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1

2015.01.12

일반상대성이론, 그 후 100년

빅뱅, 블랙홀, 시간여행…인류 우주관 뿌리째 바꿔놓은 과학 혁명의 출발

  • 변지민 과학동아 기자 here@donga.com

    입력2015-01-12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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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상대성이론, 그 후 100년

    일반상대성이론이 낳은 가장 위대한 개념 중 하나인 블랙홀 상상도. 블랙홀의 검은 구멍은 과학자들이 일반상대성이론을 풀어서 나온 값을 바탕으로 상상한 것이다(왼쪽).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별의 중력이 시공간을 휘게 한다고 예언했다. 이 예언은 이후 태양 주위에서 빛이 휘는 현상이 관측되면서 정설이 됐다.

    1915년 11월 25일 제1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 학술지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에 3쪽짜리 짧은 논문이 실렸다. 36세 젊은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세상에 처음 공개한 순간이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가속 팽창하는 우주와 빅뱅(대폭발), 블랙홀, 시간여행 등을 통해 우주에 대한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이강영 경상대 물리교육과 교수는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인간은 우주를 방정식으로 다룰 수 있게 됐다”면서 “현대우주론은 전적으로 일반상대성이론을 토대로 성립됐다”고 평가했다. 올해로 발표 100주년을 맞이하는 일반상대성이론은 인류의 우주관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 편평한 우주에서 휘어진 우주로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아이작 뉴턴의 우주는 반듯한 평면 위에서 별들이 뱅글뱅글 도는 세계였다. 뉴턴은 질량을 가진 물체가 서로를 잡아당기는 힘인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중력을 설명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던, 200년 넘게 물리학계 정설로 받아들여지던 법칙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여기에 의심을 품었다. 뉴턴의 중력 이론에서 몇 가지 심각한 오류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돌파구를 열었다. 강궁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아인슈타인은 가속도와 중력의 효과가 같다는 ‘등가원리’를 통해 질량을 가진 물체가 시공간을 휘게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했다. 우주가 편평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중력에 의해 군데군데 휘어져 있다고 본 것이다. 이 생각이 바로 1915년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이다. 너무 혁명적이라 처음엔 과학계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하지만 1919년 영국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이 태양 주위에서 빛이 휘는 현상을 관측한 뒤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떤 과학자도 우주가 편평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 정적인 우주에서 진화하는 우주로



    100년 전 사람들이 생각한 우주는 고요하고 정적이었다. 천문학자들은 별이 조금씩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큰 규모에서 일률적으로 운동한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일반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인슈타인 역시 우주가 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오직 단 하나, 그가 만든 일반상대성이론만이 우주가 스스로 움직이고 변한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이 이론이 품고 있는 놀라운 가능성을 눈치 챈 사람은 러시아 과학자 알렉산드르 프리드만이다. 그는 1922년 일반상대성이론의 방정식을 풀면 우주가 수축하거나 팽창하는 결과가 나온다고 발표했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변화하는 우주가 못마땅했다. 그래서 방정식에 물질의 중력을 상쇄하는 ‘우주상수’라는 항을 억지로 끼워 넣어 우주를 안정화했다. 이론을 선입관의 틀에 맞춰 넣은 것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예측은 빗나갔다. 관측을 통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1929년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과 밀턴 휴메이슨은 멀리 떨어진 성운들의 적색편이(천체의 스펙트럼선이 원래의 파장에서 약간 긴 쪽으로 치우쳐 나타나는 현상)를 관측한 결과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이를 뒷받침하는 숱한 증거가 쏟아지자 아인슈타인은 백기를 들고 “(우주상수는) 내 생애 최악의 실수”라며 우주팽창을 인정했다.

    # 영원불변한 우주에서 시작이 있는 우주로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은 필연적으로 우주의 시작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우주 팽창을 연구한 선구자 중 한 명이던 벨기에 성직자 조르주 르메트르는 1930년 우주가 단일한 양자에서 시작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독교 신학보다 일반상대성이론에 근거를 둔 과학적 주장이었다. ‘시작이 있는 우주’ 이론은 당시 과학자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다. 다분히 종교적인 신념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비판자들은 우리 우주가 영원불변하다는 정상 우주론을 훨씬 신뢰했다.

    이 논란을 잠재운 사람은 영국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다. 그는 1965년 일반상대성이론을 풀어 우주가 특이점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호킹은 조지 가모, 앨런 구스 등과 함께 빅뱅 이론을 완성하는 데도 기여했다. 92년 우주배경복사탐사선(코비)이 우주의 마이크로파 배경복사를 관측해 빅뱅 증거를 포착한 뒤 빅뱅 이론은 정설이 됐다. 이제 우주는 영원불변하지 않다. 끝이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소한 시작만큼은 분명히 존재한다.

    # 별의 최후, 블랙홀

    블랙홀은 전적으로 일반상대성이론 덕분에 볼 수 있게 된 우주의 신비다. 일반상대성이론은 블랙홀의 존재를 정확히 예측했고, 과학자들은 간접적이긴 하지만 엑스(X)선 관측을 통해 블랙홀의 증거를 발견했다. 블랙홀은 우주에서 가장 특이한 지점이자 가장 극한 지점이다. 우주 어느 곳보다 밀도가 높고 중력이 세다. 요트를 타고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갈 수는 있지만 폭포를 되짚어 갈 수 없는 것처럼, 블랙홀 주변 ‘사건의 지평선’에서는 빛조차 탈출할 수 없다.

    블랙홀은 늙어 죽은 별의 최후다. 일반상대성이론의 방정식을 풀면 별의 최후를 계산해낼 수 있다. 별이 초신성 폭발을 일으킬 때 남는 별의 중심핵은 자체 중력 때문에 엄청난 압력으로 수축한다. 이 압력이 태양 질량의 3.5배가 넘는 경우 블랙홀이 만들어진다. ‘핵폭탄의 아버지’라 부르는 미국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1939년 이 사실을 밝혀냈다.

    블랙홀은 일반상대성이론을 검증할 수 있는 도구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아직 확실히 잘못됐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지만, 미시세계에서 양자역학과 통합되지 않는 등 약점이 있다. 송용선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은 “우리가 중력을 일반상대성이론으로 기술할 수 있다면 그 극한의 상황인 블랙홀에서도 이 이론이 모순 없이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블랙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많기 때문에 우주 비밀을 가장 많이 품고 있는 곳이 바로 블랙홀이기도 하다.

    # 웜홀과 시공간여행

    영화 ‘인터스텔라’에 등장했던 웜홀과 시공간여행 역시 일반상대성이론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1949년 쿠르트 괴델은 우주 전체가 회전한다는 가정 아래 일반상대성이론을 풀었을 때 과거로 시공간여행을 허용하는 해답이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좀 더 구체화한 사람은 미국 이론물리학자 킵 손이다. 그는 88년 웜홀을 이용하면 시공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지난 100년간 일반상대성이론은 인류의 우주관을 뿌리부터 바꿔놓았다. 하지만 변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과학자들은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측했지만 여태까지 실험으로 검증되지 않은 중력파를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오정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력파를 발견한다면 일반상대성이론을 다시 한 번 검증하는 것은 물론이고 빅뱅 직후의 초기 우주나 블랙홀을 지금보다 더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다”고 했다.

    초끈이론이나 고리양자중력이론처럼 일반상대성이론을 대체할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려는 시도도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탄생 100주년을 맞은 일반상대성이론의 어깨 위에서 새롭게 우주를 설명하는 이론이 탄생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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