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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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인사는 ‘굿잠’?

잠 잘 자기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입력2015-01-05 11: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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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밤 인사는 ‘굿잠’?

    잠자리의 조연이던 베개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베개 하면 어릴 적 베개싸움이 떠오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딱딱한 목침 또는 원앙금침에 따라오던 수놓인 비단 베개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거다. 목화솜이나 양털이 들어간 솜 베개, 쌀이나 콩 같은 곡식을 넣은 전통적인 베개 말고도 유행처럼 번진 메모리폼이나 라텍스 베개도 있다. 인류가 이불을 덮고 자기 시작하면서부터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만큼 오래된 잠자리 도구가 바로 베개다.

    잠자리에서 이불이 주연이라면 베개는 조연이다. 하지만 최근 조연급 베개가 잠자리의 주연급으로 격상되고 있다. 심지어 TV 홈쇼핑에서 베개가 일 년여 만에 500억 원어치가 팔리기도 했다. 일각에선 효능에 대한 과장광고 문제가 지적되지만, 어쨌든 베개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다. 요즘엔 맞춤 베개가 유행이다. 실리콘 소재의 3차원 입체 맞춤 베개는 물론, 수면 각도를 조절해 코골이나 목디스크, 일자목까지 해결해주는 베개도 있다. 베개가 만능 해결사 같다.

    이처럼 베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잠을 잘 못 자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최근 4년간 45.3% 늘어 한 해 38만 명 정도 된다.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몇 년 새 고가 매트리스나 수면용품 관련 시장이 커지는 것을 지나쳐선 안 된다. 우리가 가진 일상의 불만이자 불편의 증거이며, 누군가에겐 엄청난 비즈니스 기회이기 때문이다.

    호텔 서비스를 집에서 누리는 방법

    오늘밤 인사는 ‘굿잠’?
    얼마 전 아내에게 미안한 일이 있었다. 유명한 고급 침대 브랜드에서 패밀리세일을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못 갔다. 세일을 한다지만 여전히 비싸고, 쓰던 침대가 멀쩡하니 굳이 살 필요를 느끼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나 야근이 잦은 아내가 불면에 시달리는 밤이 많다는 걸 잠시 잊었다. 평소 아내는 특급호텔 침대를 집에 들여놓고 싶어 했다. 호텔이 주는 적당한 편안함과 익숙함, 깨끗하게 정돈된 느낌을 좋아해서다.



    그리고 호텔 침대를 보라. 아주 크고, 높고, 푹신하다. 침구는 매일 갈아주지 않으면 안 되는 화이트 컬러다. 이런 것을 집에 들여놓는 순간 일거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부담감 때문에 선뜻 선택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실 매트리스나 침구는 소모품이다. 세탁과 살균이 필요하고 정기적으로 교체해야 한다. 현대인에게 집은 잠을 자기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매일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이 잠이며, 하루라도 자지 않고는 견디기 어렵다. 그러니 잠과 관련한 부분에 투자하는 것은 집에 대한 투자 중 가장 효율성이 높은 셈이다.

    집에서 쓰는 침구의 먼지를 청소기로 빨아들인 후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세균성 미세먼지나 집먼지 진드기가 놀랄 만큼 많다는 얘기를 숱하게 듣는다. 그런 내용을 다룬 영상을 보노라면 침구가 끔찍할 정도로 더럽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처럼 매일 사용하는 침구의 끔찍한 위생 상태가 알려질수록 침구 위생을 책임지는 비즈니스도 각광받는다. 매트리스 렌털 및 청소 살균 서비스, 특급호텔의 하우스키퍼처럼 정기적으로 침구를 세탁 및 교체해주는 서비스 등이 있다. 이것이 누군가에겐 게으른 사람의 사치로 보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겐 일상의 행복을 위한 작은 사치다. 왜냐하면 침대 시트에 투자하는 것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유료 수면방이 등장했다. 잠시 낮잠이나 쪽잠을 즐기려는 사람을 위한 서비스다. 서울 종로구 계동의 수면방은 1시간에 5000원이다. 피곤하면 사무실 책상에 엎드려 자면 그만이지, 뭣 하러 돈까지 내면서 낮잠을 자느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무실에서 편히 낮잠 잘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자기 방이 따로 있는 임원급이 아니고서야 남 눈치 보지 않고 잠시나마 낮잠의 여유를 누리긴 어렵다. 그러니 5000원을 내고서라도 밀도와 질이 다른 잠을 자고자 하는 것이다.

