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아파트에 혼자 남게 되니 외롭고 쓸쓸하고, 그렇게 가버린 사람이 야속하고 또 생전에 고생시켜서 미안하고 그랬습니다. 정말 안사람을 따라가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6월15일 오후 4시 서울 성동구에 있는 성동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하늘소풍준비교실’ 1기 수료식(아래 사진)이 있었다. 발표자로 나선 심문원(81) 씨는 자서전을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지만, 아내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선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소리가 떨려왔다. 사별한 지 1년여. 웃음을 잃었고 사람 만나는 걸 꺼려왔지만, 그는 죽음준비교육을 받은 뒤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자서전을 쓰기 위해 예전 사진을 찾아보며 안사람이 매우 소중한 존재였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마음은 아프지만, 누구나 가는 세상에 조금 일찍 간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안사람은 죽을 때까지 암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을 겪지 않았어요. 의사들도 특이하다고 했죠. 지금 생각하면 이 역시 축복입니다. 같이 묻힐 묘지도 정했으니, 저는 이 세상에서 조금 더 행복하게 산 뒤 저세상에서 기쁘게 만나려고 합니다.”
“자서전 쓰면서 아내의 소중함 깨달아”
서울 동작구 시립동작노인종합복지관에서 있었던 ‘하늘소풍 준비하기’ 개강식.
전문 사진작가가 무료로 찍어줬다는 ‘장수사진’은 외부에서 ‘영정사진’이라고 부르는 것. 하지만 이들은 “사진을 찍어놓으면 오래 산다고 한다”며 ‘장수사진’이란 이름을 붙였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존엄사 인정 판결 등으로 ‘죽음’과 ‘품위 있게 잘 죽는 것’(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미 그전부터 다양한 이름의 죽음준비교육이 있어왔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죽음’ 강의는 노인복지 현장에서만 드물게 시도됐고, 반응 또한 그다지 좋지 않았다.
6월11일 오전 웰다잉교육 전문지도강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이들은 복지기관은 물론 대학, 종교단체 등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강의한다.
시민단체 등에서 비슷한 내용의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 올 들어서는 프로그램의 횟수와 양이 크게 늘었고, 예산 지원 및 후원 단체도 지방자치단체, 사기업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앞에서 예로 든 성동노인종합복지관의 하늘소풍준비교실은 성동구청이 예산을 지원했다.
6월10일 오후 2시 서울 동작구의 시립동작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하늘소풍준비하기’ 개강식이 열렸다. 이 프로그램은 9월30일까지 총 17회, 35시간 이상 진행된다.
담당자인 김인옥 과장은 “처음엔 20명 정원도 채우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신청자가 많아 정원을 25명으로 늘렸는데도 상당수 대기자를 돌려보내야 했다”며 “참가하는 분들도 ‘하늘쇼핑교육’이라고 농담을 할 만큼 긍정적으로 임한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도 한화손해보험이 전액 후원하기에 참가자가 지불할 비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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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총 11기, 220명의 수료생을 배출한 서울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의 ‘아름다운 생애 마감을 위한 시니어 죽음준비학교’는 9월, 12기 과정을 개강한다. 한때 대기자가 14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어 벌써부터 수강생이 몰린다.
최근에는 노인복지기관 외에 대학, 자원봉사, 가족복지 단체에서도 웰다잉에 대한 강의를 많이 진행한다. 아름다운재단의 ‘아름다운 이별학교’는 좀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참여한다. 이 프로그램의 특색은 유산 나눔사업의 일종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다른 강좌들보다 ‘나눔’의 가치를 알리는 데 주력한다는 점.
보통 10회, 20시간 안팎으로 진행되는 죽음준비교육은 크게 4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축은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까닭 살펴보기’.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교육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나누며,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과 이를 실천하는 방안 등을 찾아본다.
두 번째인 ‘용서와 화해, 감사하기’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자신의 삶과 화해하는 것. 자서전 쓰기가 대표적이다. 또 용서하고 용서받고 싶은 일을 떠올리며 그 방법을 찾아보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도 기억해 그 마음을 전달한다. 자신의 인생이 가치 있으며 잘 살았다고 깨닫게 하는 것도 교육목표 중 하나.
세 번째 ‘존엄한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는 존엄한 죽음을 맞기 위한 준비 과정을 뜻한다. ‘생존 시 유언서(Living Will)’ ‘사전의료지시서(Advance Directive)’의 필요성과 내용을 이해하고 작성해본다. 또 장기기증이나 호스피스 이용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네 번째 축인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정리하기’에서는 죽음 이후 남겨질 사람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생각해본다. 유언장을 써보고, 그 내용을 수강생끼리 나눠 봄으로써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또 법률 전문가에게 유언장이 법적인 효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도 배운다. 여기에 죽음 관련 연극이나 영화를 보고 소감 나누기와 장수사진 찍기, 장묘시설 견학하기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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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수료 후 죽음에 대한 인식 변화
웰다잉 연극단 단원들이 서울 종로구에 자리한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사무실에 모여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첫 무대는 8월21일에 있을 예정.
죽음준비교육 전문강사를 양성하는 곳도 있다. 각당복지재단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는 ‘죽음준비교육 지도자 과정’과 ‘웰다잉교육 전문지도강사 과정’을 운영한다. 웰다잉교육 전문지도강사 과정은 50세 이상으로 자격조건을 달았다. 주로 현업에서 은퇴한 ‘인텔리 실버’들이 참여한다는데, 2007년부터 올해까지 200여 명의 강사를 배출했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홍양희 회장은 “웰다잉 전문지도강사의 경우 강사 본인과 이들에게서 강의를 듣는 수강생 모두 만족해한다”고 설명했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강사들은 자신이 일을 함으로써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보람을 느끼고, 주로 노년층인 수강생들 역시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강사가 경험을 바탕으로 강의하기에 공감의 폭이 커진다는 것.
이 단체는 ‘웰다잉 연극단’도 만들었다. 참가자 전원이 아마추어지만 공연에 대한 열의만큼은 매우 뜨겁다고 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 공연 연습을 한다.
죽음 준비, 지나친 이벤트화 우려도
하지만 죽음준비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난다. ‘죽음 준비’를 ‘이벤트화’한다는 지적이 그 하나다. 유경 죽음준비교육 전문강사는 “영정사진을 찍고 유언장을 작성한 뒤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가 누워보는 ‘입관체험’을 하는 곳이 많아지면서, 이것이 죽음 준비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죽음은 특별한 ‘체험’이 아닌 일상”이라고 강조했다.
또 일시적인 유행에 따라 죽음준비교육에 섣불리 접근할 경우 오히려 죽음을 어둡고 무서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한다.
죽음준비교육이 활성화했다고는 하지만 노년층 대상의 프로그램이 주를 이룰 뿐, 청소년이나 중장년층을 위한 교육은 미비하다. 강사들은 “죽음준비교육을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나이에 상관없이 평소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그렇다면 평소에 죽음준비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더 많은 사람이 죽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 또 사람들 스스로 생존 시 유언서와 사전의료지시서, 유언장 등을 써놓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핵심은 ‘죽음을 기억하며, 지금 여기서 매일매일 행복하게 살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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