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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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화술로 실세들을 내 손 안에”

이성적 감정 작용 남성에 비해 +α …화려함 뒤엔 이혼 등 남모를 고통도

  • 입력2005-11-29 13: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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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모·화술로 실세들을 내 손 안에”
    자고로 자석의 N극은 S극을 잡아당기는 법이다. 반면 같은 극인 N극과 N극, S극과 S극은 서로를 밀치게 된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와 같아서 동성(同性) 간에는 껄끄럽게 진행되던 일도 이성(異性) 사이의 일로 변모하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린다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방위력 개선사업(구 율곡사업)이라고 불리는 중요 무기 도입사업은 부정부패를 피하면서도 좋은 무기를 고르기 위해 무려 서른 여덟 단계의 검토 과정을 만들어 놓았다. 때문에 웬만한 로비로는 이 많은 단계를 재빨리 통과할 수 없다. 그런데 린다김만은 예외였다.

    린다김과 이양호 당시 국방장관이 처음 만난 것은 96년 초 였다. 그 해 4월 이장관은 린다에게 ‘사랑한다’는 연서(戀書)를 보냈는데 그 해 6월21일 김영삼대통령은 린다김이 에이전트를 맡은 기종을 백두사업 기종으로 최종 선정했다. 그리고 그 해 7월 이장관은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무관인 나흐만 소버에게 동부전선 전자전 장비의 에이전트로 린다김을 쓰라고 권유했다.

    린다김과 이양호 당시 장관간에 있었던 일련의 사업 관계가 너무 빠르게 진행된 것이다. 두 사람이 N극과 S극으로 서로를 잡아당겼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초래된 것은 아닐까. 남성들이 장악한 거대한 사업에 뛰어든 여성 에이전트들은 거대한 사업을 장악하고 있는 한명 또는 수명의 남성들을 장악함으로써 아주 유유히 사업권을 따내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희대의 여간첩 ‘마타하리’를 연상시키는 듯한 묘미가 있다. 여성 에이전트들의 로비가 드러나 남성들이 장악한 정계가 발칵 뒤집힌 것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1998년 모델 출신의 프랑스 로비스트인 크리스틴 드비에 종쿠르(52)라는 여성은 ‘공화국의 창녀’란 제목으로 출간한 자서전에서 91년 롤랑 뒤마 당시 외무장관(78)과 ‘성관계를 맺었다’고 밝혀 프랑스 조야를 뒤집어 놓았다. 91년 프랑스 엘프사는 대만에 6척의 스텔스 초계함을 판매하려고 했는데, 뒤마 장관이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질 수 있다”는 것 등을 이유로 사사건건 막고 나섰다. 그래서 엘프사는 드비에 종쿠르를 에이전트로 고용해 뒤마 장관에게 접근시켰는데 이것이 ‘몸로비’로 이어진 것이다.



    국익을 위해 비밀리에 낙랑공주에게 접근한 호동왕자가 그만 낙랑공주와 사랑에 빠져 버렸듯이 몸로비는 종종 ‘사업이냐 사랑이냐’란 문제로 이어진다. 드비에 종쿠르 역시 이 문제로 고민했는데 당시 심정을 그녀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혔다. ‘엘프사는 평생 연금을 준다는 조건으로 나를 고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목적을 숨기면서 한 남자와 강렬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남자를 따르자니 회사가 울고, 회사를 따르자니 남자가 울게 될까봐’ 고민하는 여성 에이전트에게서는 ‘최루(催淚)적 요소’가 발견된다. 이 최루적 요소는 긴장감과 함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도 그런 일이 있었어’ 하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때문에 국민은 자신의 세금이 어떻게 축나 버렸는가 하는 실제적인 문제를 외면하면서까지 여성 로비스트가 개입된 사건에 숨죽여 집중하는 것이다. 이러한 로비 덕분에 엘프사는 대만에 3조원 대의 스텔스 초계함을 판매할 수 있었다. 드비에 종쿠르는 150억원의 커미션을 챙겼다.

