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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자의 문화유산 산책

사임당의 진짜 모습일까

미공인 ‘신사임당 초상화’

  •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sjchoi5402@naver.com

사임당의 진짜 모습일까

바래고 찢긴 화폭 속에 중년 부인이 꽃가지를 들고 앉아 있다. 풍성한 흰 치마와 노란 저고리가 눈에 가득 들어온다. 앞가르마 얹은머리에 검은 눈동자가 뚜렷하다. 넓고 큰 얼굴은 전형적인 한국인의 모습이 분명하다. ‘신사임당 초상화’다. 조선 시기에 그린 여성 초상화는 매우 드물다. 더구나 ‘신사임당 초상화’처럼 임진왜란 전 그림은 더욱 희귀하다. 이 초상화는 1977년 3월 11일 세상에 알려지며 문화계를 시끄럽게 했다. 기자들의 전화와 학자들의 성화는 물론, 기증 요청 등이 빗발쳤다. 소장자인 골동상인 우당 홍기대(洪起大·95) 씨는 갑자기 일본 출장을 떠났다. 연락이 끊기자 겨우 잠잠해졌다.
홍씨가 2014년 펴낸 책 ‘우당 홍기대 조선백자와 80년’에 그 이야기가 소상하다. 1962~63년께 일이다. 자유당 때 국책회사 간부였던 사람이 소유한 조선백자 달항아리가 나왔다. 홍씨의 전문 분야인 백자는 바로 거래가 됐다. 하지만 같이 나온 초상화 한 점과 초충도 3점은 쉽지 않았다. 백자의 2배인 1000만 원을 호가했고, 가로세로 세 번씩 접어둬 구김새가 심했다. 바스러진 부분도 적잖았다. 홍씨는 어렵게 초상화를 인수한 후 상한 부분을 보존처리해서 유리액자에 넣어두었다. 그러던 중 ‘월간문화재’ 발행인 이원기 씨가 알게 됐고, 이종석 기자와 당시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이 함께 와서 봤다. 실물로 인정할 만한 근거는 충분했다. 화폭 상단 위에 가로로 ‘덕수이씨(德水李氏) 열로부인(洌老夫人) 신사임당영지(申師任堂影之)’라 썼고 ‘덕수세가(德水世家)’ 등 도장들이 여기저기 찍혀 있다. 하지만 뒤에 검토한 초상화 전공자 가운데는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한 사람도 있었다. 최순우 관장과 다른 견해가 나오기도 했다.
조선 여성을 그린 초상화는 매우 희귀하다. 일본에 있는 하륜(河崙) 부인 상반신상 등 몇 점만 알려졌다. 남녀유별을 강조한 사회에서 감히 여자가 외간 남자에게 얼굴을 드러내놓고 그리게 할 수 없었다. 지금 홍씨는 이 초상화를 갖고 있지 않다. 그의 집안이 잘못돼 갖고 있던 물건들이 흩어질 때 잃어버렸다고 한다. 처음 보도한 신문에는 원화 3분의 2 크기 흑백사진만 실렸다. ‘월간문화재’ 1977년 3월호에 컬러 표지로 실린 사진이 ‘신사임당 초상화’를 보여주는 유일한 자료가 됐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이목구비가 크고 서글서글하며 지성적인 얼굴이다. ‘신사임당 표준영정’은 1966년 김은호 화백이 그렸다. 최근에 널리 알려진 그림이 2009년부터 나온 5만 원권 지폐의 ‘신사임당 영정’이다. 이종상 화백이 그린 화폐 인물은 여러 자료를 토대로 그렸다고 한다. 서로 비교하면 흥미롭다.
이 그림을 봤던 최순우 관장은 “능필은 아니지만 조선 중엽 그림의 격을 지니고 있다. 사임당의 아들 옥산과 딸 매창도 서화를 잘했으므로 그런 가족이 당시 제작한 영정일 것”으로 추정했다. 신사임당은 다양한 초충도로도 유명하다. 올해 하반기 방영 예정인 TV드라마 ‘사임당, the Herstory’에서는 초충도를 그리는 장면이 나올 예정이다. 시서화에 뛰어났던 사임당의 예술이 재조명될 듯하다.

사임당의 진짜 모습일까

신사임당의 초충도 ‘수박과 들쥐’ 사진 제공 · 국립중앙박물관

사임당의 진짜 모습일까

신사임당 초상화’를 실은 ‘월간문화재’ 1977년 3월호 표지. 신사임당이 화폐 인물인 5만 원권. (위부터). 사진 제공 · 최성자





주간동아 2016.02.17 1025호 (p78~78)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sjchoi54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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