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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시계 논란으로 흐려진 신천지의 코로나 슈퍼전파 책임론

’정치와 종교에 대한 언급 삼가자‘는 금기 깨야 정치와 종교 개혁 가능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박근혜 시계 논란으로 흐려진 신천지의 코로나 슈퍼전파 책임론

3월 2일 경기 가평 신천지연수원 앞에서 기자회견 중인 이만희 총회장. [뉴스1]

3월 2일 경기 가평 신천지연수원 앞에서 기자회견 중인 이만희 총회장. [뉴스1]

영화 ‘곡성’(2016)에 등장했던 ‘뭣이 중헌디’라는 대사를 기억하는가. 마을에서 발생하는 엽기적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종구(곽도원 분)에게 그 딸인 효진(김환희 분)이 의미심장하게 던지는 대사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그게 뭘 의미할까를 추적하지만 결말부에 가서야 그것이 관객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한 함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뭣이 중헌디’와 같은 역할을 하는 영화적 장치를 ‘맥거핀’이라고 한다. 이를 자주 써먹었던 알프레드 히치콕이 이름 붙인 것이다. 스코틀랜드 고지대에 사는 사자를 사냥하기 위한 장치라지만 스코틀랜드에는 사자가 서식하지 않고 있기에 결국 아무 것도 아님이 드러난 것을 맥거핀이라고 한다는 에피소드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이만희 시계가 말해주는 것

사죄의 절을 하는 이만희 씨 손목의 청와대 시계.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사죄의 절을 하는 이만희 씨 손목의 청와대 시계.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3월 2일 이만희 신천지예수교(신천지) 총회장의 기자회견장에서도 맥거핀이 등장했다. 바로 그가 차고 나온 박근혜 전 대통령 이름이 적힌 황금빛 시계다. 이날 인터넷에선 하루종일 그 시계의 진위 여부와 그가 굳이 그 시계를 차고 나온 이유에 대한 온갖 추측과 갑론을박이 난무했다. 

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박 전 대통령 시절 집권당이었던 새누리당 출신 야권인사들에게 “나를 보호하지 않으면 신천지와 옛 새누리당 세력과 특수 관계를 폭로하겠다”는 메시지가 담겼다고 주장했다. 이 총회장이 “순우리말로 신천지와 같은 뜻의 새누리라는 당명은 내가 지어준 것”이라고 했다는 옛 신천지 신도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추론이다. 반면 야권인사들은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가짜 시계’를 차고 나온 것이라며 코로나 19 확산에 대한 현 정부의 책임을 호도하기 위한 여론몰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대통령 시계’를 제작·납품한 ‘로만손’ 측은 3일 이 총회장이 차고 나온 시계가 자신들이 납품한 것과 디자인과 색상이 다르다고 밝혔다. 

그로 인해 이 총회장의 발언이나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신천지의 책임문제는 다 잊혀지고 그가 차고 나온 시계에만 정신이 팔리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신천지가 의도한 진짜 노림수 아니었을까. 국가적 재난 사태 속에서도 사분오열해 싸우기 바쁜 한국사회에 또 다른 정쟁거리를 던져주는 것. 그로 인해 신천지를 향하던 국민적 분노를 희석시키고 분산시키는 맥거핀 효과를 계산한 것일 수 있다는 소리다. 



만일 신천지 지도부가 이를 의도했다면 그들은 지금쯤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게 틀림없다. 어쩌면 팔순이 넘은 이 총회장이 아무 생각 없이 그 시계를 차고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한 부수적 효과를 지켜보면서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거봐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이번에도 여지없이 보여줬잖아. 신도들은 더욱 더 ‘약속의 목자’인 나를 경배하게 될 거야.‘


인간은 사회적 동물? 정치적 동물!

유병언(왼쪽).  최순실 박근혜 최태민. [JTBC 탐사플러스 캡처, SBS

유병언(왼쪽). 최순실 박근혜 최태민. [JTBC 탐사플러스 캡처,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우리 국민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구원파’로 알려진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이 이끄는 종교단체의 등장에 경악했다. 2016년 ‘최순실 스캔들’ 때는 ‘영세교’를 이끌던 최태민 목사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흠칫했다. 그리고 다시 코로나19 사태에서 신천지를 만나게 됐다.