    린다김은 70년대 ‘김아라’라는 또 다른 가명으로 모델과 가수로 활동했다. 이때 그녀는 음반을 취입하고 캘린더용 모델로 사진을 찍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이미 린다김은 간단히 대인 접촉 공포증을 극복해버렸을 것이다. 몸로비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란 문제로 곤욕을 치르던 린다김은 5월11일 서울 안세병원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녀는 “군인들은 매우 순수합니다”고 말했다. 비록 이양호 전장관이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다”고 시인해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었지만, 그를 대놓고 비난하지는 않은 것이다. 이렇듯 남성 실력자와 여성 에이전트 사이에서는 알 듯 모를 듯한 미묘한 전선이 형성된다.

    반대로 남성이 여성 실력자를 유혹해 사업을 성사시킨 경우도 있다. 91년 콜 총리가 이끌던 독일에서 일어난 일이다. 독일의 대표적인 방산 업체인 티센사는 독일 정부를 움직이기 위해 콜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의 브리기테 바우마이스터에게 접근했다. 바우마이스터는 기민당에서 재정을 담당하는 여성이었다. 그런데 한 일간지가 티센사의 위르겐 마스만 사장이 그녀와 성관계를 맺었다고 폭로했다. 이러한 몸로비를 통해 연계망을 구축한 티센사는 약 6억원의 뇌물을 기민당 정부에 제공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독일통일’의 영웅으로 명퇴한 콜 총리는 사법 처리의 위기에 몰렸고, 콜에 이어 기민당 당수직에 오른 볼프강 쇼이블레도 사임하는 등 온 독일이 발칵 뒤집혔다.

    경부고속철 로비에 대한 수사를 하고 있는 대검 중수부는 구속영장에서 호기춘씨와 최만석씨는 알선수재죄를 범한 공범 관계에 있다고 적시했다. 이러한 검찰의 판단이 옳다면 호씨 또한 경부고속철을 결정한 문민정부 실세를 상대로 로비를 펼쳤을 것인데 아직 검찰은 그러한 증거를 포착하지 못한 것 같다.

    경부고속철 로비와 관련해 주목할 사람은 현재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TGV의 공식 에이전트였던 강귀희씨(65)다. 강씨는 숙명여대 영문과 2학년 때인 1953년 초대 ‘미스대한’(미스코리아를 그 당시에는 이렇게 불렀다)에 당선된 여성으로, 베트남과 파리에서 사업을 해 큰돈을 벌었다. 70년대 중반 강씨는 중동에 진출하고 있던 한국 건설회사들에 프랑스산 중장비를 알선하는 사업을 벌여 큰돈을 벌어들여 전문 에이전트로 입지를 굳혔다. 그리고 83년 알스톰사의 자크 시잔 사장으로부터 직접 TGV의 한국 판매 에이전트가 돼 달라는 부탁을 받고 한국 실력자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TGV가 선정된 뒤 강씨는 “YS와 가까운 C목사를 통해 480억원의 정치자금을 제의했는데 YS가 거절했다”고 밝혀 주목받았다. 강씨는 ‘로비스트의 신화가 된 여자’라는 제목의 자서전에서 YS가 거절한 정치자금만큼 액수를 깎았기 때문에 한국은 TGV를 독일의 ICE보다 싼 가격에 선정할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여성 에이전트들의 세계는 확실히 화려하다. 그러나 좀더 내밀히 들여다보면 화려한 만큼 고통스런 부분도 적지 않다. 린다김과 호기춘, 강귀희씨는 모두 이혼한 경험이 있다. 또 남성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긴장시켜야 한다. 탈락한 업체가 투서를 던질 경우를 대비한 방책도 갖고 있어야 한다. 화려한 세계는 항상 독(毒)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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