    유료 수면방 또는 낮잠방은 두바이국제공항을 비롯해 여러 국제공항에서 종종 볼 수 있다. 파리, 런던, 뉴욕, 도쿄 등 국제화된 도시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서비스다. 일상의 쉼표를 제대로 찍고자 하는 사람에게 유료 수면방은 짧지만 질 좋은 잠을 보장한다. 서울에서 얼마나 장사가 잘될지는 알 수 없지만 현대인에게 필요한, 가능성 있는 사업인 것은 분명하다.

    한국인은 세계적으로 수면시간이 가장 짧고, 노동시간은 가장 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수면시간이 가장 긴 나라는 프랑스로 8시간 50분이고, 우리는 가장 짧은 7시간 49분이다. OECD 회원국 가운데 7시간대의 수면시간을 가진 건 한국과 일본뿐이다. 청소년은 입시 공부하느라 못 자고, 직장인은 야근이나 회식을 하느라 늘 잠이 부족하다.

    오늘밤 인사는 ‘굿잠’?

    2014년 5월 19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에 생긴 건강 수면숍(왼쪽). 한국인에게 낮잠은 일상의 기본이 될 호사다.

    숙면을 위한 투자 아깝지 않아

    한국인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13년 2163시간으로, OECD 34개 회원국 중 멕시코(2237시간)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한동안 계속 1위를 고수하다 주 5일 근무제 도입으로 아슬아슬하게 2위로 밀려났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숨겨진 노동시간인 일상적 야근이란 게 있어 사실상 1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OECD 34개 회원국의 평균 노동시간은 1770시간이며, 우리는 이보다 393시간 더 일하고 있다. 하루 8시간 노동으로 환산하면 49일치다. OECD 회원국 중 네덜란드가 1380시간으로 가장 적은 노동시간을 기록했다. 독일, 노르웨이, 덴마크, 프랑스 등이 1400시간대 이하를 자랑하는데, 유럽 선진국의 노동시간이 전반적으로 짧다. 미국은 1788시간, 일본은 1735시간, 영국은 1669시간 등으로 평균에 가까웠다.

    우리는 덜 자고 더 일하는 나라다. 잠의 양이 적으면 질이라도 더 높이려 애써야 하지 않겠나. 당장 자는 시간을 늘리지 못한다면 충분한 숙면을 위해 침구에 돈 좀 써도 되지 않을까.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을 달리 해석하면, 일찍 일어난 새가 일찍 피곤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일찍 일어난 벌레는 괜히 새한테 잡아먹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괜히 모두가 일찍 일어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일찍 일어나는 걸 근면성실하고 좋은 이미지로 각인하고 있지만, 창조가 비즈니스의 중요한 화두가 된 지금은 숙면이 필요하고, 종종 멍 때리는 여유도 필요하다. 잘 쉬고 잘 자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대에 잠을 위한 사치는 모두가 관심 가져볼 일상의 기본이 될 호사다.

    대체재가 없는 소비는 가격과 상관없이 사치가 아니다. 모든 사치와 취향은 대체재가 있는 상황에서 만들어진다. 침구라고 비싼 침대만 있는 게 아니다. 베개나 이불 하나부터 심지어 수면양발이나 잠옷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선택할 수 있는 환경 내에서 사치를 누려보는 것도 방법이다. 잘 자는 것이야말로 일상의 풍요를 위한 최고 선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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