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8세가 된 이민주(李民主)군은 오늘 아침 다른 때보다 30분 가량 더 일찍 일어나야 했다. 오늘은 18대 국회의원 선거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참정권을 행사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투표권은 지난 17대 총선 때부터 20세에서 18세로 낮아졌다. 이민주군은 옛날에는 왜 투표권을 20세 이상에게만 주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거실로 나가자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벌써 모여서 대형 벽걸이 TV로 후보자들의 정책 공약이며, 신상명세서 등을 살펴보고 있었다. 16대 총선부터 도입되었다는 후보자 신상 공개는 갈수록 후보의 당락을 결정하는 주요 잣대가 되어서 이제는 납세나 병역문제에 흠이 있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은 아예 출마 자체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전과 경력이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민주군은 후보자들의 공약이나 신상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인터넷 방송에서 몇 차례나 후보자 초청 토론회를 실시간으로 중계했기 때문에 누가 더 나라와 유권자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인지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민주군 가족의 투표는 10여분만에 모두 끝났다. 투표라고 해야 집에서 자기 주민등록번호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지지하는 후보의 기호만 입력시키면 그걸로 끝. 이민주군은 “옛날에는 선거일엔 놀았다는데…”라고 투덜거리며 학교로 향했다. 오늘은 학교에서 이제 박물관으로 변한 여의도 국회의사당 견학을 가기로 돼있었다. 의원들도 이제는 ‘사이버 의회’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의사당에는 당선 후 선서하기 위해 한 번 모일 따름이었다….
위의 이야기는 물론 가상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 눈앞에 어느 정도 가시화되고 있는 얘기라는 점에서 전혀 근거없는 먼 훗날의 일도 아니다. 우리의 현실은 분명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을 가져다 주는 것은 바로 ‘인터넷 혁명’이다.
중앙선관위가 홈페이지(www.nec.go.kr)에서 후보자들의 전과 사항을 일부 공개한 4월6일. 공개 2시간여만에 4000여명이 접속하는 등 ‘접속 과다’로 인한 중앙선관위 서버의 몸살은 다음날인 7일에도 계속되었다. 공개게시판에는 6일 이후에만 280여건이 넘는 글들이 올라왔다.
이처럼 정치 현장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유권자)가 직접 맞닿는 정치 유통구조의 혁명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갖가지 정보 문지기(gate keeper)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직접 민주주의’로 걸어가는 그 한가운데에 이번 16대 총선이 있다. 인터넷이 단순히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하는 차원을 넘어서 우리의 정치 문화를 변화시키는 구심점으로 일약 부상하게 된 것. 이른바 전자 민주주의(Emocracy)나 인터넷 정치(E-Politics) 시대의 도래이다.
아테네에서 처음 시작된 직접민주주의는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간접민주주의로 전환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구나 인터넷을 하게 되면서 인터넷은 시민과 정치를 곧바로 연결시키는 직접민주주의의 새로운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16대 총선 최고의 ‘뉴스메이커’이자 시민혁명의 기수로 떠오른 ‘총선시민연대’ 홈페이지(www.ngokorea.org)에는 지난 4월7일부터 ‘ 선관위가 숨긴 80만원!!’이라는 내용이 올라와 있다. 국회의원의 경우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으면 의원직이 박탈되지만, 지난 15대 선거법 위반 의원의 5.6%인 7명만이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례에서 보듯 일반 시민에 대한 법적용과 국회의원에 대한 법적용의 간극이 크다고 보고, 자체 조사를 통해 선관위가 공개하지 않은 총선 후보의 선거법 위반 전과기록을 공개한 것. 여기에는 민주당 4명, 한나라당 5명 등 모두 22명의 선거법 위반 전과기록이 자세히 담겨 있다. 총선연대는 전과기록 공개 기준이 ‘금고형 이상’으로 한정된 것부터가 지난 2월 선거법 개정 당시 의원들이 ‘담합’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총선연대 주장의 옳고그름 여부와 상관없이 이들이 말하는 바는 네티즌에게 실시간으로 광범위하게 유포되며, 또 확대 재생산될 것이다. 