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어린이 성폭행 피의자 고종석.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며 정부가 내놓은 대책을 살펴보면,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처벌 강화, 전자발찌 부착 및 관리 강화, 성충동 약물치료(화학적 거세) 대상 확대, 성범죄자 신상정보 공개 강화, 보호감호제도 신설, 인터넷 음란물 단속 강화, 길거리 불심검문 등이다. 그러나 어느 하나 실효성이 입증된 것이 없고, 위헌 논란 여지가 있는 제도도 포함됐다.
정남규, 강호순, 김길태, 오원춘 등 최근 몇 년 사이 엽기적인 살인마가 등장할 때마다 여론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면 정부는 대책을 내놓는 식의 레퍼토리가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여론은 다소 감정에 치우친 면이 있고, 정부는 진지한 검토보다 성난 국민의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데 급급한 모양새다.
이제는 진정으로 실효성 있는 범죄 대책을 강구할 때가 됐다. 범죄를 사회현상으로 파악해볼 필요도 있다. 사회현상이라면 인과관계가 있을 테고, 대책도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두순 사건 후 성폭행범에 대한 형벌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여론이 들끓자 정부가 전자발찌와 화학적 거세제도를 신설했지만, 대상자별 효과를 분석하고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에는 무관심했던 것 같다.
범죄에 부과하는 형벌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관해서는 학문적으로도 논란이 많다. 고전적 형벌론의 경우, 정상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다는 전제하에 범죄를 저지른 자는 악이며, 탈리오 법칙에 따라 악을 응징해 정의의 감정을 충족하는 것이 형벌의 목적이라고 본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형벌이란 범죄로부터 사회를 방어하는 도구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범죄자에게 가혹한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사회 전체에 경각심을 조성하고 범죄를 예방한다는 일반예방주의 형벌론이 대표적이다. 또한 범죄자를 교화하고, 교화가 안 되는 범죄자는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켜 재범을 막는 것이 형벌의 목적이라고 본 특별예방주의 형벌론도 있다.
조두순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주장은 고전적 형벌론에 해당하고, 사형제도를 존치해 실제 집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반예방주의 형벌론에 속한다. 전자발찌와 보호감호제도 등은 특별예방주의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이 3가지 형벌론은 모두 장단점을 지니고, 대상 범죄나 범죄자별로 일면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가혹한 형벌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나주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고종석은 거실에서 가족과 함께 잠을 자던 7세 아동을 이불째 납치해 일을 저질렀으니 정상적인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실제로 고종석은 어릴 때부터 계모와 계모가 데리고 온 딸로부터 구박을 받았고, 친부마저 학대하는 등 기구한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결국 정부와 국민 모두가 합심해 범죄의 원인과 범죄자를 과학적으로 냉정하게 분석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대책을 적용한 다음엔 실효성을 재검토해보는 진지한 태도가 필요하다. 과거 우리나라에는 범죄자를 교화, 치료해 사회에 내보내겠다는 좋은 취지의 치료감호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형기만 늘리는 셈이 돼 위헌판결을 받고 사라졌다. 그런데 이번에 같은 취지의 보호감호제도를 신설하겠다는 것이다.
범죄에 대한 대책은 국가의 기본 임무이면서 매우 어려운 과제다. 사건이 발생하면 즉흥적으로 분노하고 어설픈 대책을 한번 제시해보는 것으로 되는 일이 결코 아니다. 시간을 들이고 많은 돈도 투자해야 한다. 아울러 피해 아동과 가정에 대한 보상 및 사후관리도 국가의 책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취약계층일수록 구석구석 더 잘 살펴 안전에 이상이 없도록 배려하는 국가야말로 진정한 선진국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