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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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고려대 출신 금융권 장악 현실로

주간동아 4대 은행, 금융지주 임원진 분석…임원 3명 중 1명꼴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1-02-28 09: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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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 지주와 비(非)고려대 지주로 나뉜다.’

    금융권 인사들이 사석에서 술안줏감으로 삼는 소재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국내 4대 금융지주사 회장 중 3명이 이명박(MB) 대통령의 고려대 동문인 데다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기에 나오는 얘기다. MB정부 들어 MB맨들이 금융권을 장악한 데 대한 비아냥거림도 일부 섞여 있음은 물론이다.

    잘 알려진 대로 우리금융지주(이하 우리금융) 이팔성 회장은 MB의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를 지냈고,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상근특보로 활약했다. KB금융지주(이하 KB금융) 어윤대 회장은 고려대 총장 출신으로 MB정부 들어 대통령 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지냈다. 하나금융지주(이하 하나금융) 김승유 회장은 MB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로 막역한 사이다.

    정권에 따라 금융기관 임원들이 부침을 겪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통령과 동향 출신 임원들이 금융기관의 요직을 차지하는 일이 반복돼왔던 것.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그 정도가 심하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금융권에선 “정권 출범 초기부터 문제가 됐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정권 논란이 금융계에서도 재현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과연 그럴까. ‘주간동아’가 우리금융, KB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 등 4대 금융지주와 은행의 주요 임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금융권의 이런 비판은 상당 부분 근거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TK(대구·경북)와 고려대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분석 대상이 된 임원은 금융지주사는 상무 이상, 은행은 부행장급 이상이었다.



    TK·고려대 출신 금융권 장악 현실로
    TK 출신 30.3%…서울 출신 21.1%

    4대 금융지주사와 4대 은행이 내놓은 분기보고서 및 전국은행연합회에서 발간하는 ‘금융기관 인명록’에 따르면 2007년 3분기 4대 은행과 3대 금융지주회사(당시 KB국민은행은 금융지주사 전환을 앞두고 있었음)의 임원 92명 중 서울 출신은 23명(25%)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대구·경북 출신 19명(20.65%), 부산·경남 출신 13명(14.1%) 순이었다.

    MB정부가 들어선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2010년 3분기 전체 임원 109명 중 TK 출신이 33명(30.3%)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서울 출신은 23명(21.1%)으로 2007년과 비슷한 비율을 유지했다. 이어 부산·경남 출신이 22명(20.2%)으로 늘어 전체적으로 영남 출신 임원 비중이 크게 상승했다.

    금융지주사의 주력사인 4대 은행 임원만 살펴보면 TK의 약진은 더욱 두드러진다. DJ 정부 말인 2002년 5월, 4대 은행의 부행장급 이상 임원 45명 중 TK 출신은 4명(8.9%)에 그쳤다. 부산·경남 출신은 3명(6.6%)이었다. 노무현 정권 말이던 2007년 5월 4대 은행 임원 71명 중 TK 출신은 15명(21.1%), 부산·경남 출신이 9명(12.7%)으로 비중이 늘어났다.

    MB정부 3년 차이던 2010년 3분기, 4대 은행 임원 63명을 조사한 결과 이 중 TK 출신이 19명(30.2%)이었다. 그 비율이 2002년보다 약 5배, 2007년보다 약 1.4배 늘어난 것. 부산·경남 출신 역시 10명(15.8%)으로 그 비율은 2002년보다 약 2.5배, 2007년보다 약 1.3배 늘었다.