비단 총선연대 사이트만이 아니다. 총선연대가 주축이 된 ‘네티즌 선거 참여를 위한 M-tizen 공동행동’(229호 커버스토리 20쪽 기사 참조)에는 ‘총선정보통신연대’(www.netngo.or.kr) 등 17개 사이트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의 홈페이지에서 이들 사이트를 모두 링크해 서로의 연대성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0대 젊은이들에 의해 최초의 총선 관련 사이트라 할 수 있는 ‘이마크러시’(www.emocracy.co.kr)가 생긴 이후 현재 인터넷의 총선 관련 사이트들은 30여개를 넘어서고 있다. 그 성격도 전국 227개 선거구의 후보자들이 선거운동 기간에 서로를 칭찬할 수 있는 무대로 활용하고자 한 ‘노비방’(www.nobibang.co.kr)부터 후보자 개인 홈페이지를 일일이 탐방해 공약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선거 일정과 정가 소식을 네티즌들에게 서비스하는 ‘당선’(www. dangseon.com)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또한 하이텔 등 4대 PC통신이나 ‘다음’(www. daum.net) 등의 포털 사이트에는 수백개가 넘는 비전문적 정치 커뮤니티들이 나름대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3월초 민주당 박상천총무와 한나라당 이부영총무는 각기 서울 종로의 ‘오마이뉴스’(www.ohmynews.co.kr)라는 인터넷 방송국을 찾아 몇 시간씩 할애해가며 이 방송국의 인터뷰에 응했다. 선거철에 가장 바쁜 이들이 일반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햇병아리 언론의 인터뷰에 시간을 내준 것부터가 인터넷 정치의 도래를 실감하게 만든 사건이다.
지난 3월4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한국정치인포메이션뱅크(www.pibkorea.co.kr), 한국정당정치연구소 등의 공동 주관으로 사상 처음 ‘인터넷과 정치’라는 세미나가 열렸다. 한국정치학회 김학준회장이 기조발제를 한 이 세미나에서 여주대학 이동선교수는 “지난날의 권위적이며 하달식인 일방 커뮤니케이션에서 벗어나 모든 네티즌이 자유롭고 평등한 입장에서 의사를 소통하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특징으로 하는 인터넷은 선거 과정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또 크게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즉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확산은 민주주의의 형식을 전자민주주의로 크게 바꾸고 있고, 그 내용을 쌍방향의 참여민주주의로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 서울산업대 백욱인교수도 “수많은 네티즌이 인터넷의 기본 철학과 이념으로 ‘제퍼슨의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이유는 제퍼슨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기반으로 네티즌은 서로 연대하고 행동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란 ‘집회와 결사’의 자유와 곧바로 연결되는 것”이라면서 “시간적 제한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전국의 네티즌이 한데 모여 자신들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결집된 힘을 보여줄 수 있다. 이를 통해 네티즌 스스로 힘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네트가 네티즌에게 부여하는 독특한 힘인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힘’이다”고 강조한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이용하여 사이버 후원금까지 모금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비록 후보 지명전에서 패배했지만 미국 대선의 돌풍으로 등장했던 매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은 사이버 선거운동의 위력을 입증했다. 매케인은 불과 한 시간 사이에 컴퓨터 웹사이트를 통해 2만달러의 정치헌금을 모았고, 3주 동안 370만달러의 헌금과 2만6000여명의 자원 봉사자를 컴퓨터로 확보했다. 이 헌금은 빌 브래들리 전상원의원의 인터넷 헌금 150만달러의 두 배가 훨씬 넘고, 자신의 전체 모금액 1600만달러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그러나 이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매케인 선거팀은 98년 미네소타 주지사 선거에서 프로레슬러 출신 제시 벤추라 후보가 이메일 선거운동으로 성과를 올렸다는 점에 착안해 지난해 미네소타로 원정을 가서 온라인 선거운동을 집중 연구했다는 것. 이에 대해 조지 워싱턴대의 마이클 콘필드 교수는 “매케인이 사이버 선거운동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하면서 “이제 정치인들이 한 번 탄력을 받으면 선거를 해볼 만한 시대가 왔다”고 분석했다.
