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51

2022.08.05

국제우주정거장 떠나는 러시아, 우주개발 신냉전시대 도래

미국 등진 러시아, 중국과 동맹 강화할 듯

  • 이종림 과학전문기자

    입력2022-08-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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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에서 바라본 국제우주정거장(ISS). [NASA 홈페이지]

    우주에서 바라본 국제우주정거장(ISS). [NASA 홈페이지]

    7월 26일 러시아연방우주국(로스코스모스) 신임국장 유리 보리소프는 2024년 이후 국제우주정거장(ISS) 프로젝트에서 완전히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일시를 번복하긴 했지만, 늦어도 2028년쯤 러시아가 자체 우주정거장을 가동할 시기에 맞춰 ISS를 떠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ISS에서 철수할 경우 ISS 공동운영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ISS는 러시아와 미국이 냉전시대를 지나 우주개발을 위해 손을 맞잡은 협력의 장이었다. ISS를 매개로 20여 년간 유지돼온 우주 협력이 좌초되는 셈이다.

    각 우주국의 기술 협력으로 운영되는 국제우주정거장(ISS).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러시아가 기여한 모듈이다. [NASA 홈페이지]

    각 우주국의 기술 협력으로 운영되는 국제우주정거장(ISS).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러시아가 기여한 모듈이다. [NASA 홈페이지]

    러시아가 2028년 가동을 목표로 설계 중인 우주정거장. [러시아연방우주국 홈페이지]

    러시아가 2028년 가동을 목표로 설계 중인 우주정거장. [러시아연방우주국 홈페이지]

    미·러 주축의 다국적 프로젝트 ISS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홈페이지를 통해 “ISS는 인간이 우주에 건설한 단일 구조물 중 가장 큰 다국적 건설 프로젝트”라고 언급했듯이, ISS는 냉전시대 이래로 미국과 러시아를 주축으로 한 가장 큰 협력 과제였다. NASA, 로스코스모스, 캐나다우주국(CSA),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유럽우주국(ESA) 등 주요 5개국 기관과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영국이 참여하고 있다.

    1950년대 우주시대가 열리면서 상상 속 우주정거장도 점차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옛 소련은 1971년 단일모듈 우주정거장 살류트 1호를 띄운 데 이어, 1986년에는 첫 다중모듈 우주정거장 미르를 우주에 안착시켰다. 냉전시대가 끝난 뒤 러시아는 미르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ISS 건설에 동참했다. 1998년 11월 ISS의 첫 번째 모듈이 발사된 이후 2011년까지 우주정거장의 주요 부분 건설이 완료됐다.

    ISS는 지구 상공 약 400㎞ 고도에 축구장만 한 크기로 설치돼 있다. 약 420t으로 자동차 330대 정도 무게에 달한다. 시속 2만8000㎞ 속도로 비행하며 90분마다 지구를 한 바퀴 돈다. ISS가 설치된 목적은 달이나 화성 등 심우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베이스캠프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ISS에는 주거 공간과 함께 실험실도 있어 미세중력, 우주생물학, 인간생리학 및 기초물리학 등 특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ISS에는 19개국 240여 명의 우주비행사가 방문해 2500건 이상 실험을 진행했다. 대다수 우주비행사는 2011년 NASA의 우주왕복선이 퇴역하자 러시아 소유스호를 타고 ISS로 갔다. 최근에서야 스페이스X의 크루드래건을 이용해 ISS에 진입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의 예견된 탈퇴 선언

    아폴로-소유스 테스트 프로젝트에 참가한 미국과 옛 소련의 승무원들. [NASA 홈페이지]

    아폴로-소유스 테스트 프로젝트에 참가한 미국과 옛 소련의 승무원들. [NASA 홈페이지]

    본래 ISS는 노후화로 2024년까지만 운영될 예정이었다. 이후 ISS 관련 계획은 명확하게 제시된 바 없다. 궤도를 안전하게 이탈시키거나 미래 우주정거장을 위해 재활용될 수도 있다. NASA는 ISS 수명을 2030년까지 연장해 기존 우주연구를 지속하면서 2020년대 후반쯤 지구 저궤도에 새로운 우주정거장을 띄우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자체 우주정거장 건설 계획에 맞춰 ISS 철수를 이야기해왔다.

    러시아가 빠진 ISS 운영은 사실상 차질이 불가피하다. ISS는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정거장 2개가 결합한 구조나 다름없다. NASA의 태양전지 패널이 주 에너지원을 담당한다면, 러시아의 즈베즈다(Zvezda: 러시아어로 ‘별’) 모듈 엔진과 프로그레스(러시아 무인 수송 우주선)는 ISS를 지구 궤도에 유지시키고 위험한 우주 쓰레기를 피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만일 러시아 모듈이 더는 정기적인 구동을 못 한다면 ISS는 지구 대기권에 진입해 약 1년 이내에 수명을 다할 것이다. 러시아가 ISS 철수 후 모듈을 차단할지, 정거장을 계속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미국은 러시아의 협력 없이도 궤도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 다국적 항공우주업체 노스롭그루먼을 통해 시그너스 우주선을 개발하고 있다. 시그너스는 시행착오 끝에 6월 ISS를 지구 위 약 400㎞ 고도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NASA는 시그너스를 이용해 머지않아 ISS의 궤도 수정을 시험할 계획이다.

    ISS는 과거 적대국이던 러시아와 미국이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중요한 사례다. 미국과 러시아는 1975년 아폴로-소유스 테스트 프로젝트부터 ISS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우주라는 공간에서 협력해왔다. 2014년 크림반도 강제병합 때도 마찰을 겪었지만 협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중국과 우주 동맹 변수

    그러나 올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우주국 파트너들 사이에서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협력 관계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22개 유럽 국가를 대표하는 ESA는 2월 말 러시아 제재를 승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한국을 포함한 유럽, 일본, 캐나다 등 20개국은 러시아와 중국이 제외된 NASA의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 협정에 서명했다. 러시아는 그동안 유인 우주 프로그램, 위성항법시스템 기술을 미국, 유럽, 일본 등에 의존해온 만큼 우주 계획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에 등을 돌린 러시아가 향후 중국유인우주국(CMSA)과 협력 관계를 어떻게 이어나갈지도 중요한 변수다. 그동안 미국은 우주개발에서 중국을 배제한 반면, 러시아는 중국과 손잡고 달 탐사와 달기지 건설 등을 광범위하게 추진해왔다. 러시아가 과거 ISS를 건설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CMSA가 자체 우주정거장을 완성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군사 우주 및 보안 이슈를 다루는 빅토리아 샘슨 시큐어월드재단 이사는 ‘와이어드’를 통해 “20년 넘게 인류를 지구 저궤도의 ISS에 보내 과학적 실험을 할 수 있었던 건 매우 중요한 우주탐사적 성과”라며 “ISS 프로젝트가 종료될 경우 무엇보다 가장 큰 유산이던 외교적 도구로서 역할이 끝난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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