    정부 입김 쉽게 먹히는 금융권

    한편 2002년 전체 임원 중 과반을 차지했던 서울 출신 임원(24명, 53.3%)은 2007년 20명(28.2%), 2010년 12명(19.0%)으로 점차 감소했다. 2002년 3명(6.6%)이었던 광주·전남 출신 임원은 2007년 5명(7.0%), 2010년 7명(11.1%)으로 TK에 비해 상승폭이 낮았다. 이에 따라 2010년 말 현재 광주·전남 출신 임원은 대구·경북 출신 임원 수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출신 대학별로 살펴보면 ‘고려대 파워’가 느껴진다. 김대중(DJ)-노무현 정부에서도 금융계에서 활약한 고려대 출신이 많긴 했지만 MB정권에선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2010년 9월 말 현재 4대 금융지주와 4대 은행 주요 임원 중 고려대 출신이 서울대 출신보다 많을 정도. 고려대 출신 임원은 2007년 전체 92명 중 11명(12.0%)에서 2010년 전체 109명 중 23명(21.1%)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서울대 출신 임원은 2007년 18명(19.5%)에서 2010년 20명(18.3%)으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었고 연세대 출신은 2007년 10명(10.9%)에서 2010년 6명(5.5%)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4대 은행 임원만 떼어 봐도 고려대 약진이 눈에 띈다. 2002년 4대 은행 임원 45명 중 서울대 출신은 21명(46.7%)으로 약 절반을 차지했다. 이어 연세대는 6명(13.3%), 고려대는 5명(11.1%) 순이었다. 2007년 71명 중 서울대와 고려대 출신이 각 9명(12.6%)으로 순위가 같고, 뒤를 이어 연세대가 7명(9.8%)이었다. 그러나 MB정권에선 고려대 출신 임원이 11명(17.4%)으로 서울대 출신(7명, 11.1%)보다 많았다. 성균관대 출신(5명, 7.9%)과 연세대 출신(4명, 6.3%) 수를 더해도 고려대 출신에 못 미쳤다.

    4대 은행과 4대 금융지주사 임원의 출신 고교를 살펴보면, 대구 경북고와 서울 경복고의 뒤바뀐 위치가 눈에 띈다. 2007년 4대 지주사 및 은행 임원 중 서울 경기고(5명) 출신이 가장 많았고, 그 뒤를 서울 경복고(4명)가 이었다. 대구의 경북고 출신 임원은 1명에 그쳤다.

    2010년 경기고는 9명을 배출해 자존심을 챙겼지만 경북고(6명), 계성고(4명), 대구상고(4명), 안동고(2명) 등 대구·경북권 고교 출신 임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이 밖에 부산 경남고(4명), 진주고(2명) 등 부산 경남지역 고교도 약진했다. 한편 2007년에 5명의 임원을 배출했던 경복고는 2010년 현재 임원이 1명뿐이다.

    정권에 따라 금융기관 임원의 부침이 심한 것은 금융기관의 특수성 때문이다. 금융기관은 정부가 인가권과 감독권을 갖고 있다. 또 금융위기 상황에서는 정부가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비상 상황에는 주주 역할까지 떠맡아야 한다는 얘기다. 당연히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 입김은 일반 기업보다 강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금융지주사들엔 뚜렷한 지배주주가 없다 보니 정부로선 코드 인사가 상대적으로 쉬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우리금융은 정부가 57%의 지분을 갖고 있다. 우리금융 내부에선 “누가 더 힘센 정권 실세를 잡느냐에 따라 승진 여부가 결정된다”는 자조 섞인 얘기가 오래전부터 나돌았다. 우리금융 윤병철 전 회장은 재임 당시 사석에서 “일류 은행의 조건은 CEO가 임원 인사권을 전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정치권 바람을 많이 탄다는 방증이다.

    정권 따라 바뀌는 CEO, 임기 못 채울 가능성도

    금융기관 처지에서 정부의 관여를 거부할 수 없는 것은 ‘보험’ 때문이다. 정부와 각을 세우는 것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좋다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것. 한 금융권 인사는 “금융권 인사들은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이나 강정원 전 KB국민은행장을 감독당국이 어떻게 몰아냈는지를 봐왔다. 그러다 보니 알아서 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드 인사가 금융기관을 장악했을 땐 엄청난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우찬 교수는 “금융 경영에 대한 전문성, 노하우가 검증 안 된 인물이 거대 금융사의 임원이 돼 잘못된 결정을 했을 때는 국가 금융시장 전체가 흔들릴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물론 이에 대해 당사자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일 것이다. 어윤대 KB금융 회장이 대표적이다. 어 회장은 일부 언론의 ‘낙하산 인사’ 시비에 대해 “30여 년 동안 학교에 있으면서 금융을 연구했고, 금융기관 사외이사 등을 지내며 금융기관 경영을 지켜봤는데 어떻게 ‘낙하산 인사’라고 하느냐”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금융권에선 어 회장의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금융권 인사는 “금융 전문가로 자처한 어 회장으로선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수밖에 없을 텐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은행에 부담이 될 무리한 결정을 내릴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또 어 회장을 두고 KB금융 내부에선 ‘행장급 회장’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의 역할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정권을 등에 업은 금융사 CEO에 감독당국의 제재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성대 무역학과 김상조 교수는 “대통령과 형 동생 하는 CEO,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원장보다 힘센 CEO가 버티고 있는 금융지주사에 어떤 간 큰 금감원 관계자가 칼날을 세울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김우찬 교수는 “안 그래도 금융사 감사가 대부분 금감원 퇴직관료 출신이어서 감사가 제대로 안 되고 있었는데 금융당국이 CEO 눈치까지 보면 어떻게 될지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코드 인사는 정권이 바뀌면서 교체될 수밖에 없다. 한 전문가는 “차기 정권 담당자들은 현 정권이 하는 방법을 이용해 현 정권이 임명해놓은 ‘낙하산 인사’를 솎아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 김선웅 소장은 “정권이 바뀌면서 CEO가 또 교체된다면 지주사는 경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 자연히 기업의 효율이 떨어져 주주와 애꿎은 예금자만 손해를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친여 인사는 누구?