정보통신부는 1999년을 계기로 국내 인터넷 이용자가 10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게했다. 유권자의 57%를 차지하는 20, 30대의 인터넷 이용률은 55.5%. 이 수치는 이들이 인터넷을 통한 정치 커뮤니케이션에 영향받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20대는 인구 대비 42.9%가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 이용자 중 유권자는 대략 650만명으로 추산된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227개 한 선거구당 인터넷 이용자가 2만8600여명. 이 정도면 충분히 특정 후보의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인터넷 사용자 자체에 허수가 있을 수 있고, 정치적 무관심이 팽배한 20대 초반을 제외하더라도 대략 1만5000여명 정도의 인터넷 상용자 유권자는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인터넷 정치는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다. 여론조사전문기관인 ‘한길리서치’의 지난 4월8일 조사에 따르면 유권 자중 인터넷으로 시민단체나 선관위 사이트를 방문한 사람은 16.9%에 불과했다. 이를 연령층으로 보았을 때 30대가 25.6%, 40대는 19.2%, 20대는 17.8%로 제일 낮아 20대의 정치 무관심 현상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이들의 투표태도 변화지수도 기권에서 참여로의 이동은 5.6%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까지 ‘인터넷 정치’가 현실정치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와 선관위 사이트의 영향은 투표율보다 후보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치며, 특히 20~30대 연령층에서는 그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민주주의의 무한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제도권 정치권의 의도적인 ‘방해’도 적지 않다. 이는 결국 네티즌의 힘이 현실 세계(오프 라인)에서도 얼마만큼이나 연대할 수 있느냐는 새로운 물음을 낳는다. ‘디지털 연대’는 일시성과 체질적 허약성이라는 근본적 단점이 있다. 온라인 상에서의 실천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최종적인 권력은 결국 오프 라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주의 새 지평은 바로 이같은 한계를 어떻게 헤쳐나가는지에 달려 있는 셈이다.
거실로 나가자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벌써 모여서 대형 벽걸이 TV로 후보자들의 정책 공약이며, 신상명세서 등을 살펴보고 있었다. 16대 총선부터 도입되었다는 후보자 신상 공개는 갈수록 후보의 당락을 결정하는 주요 잣대가 되어서 이제는 납세나 병역문제에 흠이 있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은 아예 출마 자체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전과 경력이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민주군은 후보자들의 공약이나 신상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인터넷 방송에서 몇 차례나 후보자 초청 토론회를 실시간으로 중계했기 때문에 누가 더 나라와 유권자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인지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민주군 가족의 투표는 10여분만에 모두 끝났다. 투표라고 해야 집에서 자기 주민등록번호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지지하는 후보의 기호만 입력시키면 그걸로 끝. 이민주군은 “옛날에는 선거일엔 놀았다는데…”라고 투덜거리며 학교로 향했다. 오늘은 학교에서 이제 박물관으로 변한 여의도 국회의사당 견학을 가기로 돼있었다. 의원들도 이제는 ‘사이버 의회’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의사당에는 당선 후 선서하기 위해 한 번 모일 따름이었다….
위의 이야기는 물론 가상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 눈앞에 어느 정도 가시화되고 있는 얘기라는 점에서 전혀 근거없는 먼 훗날의 일도 아니다. 우리의 현실은 분명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을 가져다 주는 것은 바로 ‘인터넷 혁명’이다.
중앙선관위가 홈페이지(www.nec.go.kr)에서 후보자들의 전과 사항을 일부 공개한 4월6일. 공개 2시간여만에 4000여명이 접속하는 등 ‘접속 과다’로 인한 중앙선관위 서버의 몸살은 다음날인 7일에도 계속되었다. 공개게시판에는 6일 이후에만 280여건이 넘는 글들이 올라왔다.
