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 갑작스레 해체 소식을 전한 걸그룹 ‘여자친구’. [뉴스1]
2015년 데뷔한 6인조 걸그룹 여자친구는 그야말로 입지전적이었다. 데뷔 초 ‘스페셜 싱글’ 하나 없이 미니앨범과 정규앨범을 꾸준히 냈으며, ‘칼군무’에 근본을 두고 ‘보기보다 훨씬 힘든’ 안무를 해왔다. 트렌드와 거리가 먼 선택이었다. 마치 잔꾀 같은 건 부릴 줄 모른다는 듯이 말이다. 약간의 우수가 어린 정직한 멜로디와 친숙하면서도 낡은 듯한 사운드로 ‘옆집 소녀’ 이미지를 쌓으며 가요계 정상을 여러 차례 차지했다. 반지하에 입주해 있던 소속사는 방탄소년단의 빅히트엔터테인먼트(현 하이브)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인수됐다. 이후 음악적 색채는 유지했으나, 비주얼과 서사는 장르가 달라졌다. 일본 만화에 나오는 체육복을 입고 뜀틀을 넘는 안무를 하거나 서울지하철 1호선 승강장을 달리던 아이돌이 현대적 비즈니스로 성공한 마녀 같은 모습으로 인생의 길을 노래하게 됐다.
여자친구 이후 걸그룹 이미지 다변화
6년 동안 케이팝은 많은 변화를 거쳤다. 여자친구는 데뷔 초 비 오는 야외무대에서 몇 번이나 넘어지면서도 일어나 춤추는 영상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무대 위 우상 같은 지위에서 팬들을 향해 가깝게 내려오는 흐름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사건이었다. 이후 아이돌은 팬들과 눈높이를 맞춰 소통하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팬들을 설득하는 직업이 됐다. 또한 청순과 섹시로만 나뉘던 걸그룹 이미지 역시 다변화됐다. 아예 사랑 노래를 집어치우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 모두가 여자친구의 디스코그래피(레코드에 관한 기록 문헌)에 직접적으로 담긴 변화들이다. 케이팝을 직접 살아온 그룹이라고도 할 만하다.그 무엇도 부화뇌동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여자친구의 힘이었는지 모른다. 이들의 뜨거운 심장은 ‘노력’으로, 소녀라는 정체성은 ‘청순’으로 치환되곤 했다. 그런 기이한 시선 앞에서 여자친구는 다만 자신의 키를 쥐고 질주해왔고, 그것으로 ‘중소돌’(중소 기획사에 속한 아이돌)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니 여자친구에게 일어난 변화는 모두 이들이 직접 벼린 것처럼 보일 수밖에. 2020년 여자친구가 발표한 ‘MAGO’는 2015년의 ‘유리구슬’보다 세련된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이들이 스스로 노력하고 성공하며 자신을 지켜온 결과다.
바로 그것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 건 아닐까. 열정만으로 세상에 나온 소녀들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무너지지 않고 다부지게 성장해 근사해진 모습으로 자기 자신의 길을 찾아가려 하는 것 말이다. 마침 지난해 이들이 발표한 곡 ‘교차로’ ‘Apple’ ‘MAGO’는 길에 관한 노래였다. 기획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 어떤 드라마를 대중이 보고자 했다면 여자친구의 6년에 그것이 있었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