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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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녀 벌집’ 잘못 건드렸다

경찰, 선거 개입 의혹 이어 축소 수사 논란…수뇌부·책임자 불협화음까지

  • 고상민 연합뉴스 사회부 기자 gorious@yna.co.kr

    입력2013-02-15 17: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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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녀 벌집’ 잘못 건드렸다

    이광석 서울 수서경찰서장이 지난해 12월 17일 국정원 여직원 김모 씨의 야당 후보 비방 댓글 의혹 사건 중간 수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대통령선거(대선)를 8일 앞둔 지난해 12월 11일 밤.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인터넷에서 조직적으로 야당 대선후보에게 악성댓글을 단다는 신고를 받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민주통합당(민주당) 관계자와 함께 서울 역삼동에 있는 한 오피스텔에 들이닥쳤다.

    이어 경찰과 기자 수십 명이 몰려들자, 오피스텔 거주자인 국정원 여직원 김모(29) 씨는 문을 걸어 잠근 채 44시간 동안이나 대치했다.

    꼬박 두 달이 흐른 지금 김씨의 대선 개입의혹을 수사하는 경찰은 스스로 판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양새다. 수사 결과를 낼 수 있느냐는 지적과 함께 사건을 국정조사나 특검에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갈팡질팡‘ 말 바꾸기 불신 자초

    수사 신뢰성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는 건 경찰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대선 사흘 전 무리한 중간 수사 결과 발표로 오해를 산 데다, 잦은 말 바꾸기에 비공개 수사원칙만 고집하다 부실·축소 수사 논란을 불렀기 때문이다.



    또 설 연휴까지 끝마치겠다던 수사가 지연되면서 김씨와 그의 인터넷 활동을 도운 이모 씨,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 여부 등과 관련해 확인되지 않은 의혹만 눈덩이처럼 커가고 있다. 수사를 이끌었던 권은희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다른 경찰서로 전보발령된 사실을 놓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 수서경찰서에 따르면, 김씨는 대선을 앞둔 지난해 8월 말부터 12월 11일까지 ‘오늘의 유머’ 등 인터넷 사이트 3곳에 정치·사회 이슈와 관련해 글 150여 개를 올렸다.

    그러나 이는 경찰이 그동안 설명해온 내용과 전혀 다르다. 1월 3일 이광석 수서경찰서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김씨가 특정 인터넷 사이트 2곳에 글을 올린 흔적은 있지만 대선이나 정치, 시사와 관련한 내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김씨가 야당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경찰은 “김씨가 주로 4대강이나 해군기지 건설 등 사회 이슈와 관련해 글을 올린 건 맞다”고 부랴부랴 말을 바꿨다. 특정 후보나 정당 이름만 포함되지 않았을 뿐, 대선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는 글로 밝혀짐에 따라 김씨의 선거 개입 의혹은 물론 국정원의 조직적인 여론조작 개연성까지 불거졌다.

    경찰은 두 달이 넘는 수사기간 내내 갈팡질팡하며 말 바꾸기를 거듭했다. 대선 사흘 전인 지난해 12월 16일 경찰은 한밤중에 대선후보와 관련해 김씨가 댓글을 단 흔적이 없다는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어 1월 초에는 “김씨가 올린 글도 있지만 대선과 직접 관련된 게 아닌 사적인 내용”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댓글녀 벌집’ 잘못 건드렸다

    국정원 여직원 김모 씨가 1월 4일 조사를 받으려고 서울 수서 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이를 두고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지시 하에 경찰이 부실한 수사 결과를 성급히 발표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2월 6일 민주당은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을 직권 남용과 경찰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경찰이 김씨가 정부와 여당을 옹호하고 야당에는 비판적 글을 올린 사실을 공개하지 않다가 뒤늦게 시인한 점을 두고 수사 축소 및 은폐 논란까지 뒤따랐다.

    경찰 수사가 두 달이 넘도록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면서 의혹만 난무한다. 김씨가 인터넷 사이트 3곳 외에 유명 포털사이트에도 비슷한 글을 올렸다는 주장이 인터넷상에 떠도는가 하면, 언론의 의혹 제기도 잇따른다. 김씨 아이디 5개로 인터넷에서 활동한 것으로 확인된 ‘제3 인물’ 이모 씨가 다른 30개 아이디로 글 160건을 올리고 2000여 차례 게시물에 찬반 표시를 했다면서 사실상 국정원의 ‘댓글 알바’라는 의혹까지 나온다.

    이에 대해 경찰은 피의사실 공표라며 ‘감추기 수사’에만 급급해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더 키우는 형국이다. 당초 설 연휴 안에 끝내겠다던 수사는 아직 밑그림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핵심 참고인인 이씨에 대한 조사만 마치면 수사 결과를 종합해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씨는 참고인 조사에 응하지 않다가 지난달 초 돌연 잠적했고, 그 바람에 수사가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수사 실무 책임자인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수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전보발령돼 그 배경을 놓고 뒷말이 무성했다. 그동안 권 과장은 수사 내용 발표 시점이나 공개할 내용의 선별을 놓고 경찰 수뇌부와 마찰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사흘 전 경찰이 “대선 관련 댓글 흔적이 없다”는 내용의 중간 수사 결과를 성급히 발표한 직후 권 과장이 “윗선의 지시 때문”이라고 하자, 다음 날 이광석 수서경찰서장은 “개인적 판단에 따른 것일 뿐 윗선 개입은 없었다”고 무마하기도 했다.

    피의사실 감추기 급급 의혹만 키워

    경찰은 권 과장의 발령을 두고 서울 시내 경찰서 과장급(경정)의 경우 통상적으로 근무기간이 1년이 넘으면 교체한다는 인사 방침에 따른 것이라며 다른 고려사항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인사에서 경비·정보 관련 업무가 과중한 서울 종로, 남대문, 영등포서의 경우 경찰서장이 해당 과장의 잔류를 특별히 요청해 근무기간 1년이 넘은 경정급 인사 대상자 7명이 그대로 잔류한 것으로 드러나 권 과장의 발령에 대한 의구심을 부채질한다.

    경찰 수뇌부 관계자는 “이광석 수서경찰서장이 권 과장의 잔류를 요청하지 않아 그대로 인사 발령 냈다”고 전했다. 외부 시선을 의식해서였는지 경찰은 권 과장을 2월 4일자로 발령 내고도 8일까지 수서경찰서에서 파견 근무형태로 일하게 했다. 지지부진한 수사라는 비판에 ‘입맛에 안 맞는 수사 책임자 교체’라는 지적을 피하려는 궁여지책이었다.

    논란이 일자 경찰 수뇌부는 2월 8일 권 과장에게 “파견 근무를 계속하겠느냐”고 의사를 물었으나 권 과장이 사양했다. 이에 대해 권 과장은 “이미 인사발령으로 재가 및 보고 라인이 다 바뀐 상황에서 계속 있어 봐야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경찰 한 관계자는 “권 과장에게 수사를 맡길 뜻이 있었다면 애초에 인사발령을 내지 않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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