이처럼 정치 현장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유권자)가 직접 맞닿는 정치 유통구조의 혁명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갖가지 정보 문지기(gate keeper)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직접 민주주의’로 걸어가는 그 한가운데에 이번 16대 총선이 있다. 인터넷이 단순히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하는 차원을 넘어서 우리의 정치 문화를 변화시키는 구심점으로 일약 부상하게 된 것. 이른바 전자 민주주의(Emocracy)나 인터넷 정치(E-Politics) 시대의 도래이다.
아테네에서 처음 시작된 직접민주주의는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간접민주주의로 전환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구나 인터넷을 하게 되면서 인터넷은 시민과 정치를 곧바로 연결시키는 직접민주주의의 새로운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16대 총선 최고의 ‘뉴스메이커’이자 시민혁명의 기수로 떠오른 ‘총선시민연대’ 홈페이지(www.ngokorea.org)에는 지난 4월7일부터 ‘ 선관위가 숨긴 80만원!!’이라는 내용이 올라와 있다. 국회의원의 경우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으면 의원직이 박탈되지만, 지난 15대 선거법 위반 의원의 5.6%인 7명만이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례에서 보듯 일반 시민에 대한 법적용과 국회의원에 대한 법적용의 간극이 크다고 보고, 자체 조사를 통해 선관위가 공개하지 않은 총선 후보의 선거법 위반 전과기록을 공개한 것. 여기에는 민주당 4명, 한나라당 5명 등 모두 22명의 선거법 위반 전과기록이 자세히 담겨 있다. 총선연대는 전과기록 공개 기준이 ‘금고형 이상’으로 한정된 것부터가 지난 2월 선거법 개정 당시 의원들이 ‘담합’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총선연대 주장의 옳고그름 여부와 상관없이 이들이 말하는 바는 네티즌에게 실시간으로 광범위하게 유포되며, 또 확대 재생산될 것이다. 비단 총선연대 사이트만이 아니다. 총선연대가 주축이 된 ‘네티즌 선거 참여를 위한 M-tizen 공동행동’(229호 커버스토리 20쪽 기사 참조)에는 ‘총선정보통신연대’(www.netngo.or.kr) 등 17개 사이트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의 홈페이지에서 이들 사이트를 모두 링크해 서로의 연대성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0대 젊은이들에 의해 최초의 총선 관련 사이트라 할 수 있는 ‘이마크러시’(www.emocracy.co.kr)가 생긴 이후 현재 인터넷의 총선 관련 사이트들은 30여개를 넘어서고 있다. 그 성격도 전국 227개 선거구의 후보자들이 선거운동 기간에 서로를 칭찬할 수 있는 무대로 활용하고자 한 ‘노비방’(www.nobibang.co.kr)부터 후보자 개인 홈페이지를 일일이 탐방해 공약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선거 일정과 정가 소식을 네티즌들에게 서비스하는 ‘당선’(www. dangseon.com)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또한 하이텔 등 4대 PC통신이나 ‘다음’(www. daum.net) 등의 포털 사이트에는 수백개가 넘는 비전문적 정치 커뮤니티들이 나름대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3월초 민주당 박상천총무와 한나라당 이부영총무는 각기 서울 종로의 ‘오마이뉴스’(www.ohmynews.co.kr)라는 인터넷 방송국을 찾아 몇 시간씩 할애해가며 이 방송국의 인터뷰에 응했다. 선거철에 가장 바쁜 이들이 일반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햇병아리 언론의 인터뷰에 시간을 내준 것부터가 인터넷 정치의 도래를 실감하게 만든 사건이다.
