는 올 여름 개봉하는 한국영화 중 단연 기대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원작만화의 높은 인기도 외에도 ‘쉬리’를 능가하는 40억원의 제작비와 100% 중국 올로케이션, 미국 ILM의 CG(컴퓨터그래픽)와 ‘매트릭스’에서 선보였던 플로 모션 등 첨단 SFX 기법의 사용으로 할리우드 영화에 결코 떨어지지 않는 기술력을 선보인다는 것이 제작팀의 자랑.

    영화를 보면 이런 자신감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동방불패’ ‘천녀유혼’의 무술팀이 지도한 액션연기와 화려한 검술이 영화에 스펙터클한 사실감을 더하고, 무사들이 떼지어 기와지붕 위를 날아다니고 비천신검이 땅을 가르는 등 초현실적인 장면들이 결코 어색하지 않게 멋진 그림을 만들어낸다. 중국 무협영화에서 봄 직한 활극이 박진감 있게 펼쳐지고 만화에서나 가능해 보이는 액션을 역동적으로 재현해 보여 절로 “와”하는 탄성이 터져나온다.

    영화의 무대는 14세기 중엽의 중국 원나라. 진하와 설리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축으로 몽고인, 한족, 고려인의 민족간 애증과 갈등, 화해를 그려나간다.



    ‘은행나무 침대’를 통해 차가운 무사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신현준과 신세대적인 당당함과 소녀적인 청순함을 지닌 김희선이 남녀 주인공을 맡았다. 타고난 무사기질이 엿보이는 신현준은 비정한 무사 ‘진하’역에 그런대로 잘 어울리지만 김희선의 경우는 TV에서의 발랄한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인지 깊은 사연과 비밀을 간직한 듯한 ‘설리’의 매력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나 빼어난 미모 덕분인지 중국풍 의상이 기막히게 어울려 그런대로 합격.

    돈만큼이나 공도 많이 들인 영화임에 분명하지만 10권이 넘는 만화를 2시간 남짓한 영화로 만들면서 원작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드라마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점은 아쉽다.

    이 영화가 장편 데뷔작인 김영준감독은 그동안 단편영화 4편을 모두 액션물로 찍었을 정도로 액션영화 광. 기존 영화와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액션과 검술신이, 우리 영화에서 거의 사장되다시피 한 무협장르의 화려한 부활을 예고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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