    신희택·이두희·이용만·김경동씨 등 MB맨 포진


    금융기관 사외이사도 이명박 정부 들어 MB맨으로 대거 교체됐다. ‘주간동아’가 민주당 신건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4대 금융지주사 및 자회사 은행 사외이사 현황’(2010년 9월 기준)을 분석한 결과, 금융지주사와 자회사 은행 사외이사 전체 71명 중 25명이 이명박 대통령과 직·간접 인연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우선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는 우리금융에 포진한 사외이사들이 눈에 띈다. 지난해 말 우리금융 사외이사는 모두 7명. 이 가운데 4명이 이명박 정부와 직간접적인 인연을 갖고 있다.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인 신희택 사외이사는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제1기 자문위원 출신. 고려대-소망교회 인맥으로 꼽히는 이두희 사외이사(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통령 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 기획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부인 박미석 숙명여대 교수는 정권 초기 대통령 사회정책수석비서관에 내정된 지 77일 만에 논문 표절 의혹으로 물러났다.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들(시변) 공동대표를 지낸 이헌 사외이사는 야당 의원들이 제기한 ‘미디어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청구’에서 정부 측 변호사로 나서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을 이끌어냈다.

    우리금융 자회사인 우리은행 사외이사 중에는 이용만 선진국민연대 전 상임고문이 눈에 띈다. 고려대 행정학과 출신으로 노태우 정부 시절 재무부 장관을 지냈고,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당선을 위해 뛰었다. 우리금융의 자회사인 광주은행에는 이명박 후보 정책자문단 출신의 김성후 동신대 호텔관광학과 교수와 김경동 전 우리금융 수석전무가 포진했다. 이명남 사외이사(전남대 정외과 교수)는 김연욱 대통령정무수석실 행정관의 박사학위 논문 ‘리더와 팔로어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 : 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 사업을 중심으로’의 지도교수를 맡은 인연이 있다.

    역시 우리금융 자회사인 경남은행에는 박영근 창원대 경영학과 교수와 김성규 공인회계사가 포진했다. 이명박 후보 정책자문단 출신의 박 교수와 녹색실천미래연합 공동대표인 김 회계사는 각각 4대강 사업과 한반도 대운하 지지를 표명한 바 있다.

    신한금융은 모두 8명의 사외이사가 있다. 이 가운데 윤계섭 서울대 명예교수는 2006년 한 칼럼을 통해 “서울시는 기업 경영기법을 도입해 재정 지출 규모를 혁신적으로 줄였다”며 “서울시는 재정 운영의 전범(典範)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신한은행 사외이사로는 김준경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와 이규민 한나라당 제18대 국회의원 후보(인천 서구·강화을)가 있다. 김 교수는 인수위 기획조정분과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냈다.

    KB금융에서는 조재목 선진국민정책연구원 사무총장이 눈에 띈다. 이명박 후보 정책자문단 출신의 박요찬 변호사와 국민경제자문회의 제2기 민간위원인 김인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민은행 사외이사에 선임돼 활동 중이다.

    하나금융에는 김각영 전 검찰총장과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경영학과 후배인 유병택 한국품질재단 이사장이 포진했다. 김 전 총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법률고문을 맡으며 인연을 맺었고, 대선 때는 선거대책위원회 상임특보로 활동했다.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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