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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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척결’ 짧은 단식 긴 울림

70대 인도 시민운동가 하자레 ‘제 2간디 표방’ … 정부 자성과 쇄신 목소리 키워

  • 뱅갈루루=박민 통신원 minie.park@gmail.com

    입력2011-05-16 09: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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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인도 정치의 화두는 부패 척결이다. 주요 인사가 연루된 2G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관련 비리에서부터 지난해 있었던 영연방경기대회(Common Wealth Game) 관련 비리, 주(州)마다 끊임없이 터지는 각종 비리에 이르기까지 부패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각종 비리 의혹에는 정치인뿐 아니라 언론인, 기업인 등 모든 사회지도층이 포함됐다. 3월에는 만모한 싱 총리가 임명한 부패방지위원회 위원장이 부패와 연관 있는 것으로 드러나 대법원이 그의 임명을 취소하는 일까지 있었다.

    인도 전역서 응원의 메시지

    여론은 점점 악화됐지만 인도 정부는 무기력한 태도로 일관했다. 여당인 국민회의당과 야당인 인도인민당은 부패 척결에 대한 의지를 실천에 옮기기보다 현재의 부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소득 없는 싸움만 계속될 뿐이었다. 서로에 대한 폭로와 책임 전가가 반복됐으며, 중앙수사부도 비리 의혹과 관련해 속 시원한 결론을 내놓지 못했다.

    그런데 인도 정부가 기존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목받고 있다. 시민이 참여하는 옴부즈맨 형식의 부패방지위원회를 출범키로 하면서 적극적인 부패 척결 움직임을 보인 것. 인도 정부의 이런 환골탈태가 있기까지 한 사회운동가의 단식투쟁이 큰 몫을 했다. 계속되는 비리 의혹과 관련해 사회운동가들은 부패를 제대로 척결하려면 록팔(Lokpal)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 내용은 부패방지위원회를 출범하되, 정치인뿐 아니라 같은 수의 시민도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정부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72세의 사회운동가 하자레(Hazare)는 4월 5일 델리에 있는 유적지 잔타르 만타르에서 무기한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70대 사회운동가가 시작한 단식투쟁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국민회의당 소냐 간디 대표가 건강 악화를 우려해 단식투쟁을 만류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70대 노구에겐 단식 자체가 목숨을 건 투쟁이었다. 실제 정부는 여러 명의 의사를 수시로 파견해 그의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잔타르 만타르에서 시작한 그의 1인 단식투쟁은 삽시간에 인도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10만여 명의 시민이 반부패 시위에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소셜네트워크인 페이스북과 트위터에도 그를 지지하는 글이 폭주했다. 70만여 명이 하자레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거침없이 커지는 여론에 인도 정부는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정치인과 시민이 동수로 참여한 부패방지위원회를 결성하고 6월 부패 방지 관련 법안을 마련해 7월 국회 심의를 거치겠다”며 진화에 나선 것. 4월 9일 인도 정부는 이와 같은 계획을 발표했으며, 하자레는 레몬주스 한 모금을 마시는 것으로 단식투쟁을 끝냈다. 그리고 “독립기념일인 8월 15일까지 정부가 약속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또다시 단식투쟁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자레의 단식투쟁은 98시간에 불과했지만, 부패 척결에 답답한 대응책만 내놓았던 인도 정부에는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의 단식투쟁이 짧은 시간에 큰 이슈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정치인의 부패가 서민생활을 직접적으로 갉아먹는다는 데 공감하는 시민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단식투쟁에 돌입하면서 비폭력 시위를 지향했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이 떠오르는 대목. 그는 실제로 ‘제2의 간디’를 표방하며 간디처럼 흰색 옷에 모자를 쓰고 반부패 시위에 나섰다. 그러자 지지자가 순식간에 늘었고, 잔타르 만타르에 2000여 명의 지지세력이 몰려와 시위에 동참했다. 그럼에도 시위가 폭력으로 번지지 않은 이유는 그가 지지자들에게 “그 어떤 폭력도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간디를 기억해야 한다”고 당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투쟁을 영국을 향한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에 비유하며, 부패에서 벗어나기 위한 두 번째 독립운동이라고 했다.

    싱 총리 “부패 척결 통해 국정 발전”

    부패는 인도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200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540명의 인도 의회 구성원 가운데 4분의 1이 범죄 경력이 있으며 심지어 강간, 살인죄를 저지른 이도 있었다. 또한 스위스은행에 따르면, 인도가 소유한 ‘블랙머니’는 세계 어느 국가보다 많다. 인도 정치인은 인도의 정치체제를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라고 자부하지만, 부패 문제는 후진국 수준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형국이다.

    하지만 하자레의 단식투쟁으로 부패에 대한 정부 태도가 바뀐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만모한 싱 총리는 “아시아의 세 번째 경제대국이 되려면 부패를 척결하고 국정관리체계가 발전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부패가 정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경제발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각종 대책과 약속이 쏟아지고 있다. 먼저 델리 주정부는 5월 중순까지 영연방경기대회 비리와 관계된 책임자들을 반드시 가려내겠다고 밝혔다. 또한 몇 달째 수사가 지지부진하던 2G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비리와 관련해서도 5명의 주요 인물을 체포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주 총리 비리와 관련해서는 인도인민당과 국민회의당 모두 당 차원에서 감싸기에 급급하던 기존 모습에서 벗어나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도 정치가 정말 ‘쇄신의 시기’를 맞았는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시민이 참여하는 옴부즈맨 형식의 부패방지위원회가 관련 법안 통과로 이어진다면 인도 정치에 새 바람이 불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자레는 단식을 마친 뒤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싸움은 이제 시작입니다. 새로운 법안을 만들려면 계속 투쟁해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닷새 동안 보여준 힘은 국가를 위해 이렇게 뭉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겁니다. 나를 지지해준 수많은 젊은이는 인도의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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