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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미식생활

맛이냐 건강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여름배추의 진실

맛이냐 건강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맛이냐 건강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고랭지 배추밭이다. 비탈진 땅이라 흙과 유기물이 쉽게 흘러내린다.

한국인은 사계절 배추김치를 먹는다. 겨울이 든다고 김장을 따로 하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사계절 내내 시장에서 배추를 팔기 때문에 김치가 떨어지면 언제든 배추를 사다 담그면 된다. 아니, 담글 필요도 없다. 공장김치를 사계절 내내 파니 그냥 사먹으면 된다. 홈쇼핑 방송에서 배추김치를 안 파는 날이 없다. 이 얼마나 편한 세상인지.

우리가 배추김치를 이렇게 먹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배추는 원래 서늘한 곳에서 자라는 채소다. 가을이 들 무렵 씨앗을 뿌려 겨울이 들 무렵 거두는 것이 배추였다. 봄과 겨울에는 ‘봄동’이라는 얼갈이를 겨우 먹을 수 있었고, 여름배추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여름에는 고온 탓에 배추가 녹아버렸던 것이다. 여름배추가 시장에 처음 선보인 것은 1970년대였다. 강원도 고랭지가 여름에도 시원하니 그곳에서 배추를 재배해 내놓은 것이다. 그즈음 해남 등 남녘 바닷가에서 겨울배추 재배를 시도해 한겨울과 이른 봄에도 배추김치를 담글 수 있게 됐다. 또 봄철 하우스에서 재배한 배추가 고랭지 여름배추 나오기 전에 시장에 깔리기도 한다.

30여 년 만에 한국인은 배추 제철을 잊었다. 배추는 사계절 내내 나오는 것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제철 배추가 아니니 풍년과 흉년 기복이 무척 심하다. 특히 여름배추는 고랭지 기상 상황에 전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 비가 많이 내리면 여름배추는 녹아내리고 시장에서는 ‘금추’가 됐다고 난리다. “원래 제철이 아니니 여름배추 작황에 연연하지 말고 여름에 많이 나오는 열무를 사다 김치를 담가 먹자”고 하면 “한국인의 식탁에 어찌 배추김치를 빼놓을 수 있느냐”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계절을 잊은 한국인의 습생이 과연 올바른지를 따져 묻는 슬로푸드 전문가가 없다. 제철 아닌 채소가 진정한 로컬푸드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없다. 어느새 한국은 ‘배추김치’ 하면 슬로푸드고 로컬푸드가 되는 묘한 세상이 된 것이다.

“재배 기술이 발달해 사계절 배추김치를 담글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닌가”라고 반문하겠지만, 농산물 재배라는 것이 기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자연은 농산물을 재배하는 데 절대적 조건이며, 인간의 기술은 여기에 보조적 구실밖에 하지 못한다. 기술로 농산물 재배 조건에 관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그 한계는 결국 반자연적 결과물을 낳는다. 그러면 아무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농민 손해, 소비자 손해의 길을 걷는 것이다.

고랭지에 있는 밭은 대부분 비탈에 자리한다. 그래서 비가 오면 물이 잘 빠진다. 이 물을 따라 흙이 쓸려 내려가고 유기물도 함께 빠져나간다. 고도가 높은 비탈 밭에 유기물 퇴비를 준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또 대부분 ‘땅 임자 따로, 재배 농가 따로’여서 땅심을 돋우기 위한 조치도 일어나지 않는다. 쉽게 말해 고랭지에서의 농사는 ‘약탈적’이다. 약탈적 농법으로 땅심이 약해진 밭에서 자라는 배추는 무사마귀병에 잘 걸린다. 뿌리가 썩는 병이다. 고랭지 여름배추에 이 병이 돌았다 하면 끝장난다. 다행히(?) 이 병에 잘 걸리지 않도록 개량한 품종이 있다. CR계라는 배추다. 그런데 이 품종의 배추는 맛이 없다. 배춧잎이 뻣뻣하고 단맛도 없이 매운 내가 난다. 병을 이기자고 맛을 버린 것이다.



최근에 이 CR계 배추가 맛없다고 소문나면서 일반계 배추를 심는 밭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농약을 참 많이 쳐야 한다. 비가 내린다 하면 쳐야 한다. 고랭지 여름배추는 맛없거나 농약투성이인 것이다. 이 둘 중 하나의 선택이 소비자 앞에 놓여 있다. 당신은 어떤 배추를 먹겠는가.



주간동아 2011.09.05 803호 (p138~138)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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