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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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 근무’ 노사 모두 “따봉”

한국오리베스트 “삶의 질·생산성 동시에 향상”…외국계 등 다른 기업들도 대체로 만족

  • 입력2005-12-02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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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5일 근무’ 노사 모두 “따봉”
    주5일 근무제. 노동시간을 주당 40시간(하루 8시간)으로 줄여 토요일엔 근무를 하지 않는 제도다. 요즘 이 제도의 시행 여부가 노동계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경총 등 경영자측은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할 경우 경제위기가 다시 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에선 주당 50시간에 이르는 ‘최장노동시간국’(99년 기준, 민노총)의 불명예를 씻을 수 있고 삶의 질 개선, 고용창출 효과도 있다며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주 5일 근무 경험이 없는 대다수 근로자와 사업주들은 노사의 상반된 주장에 혼란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주 6일제에서 주 5일제로 근로시간을 줄인 사업장에서 경영사정이나 근로자의 만족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주 5일 근무제 실시 이후 이들 사업장에서 나타난 변화상을 알아봤다.

    바닥장식재를 생산하는 한일합작기업 한국오리베스트. 지난 3월말 타결된 노사 임단협에서 회사측은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키로 전격 결정했다. 이후 인근 공장은 물론 동종업계에서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주 5일 근무제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이 회사 장현춘공장장은 요즘엔 이같은 문의에 답하느라 더욱 바빠졌다고 한다. “최근 언론사의 취재 요청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이 아직 5일 근무제를 받아들이기 힘든 실정이라 그런지 우리 회사가 왜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였는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50여일이 지난 지금 이 회사에선 어떤 변화가 찾아왔을까. 장공장장은 “한마디로 말해 주 5일 근무제가 근로자나 사용자 모두에게 이익을 안겨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생산성이 높아졌습니다. 주 5일 근무제 이전 바닥장식재 생산량은 하루 10만∼11만m 정도지만 밀려드는 주문 때문에 연중 60만∼70만m 정도 공급 부족현상에 시달려 왔습니다. 하지만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하고 나서는 하루 생산량이 대폭 늘어 공급 부족 현상이 상당부분 해결되고 있습니다.”



    노동시간을 줄였더니 생산량이 더 늘어났다는 것은 모순된 이야기로 들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근무시간이 줄어든 것이 아니다. 한국오리베스트는 그동안에도 격주휴무제를 실시해 왔다. 이른바 ‘놀토’(노는 토요일)와 ‘일토’(일하는 토요일)로 나눠 격주로 이틀씩 휴무를 실시해 온 것.

    주 5일제로 바뀐 지금도 대부분의 직원들은 이같은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다. 회사의 요청으로 근로자들이 주말 특근을 하면서 모자라는 생산량을 채우고 있다. 근로자들은 대신 특근수당으로 통상임금의 200%를 지급받게 됐다. 쉬는 날이 늘기는 했지만 실제 근무일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중요한 점은 근로자들의 일하는 형태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 무조건 쉬는 날을 찾기보단 회사측의 업무스케줄에 따라 휴일 근무에 자발적으로 나서는 경우가 늘었고 이에 따라 생산성도 높아졌다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

    주 5일 근무제 도입으로 회사는 추가로 9.1%의 임금인상분을 부담하게 됐지만 생산성이 그보다 높아져 결국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 한달 보름 정도 제도 시행후 회사측이 내린 결론이다.

    “주 5일 근무는 무조건 쉬자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입니다. 근로자들 입장에서는 특근비를 받아 임금인상 효과를 볼 수 있어 좋은 셈이지요. 근로의욕이 높아지고 사내 인화도 잘돼 생산성 향상 외에도 회사에 무형의 이익을 많이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한국오리베스트 장공장장은 주 5일 근무제 도입으로 노무관리도 수월해 졌다며 이같이 덧붙였다.

    또다른 주 5일 근무기업은 지난 98년 벨기에 인터브루(Interbrew)사와 50대 50의 공동 경영권을 갖는 합작회사로 출범한 OB맥주. OB는 지난해부터 주 5일 근무제를 추진해 왔지만 본격적으로 시행한 것은 올 들어서부터. 현장 영업에 나서야 하는 지점 근무자들은 여전히 격주 휴무를 실시하고 있지만 본사 직원은 토요일이면 전원이 쉰다.

    이 회사 김일영차장은 “외국계기업과 공동 경영에 나서면서 주 5일 근무제 도입이 진작부터 검토돼 왔지만 한국적 풍토에서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외국기업의 경우 다음주 월요일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도 근로자들은 금요일이면 일을 마치고 돌아가 주말을 즐깁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에선 어디 그럴 수 있습니까. 대부분 임원들은 토요일 일요일에도 나와 서류를 검토하고 회의자료를 다시 들춰보곤 합니다. 임원들이 주말에 나와 일을 하니 부하직원들도 덩달아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같은 한국적 풍토 때문에 OB도 주 5일 근무제를 시행하기까지 1년을 허비해야 했다는 것이다. 주 5일 근무제의 발목을 잡아온 한국의 일부 기업관행이 생산성 향상과는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OB의 경우 월차휴가를 사용하는 형태로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토요일의 경우 월차의 절반을 사용한 것으로 계산해 월차 일수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따라서 월차 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토요일에 회사를 나오겠다는 직원들은 거의 없다. 직원들은 “별로 하는 일도 없으면서 서너 시간 때우다 퇴근하는 일을 굳이 나서서 하겠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제일제당은 일부 사업본부에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하면서 ‘플렉서블 타임제’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아예 출퇴근 시간을 근로자 본인이 조정해 적용하도록 함으로써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근무시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근로자는 자신의 업무조건이나 개인적 사정에 따라 선택적으로 근무 환경을 조성할 수 있게 됐다.

    이 회사 제약본부는 대다수 제약 거래처들의 여건을 감안해 볼 때 굳이 토요일 근무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아예 토요 완전 휴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홍보실의 경우도 플렉서블 타임제를 활용, 언론사들 대부분이 쉬는 토요일에는 함께 휴무 하고 있다.

    삼성SDS도 제일제당처럼 플렉서블 타임제를 적용하면서 사실상 주 5일 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주 5일 근무제 기업에 다니고 있는 근로자들은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선 학교수업 주 5일제 등 사회 문화적인 변화가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음은 토요일 휴무를 하는 한 직원의 말. “수입이 줄어들지 않으면서 매주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쉬게 되자 처음엔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곧 문제점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하려 해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토요일 오후까지 기다려야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금요일 오후나 토요일 오전을 그냥 놀리는 셈이죠. 현재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생활시간대에서 나만 이질적으로 분리돼 있어 주 5일 근무제의 효과가 반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 5일 근무제가 나의 삶을 훨씬 건강하고 윤택하게 해주고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주 5일 근무제 논란이 앞으로 한국 기업의 근로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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