이쯤 되면 정치와 종교의 음습한 결탁을 발본색원할 정책적 대안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매번 그때 호들갑을 떨고선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고 산다. 왜 그럴까. 한국사회가 정치와 종교 문제에 대해서 항상 괄호를 쳐놓고 유보적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사교모임이나 동호회, 카톡방 같은 곳에서 종종 접하는 표현이 있다. “정치와 종교에 대한 언급은 자제를 부탁드립니다.” 대다수 한국인은 이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정치와 종교 이야기가 나오면 결론은 나지 않고 인간관계만 망가지더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와 종교를 양지로 끌어올리지 않고 음습하게 방치하는 이런 태도로 인해 한국사회에서 정치가 ‘막장’으로 치닫고, 종교가 ‘걸림돌’로 작용하게 만들었음을 이제는 직시해야한다. 일상에서 정치적 사안과 종교적 문제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벌어져야 지금과 같은 대형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정치가 여론과 따로 놀고, 종교가 사회발전에 제동을 거는 고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 

정교일치에 반대하는 한국사회에서 왜 정치와 종교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하게 됐을까. 거기엔 한국만의 역사적 체험이 한몫을 하고 있다. 먼저 정치는 일제강점기에는 총독부 관료, 독재정권 시절에는 대통령과 그에 충성하는 소수에게만 허용돼야할 그 무엇이었다. 그 시절의 권력자들로선 모든 시민이 정치 문제를 사유하고 발언하는 사태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정치적’이란 형용사에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라는 부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들에게 ‘정치적’이란 낙인을 찍어버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치적 동물’이란 뜻의 ‘조온 폴리티콘(zoon politikon)’이 한동안 한국에서 ‘사회적 동물’로 번역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삶을 둘로 분류했다. 하나는 동물적 삶을 뜻하는 조에(zoe)와 정치적 삶을 뜻하는 비오스(bios)다. 조에가 의식주와 생로병사 문제에 집중한 삶이라면 비오스는 공동체를 어떻게 가꾸고 보존하느냐의 문제에 집중한 삶이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폴리스)의 시민으로서 여러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동료시민을 설득해 처리해나가는 것, 그게 바로 정치적 삶으로서 비오스다. 그렇게 비오스에 충실한 인간이 조온 폴리티콘인 것이다.


정치와 종교에 대한 언급을 허하라

신천지예수교회에서 설교 중인 이만희 총회장. [KBS 뉴스특보 캡처]

신천지예수교회에서 설교 중인 이만희 총회장. [KBS 뉴스특보 캡처]

민주화된 한국사회에서 그런 조온 폴리티콘은 얼마나 될까. 정치는 여전히 낯설고 불편하고 불온한 것이란 취급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 심지어 정치에 종사하는 정치인조차 정적을 공격할 때 “너무 정치적”이란 표현을 쓰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일상의 삶에서 유리된 채 선거철 ‘반짝 장사’만으로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정치는 다시 음습한 종교와 결탁해 대중동원의 대가를 받고 사회적 지탄과 비판을 차단하고 이단을 정통으로 둔갑시켜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해준다. 그래서 우리가 목도하는 것이 무엇인가. 현실정치에 대놓고 개입하면서 이에 대한 비판이 일 때마다 “정치와 종교에 대한 언급을 삼가자”는 방패 뒤에 숨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이야말로 고도의 정략적 행위다. 신천지의 이만희 총회장의 반짝이는 시계의 계시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들을 공격하는 적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들라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정략’을 보란 듯이 시전하고 나선 탄압받고 핍박받는 순수 종교인의 포즈를 취한 것이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려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베어낸 알렉산더 대왕의 결단이 필요하다. ‘정치와 종교에 대한 언급을 삼가자’는 오래된 팻말을 부셔버리는 것이다. 그를 대신할 팻말이 굳이 필요하다면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마라‘로 충분하다.






주간동아 2020.03.06 1229호 (p4~6)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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