지난 3월4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한국정치인포메이션뱅크(www.pibkorea.co.kr), 한국정당정치연구소 등의 공동 주관으로 사상 처음 ‘인터넷과 정치’라는 세미나가 열렸다. 한국정치학회 김학준회장이 기조발제를 한 이 세미나에서 여주대학 이동선교수는 “지난날의 권위적이며 하달식인 일방 커뮤니케이션에서 벗어나 모든 네티즌이 자유롭고 평등한 입장에서 의사를 소통하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특징으로 하는 인터넷은 선거 과정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또 크게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즉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확산은 민주주의의 형식을 전자민주주의로 크게 바꾸고 있고, 그 내용을 쌍방향의 참여민주주의로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 서울산업대 백욱인교수도 “수많은 네티즌이 인터넷의 기본 철학과 이념으로 ‘제퍼슨의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이유는 제퍼슨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기반으로 네티즌은 서로 연대하고 행동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란 ‘집회와 결사’의 자유와 곧바로 연결되는 것”이라면서 “시간적 제한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전국의 네티즌이 한데 모여 자신들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결집된 힘을 보여줄 수 있다. 이를 통해 네티즌 스스로 힘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네트가 네티즌에게 부여하는 독특한 힘인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힘’이다”고 강조한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이용하여 사이버 후원금까지 모금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비록 후보 지명전에서 패배했지만 미국 대선의 돌풍으로 등장했던 매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은 사이버 선거운동의 위력을 입증했다. 매케인은 불과 한 시간 사이에 컴퓨터 웹사이트를 통해 2만달러의 정치헌금을 모았고, 3주 동안 370만달러의 헌금과 2만6000여명의 자원 봉사자를 컴퓨터로 확보했다. 이 헌금은 빌 브래들리 전상원의원의 인터넷 헌금 150만달러의 두 배가 훨씬 넘고, 자신의 전체 모금액 1600만달러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그러나 이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매케인 선거팀은 98년 미네소타 주지사 선거에서 프로레슬러 출신 제시 벤추라 후보가 이메일 선거운동으로 성과를 올렸다는 점에 착안해 지난해 미네소타로 원정을 가서 온라인 선거운동을 집중 연구했다는 것. 이에 대해 조지 워싱턴대의 마이클 콘필드 교수는 “매케인이 사이버 선거운동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하면서 “이제 정치인들이 한 번 탄력을 받으면 선거를 해볼 만한 시대가 왔다”고 분석했다.
정보통신부는 1999년을 계기로 국내 인터넷 이용자가 10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게했다. 유권자의 57%를 차지하는 20, 30대의 인터넷 이용률은 55.5%. 이 수치는 이들이 인터넷을 통한 정치 커뮤니케이션에 영향받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20대는 인구 대비 42.9%가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 이용자 중 유권자는 대략 650만명으로 추산된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227개 한 선거구당 인터넷 이용자가 2만8600여명. 이 정도면 충분히 특정 후보의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인터넷 사용자 자체에 허수가 있을 수 있고, 정치적 무관심이 팽배한 20대 초반을 제외하더라도 대략 1만5000여명 정도의 인터넷 상용자 유권자는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인터넷 정치는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다. 여론조사전문기관인 ‘한길리서치’의 지난 4월8일 조사에 따르면 유권 자중 인터넷으로 시민단체나 선관위 사이트를 방문한 사람은 16.9%에 불과했다. 이를 연령층으로 보았을 때 30대가 25.6%, 40대는 19.2%, 20대는 17.8%로 제일 낮아 20대의 정치 무관심 현상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이들의 투표태도 변화지수도 기권에서 참여로의 이동은 5.6%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까지 ‘인터넷 정치’가 현실정치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와 선관위 사이트의 영향은 투표율보다 후보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치며, 특히 20~30대 연령층에서는 그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민주주의의 무한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제도권 정치권의 의도적인 ‘방해’도 적지 않다. 이는 결국 네티즌의 힘이 현실 세계(오프 라인)에서도 얼마만큼이나 연대할 수 있느냐는 새로운 물음을 낳는다. ‘디지털 연대’는 일시성과 체질적 허약성이라는 근본적 단점이 있다. 온라인 상에서의 실천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최종적인 권력은 결국 오프 라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주의 새 지평은 바로 이같은 한계를 어떻게 헤쳐나가는지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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