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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40대 민정수석, 우병우의 힘

당혹스러운 검찰…‘꼿꼿 검사’, ‘부자 검사’ 불편한 시선도

40대 민정수석, 우병우의 힘

40대 민정수석, 우병우의 힘

2011년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시절 우병우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임명돼야 검찰 인사를 할 수 있겠지. 우병우 대통령민정비서관(48·사법연수원 19기)은 일개 비서관일 뿐인데 그가 어떻게 인사를 조율할 수가 있겠나?”(1월 22일 검찰 고위 간부)

1월 23일 청와대 개편 인사가 발표되기 하루 전만 해도 검찰 내부에선 우 비서관이 신임 민정수석이 되리라는 예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제 나름 핵심 정보를 꿰차고 있다는 검찰 간부들조차 우 비서관은 ‘일개 비서관’일 뿐이었다. 여기엔 우 비서관에 대한 약간의 불편함이 섞여 있었다.

“일개 비서관이…” 검찰 ‘우병우 쇼크’

박근혜 대통령은 1월 23일 우 비서관을 김영한 전 민정수석(58·14기) 후임으로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적어도 검찰총장의 기수와 같거나 높은 인사가 민정수석이 될 것”이라는 당초 정치권과 검찰 안팎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은 결과였다. 검찰에선 “우 비서관이 민정수석이 되면서 가슴 졸이며 당황해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닐 것”이라는 얘기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우 수석이 이제 자신을 ‘일개 비서관’이라 부르던 여러 인사의 명단을 쥐고 법무부와 검찰, 청와대의 인사 의견을 조율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과 여러 업무를 함께 해야 하는데 민정수석에 너무 낮은 기수가 오는 건 좋지 않다”면서도 “그 또한 임명권자의 뜻이 있다면 뜻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황교안(58) 법무부 장관은 사법연수원 13기, 김진태(63) 검찰총장은 14기, 나이는 우 수석이 두 사람보다 열 살 이상 어리다. 전임인 김 전 수석과 이전의 홍경식 전 민정수석(64·8기)과 비교해도 19기의 40대 수석은 파격인사다. 특히 청와대 내부에서나 검찰에선 ‘차기 민정수석은 고검검사장 출신이거나 적어도 검사장 출신은 돼야 한다’는 게 보이지 않는 가이드라인으로 꼽혀왔다. 더군다나 우 전 비서관은 검사장 승진 문턱에서 고배를 마신 뒤 사표를 내고 변호사로 개업한 인사였다.

수사나 법률 등 사법 관련 업무를 하지만 정치 영역에 한 발을 담그고 있는 민정수석 자리에 대한 인사는 그동안에도 나이나 기수, 서열을 지키는 것이 관례는 아니었다. 현 정부 첫 민정수석인 곽상도 전 민정수석(56·15기)도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56·14기)이나 황 장관보다 후배였다. 노무현 정부 때 전해철 전 민정수석(53·19기·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검찰 출신도 아니었고, 정상명 당시 검찰총장(65·7기)보다 사법연수원 열두 기수, 나이로도 열두 살 아래였다. 특히 ‘정윤회 문건’ 사건과 그 진행 과정에서 드러났던 홍 전 수석, 김 전 수석과 그 아래 비서관들의 역할과 행동을 볼 때, 민정수석의 나이가 어리고 기수가 낮다고 청와대와 법무·검찰의 업무 협조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얘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검찰 출신의 한 정치권 인사는 “‘우병우 쇼크’는 검찰 내부에서 그 개인을 바라보는 복잡 미묘한 시각에서 나온 것이라는 게 정답”이라고 분석했다. 1967년 1월생인 우 수석은 서울대 3학년인 87년 20세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초임을 서울지방검찰청에 발령받았을 정도로 성적도 우수했다. 검사 시절 특별수사통으로 이름을 날리며 동기 중 선두를 달렸고, 서울중앙지방검찰청(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 대검찰청(대검) 중앙수사부 1과장, 대검 범죄정보기획관, 대검 수사기획관 등 요직을 거쳤다. 장인(2008년 작고한 이상달 기흥컨트리클럽 및 정강중기·정강건설 회장)의 상속재산 덕에 지난해 공직자 등록재산만 420억여 원,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이 공개되는 정부 고위공직자를 통틀어 재산이 가장 많다. 지력(知力)과 재력(材力)에 탄탄대로의 경력(經歷)까지, 검찰 안팎에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검찰에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잡히면 과도하게 앞뒤 안 가리는 수사를 한다” “너무 직선적인 성격으로 배려심이 없다” 등의 평가가 우 수석의 이미지로 굳어져버렸다. 일정 부분 그의 성격과 행동 탓도 있지만, “북향이던 중앙수사부 과장의 방을 직원들 반대를 무시하고 남향으로 옮기려 했다”는 등 사소한 행동들이 ‘무시무시한’ 그의 배경과 결합하면서 여러 사람의 시기심과 질투심을 자극한 측면이 크다.

