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감정원 통계에서 2분기 전국 75개 소규모 상권에서 “공실률 0%”로 표시
감정원 관계자 “임대료 변화 파악 목적, 공실 면적 높으면 표본 제외”
전문가 “금융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정확한 현황 파악 필요”
명동 거리에서 39년째 고깃집을 운영 중인 오모(62) 씨가 6일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외국인들로 붐비는 명동 거리’도 옛말이 됐다. 오후 8시, 한창 장사할 시간이지만 사장과 아르바이트생들만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임차인을 찾는 현수막이 붙은 텅 빈 가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감정원 통계에 따르면 6월 30일 기준 명동 상권의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0%다.
“잠깐만 둘러봐도 0%는 거짓임을 알 수 있어”
일 저녁 서울시 중구 명동 거리에 소규모 상가가 줄줄이 비어있다. [최진렬 기자]
감정원은 올 2분기 전국 소규모 상가 공실률이 전 분기 대비 0.4%p 높은 6%라고 발표했다. 공실률 상승 이유로 “지역경기 침체, 소비심리 위축 및 매출 하락으로 인한 자영업자 감소와 폐업 증가”를 꼽았다. 감정원은 그러나 같은 기간 전국 207개 주요 상권 중 75곳 상권의 소규모상가 공실률은 0%라는 통계를 내놓았다. 해당 지역 상인들은 “통계가 현실과 동떨어졌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특히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았던 명동 상권과 시청 상권, 압구정 상권 등이 ‘공실률 0%’ 상권에 포함되면서 의구심을 더했다.
6일 저녁 명동 거리에서는 텅 빈 상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소규모 상가가 밀집한 중구 명동9길 거리에는 내부가 정리돼 텅 빈 상가가 여럿 보였다. 명동9길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오씨는 “올해 상반기 매장들이 줄줄이 빠지더니 지난달에는 급기야 편의점마저 견디지 못하고 점포를 정리했다. 철거 비용을 충당하지 못해 매장 안에 의류 등을 내버려 둔 채 매장을 뺀 사업자도 많다. 이쪽 골목의 경우도 환전소 빼고 거의 정리했다”고 말했다. 명동에서 소규모 미용매장을 운영하는 박모(48) 씨 역시 “잠깐만 둘러봐도 명동 상권의 소규모 상가 공실률이 0%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지 않나. 소규모 상가 공실률이 0%라는 발표에 정말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등기사항증명서를 확인한 결과 명동 일대에서 공실 상태의 소규모 상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명동 9길에 위치한 연면적 147.1㎡의 2층 상가 건물은 소규모 상가에 속한다. 이 상가는 공실 상태였다. 명동 8길에 위치한 연면적 125.62㎡의 2층 상가 건물 역시 비어 있었다. 이들 상가들은 오랜 시간 공실 상황에 놓인 탓인지 먼지가 잔뜩 쌓인 바닥 위에 대부업체 명함이 뿌려져 있었다.
“정부에 불리한 상가는 일부러 통계에서 빼는 것 아니냐”
서울시 중구 시청 인근 한 소규모 상가가 6일 저녁 공실인 상태다. [최진렬 기자]
해당 건물을 소유한 부동산법인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프랜차이즈 업체 사장들이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있다. 이곳 역시 화장품 매장이 입점한 곳이었는데 화장품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올해 상반기 철수했다”며 “공실률 0% 통계는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정부에서 불리한 상가는 일부러 통계에서 빼고 집계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시청 상권에서 주방용품점을 운영하는 김모(59) 씨는 “시청의 경우 그나마 직장인들 덕분에 다른 상권보다 상황이 낫다지만 공실이 아예 없는 상태는 아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권리금마저 포기하고 가게를 내놨지만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감정원 “조사의 주요 목적은 공실률 파악이 아니다”
감정원은 임대료와 투자수익률 파악을 중심으로 조사가 이뤄져 공실률이 과소집계 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임대료 추이 파악이 조사의 주목적인 탓에 표본 선정 과정에서 공실 비중이 높은 상가를 제외했다는 것이다.공실률 조사는 분기마다 발표되는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조사’의 일환으로 이뤄진다.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조사에는 공실률 외에도 주요 상권의 투자수익률과 임대료 조사가 포함된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조사의 주요 목적은 임대료 변화와 투자수익률 파악이다. 이 때문에 연면적 50% 이상이 임대된 상가 건물을 표본으로 정하는 원칙이 있다, 임대가 돼야 임대료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규모 상가는 1,2개 매장이 공실이더라도 표본에서 제외돼 공실률이 0%로 집계된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제한된 예산과 인원으로 최대한 효율적으로 조사를 진행하려다보니 50% 이상 임대 원칙이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금융 위험 관리나 정책 지원을 위해 정확한 공실률 파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감정원이 자체 목적에 따라 임대동향을 조사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면서 “대부분의 건물주들이 대출을 통해 부동산을 구입한다. 이 때문에 공실률이 올라가면 금융리스크도 커질 수 있다. 금융리스크를 관리하는 차원에서라도 공실률 현황이 어떤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리스크를 담당하는 기관에서 공실률 파악을 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감정원은 10월 29일 3분기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조사를 발표할 예정이다. 3분계 통계는 얼마나 현실을 반영할지 주목된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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