그러나 민원이 통하지 않는 강직한 성격과 저돌적인 수사력을 높이 평가한 임채진 전 검찰총장은 서울중앙지검 부장을 마친 우 수석을 대검 중앙수사부 과장으로 역진(逆進) 인사를 감행했다.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맡긴 것이다. 우 수석의 검사장 승진 탈락도 결국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신문한 검사라는 ‘덫’이 한 원인이 됐다.

2005~2007년 법무부 법무실장으로 있을 때 우 수석을 법무실 법조인력정책과 과장으로 데리고 있던 김준규 전 검찰총장은 ‘우병우의 능력’을 두고두고 활용하고 싶어 했고, 검찰총장이 된 뒤 총장의 최측근 자리인 대검 범정기획관, 수사기획관으로 붙잡아뒀다.

2003~2004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2부가 모 대기업 수사를 진행 중일 때 이 기업은 부장검사부터 평검사까지 인맥, 학맥을 다 찾아 로비할 사람을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유독 부부장이던 우 수석만 수사 중 이 기업 측 사람을 절대 만나주지 않았다는 일화는 전설처럼 남아 있다. 또 대구지방검찰청(대구지검) 특수부장 시절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광고 비리 사건에서 지역 인맥과 배경이 상당했던 강신성일 전 의원, 여당(열린우리당) 소속의 배기선 의원을 수사할 때 압력이 꽤 있었지만, 우 수석이 이를 다 막아내고 ‘대구지검 특수부’ 전성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40대 민정수석, 우병우의 힘

우병우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은 2009년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를 맡았다(왼쪽). 박근혜 대통령이 1월 26일 새로 임명된 청와대 수석비서관 및 특별보좌관단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 대통령 왼쪽이 우병우 민정수석비서관.

이명재 전 검찰총장과의 궁합은?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 시절 김평수 전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 수사의 돌파 과정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다. 김 전 이사장의 구속영장이 두 번 기각됐지만, 반 년 이상 수사를 포기하지 않고 끌고 가며 세 번째 영장을 청구해 거래업체 등으로부터 모두 2억5700만 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 등)를 추가로 밝혀냈고 결국 그를 구속했다. 김 전 이사장이 “차라리 첫 번째 구속영장이 청구됐을 때 구속되는 편이 나았을 뻔했다”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우 수석은 당시 영장이 두 번 기각돼 좌절감에 빠진 수사 검사에게 전권을 맡기며 “너는 딴 수사는 하지 말고 김 전 이사장 건만 하되, 제대로 될 때까지 나한테 보고하러 오지도 마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 수석 인사와 함께 발표된 청와대 민정특보 자리엔 이명재(72)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이 왔다. 그는 검찰 선배인 김기춘(76) 대통령비서실장이 붙여준 ‘당대 최고 검사’란 별명처럼 우 수석과 다른 시대의 최고 특별수사통이었다. ‘검사들이 가장 존경하는 검찰총장’ ‘선비 검사’ 등 평가도 우 수석과 차이가 있다.

이 특보와 우 수석은 연배 차이가 많이 난다. 이 특보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시절 우 수석이 형사부 초임 검사였을 정도로 검찰 내에서 같이 근무해본 적도 없다. 그러나 고향(경북 영주) 대선배와 후배 사이로 1년에 한두 번 정도 검찰 출신 고향 선후배 모임에서 만나온 끈끈한 인연이다.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과 최교일 전 서울중앙지검장 등이 멤버로 알려졌다.

민정수석은 대통령에게 민심을 전달하고 사정기관 업무를 총괄 조정하며 공직자의 인사검증까지 담당하는 방대한 업무를 맡는다. 그래서 바람 잘 날이 없다. 여권 관계자는 “시기 대상이던 ‘검사 우병우’가 향후 어떻게 성장해나갈 것이냐는 이 특보의 장점을 얼마나 잘 흡수하느냐에 따라 달린 듯하다”며 “민정수석 업무는 그의 중요한 시험대”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5.02.02 974호 (p20~21)

  • 최우열 동아일보 기자 dsp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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