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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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 태어나 남자로 산다는 것은

‘남자 심리 지도’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0-03-10 19: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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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로 태어나 남자로 산다는 것은

    비요른 쥐프케 지음/ 엄양선 옮김/ 쌤앤파커스 펴냄/ 304쪽/ 1만4000원

    일본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가 쓴 ‘혼자 맞이하는 노후’의 제1장 제목은 ‘여자, 언젠간 싱글’이다. 지금 일본의 65세 이상 여성 가운데 55%가 배우자 없이 사는데, 그 이유는 남편과의 사별이 46.1%, 이혼이 3.5%, 비혼이 3.5%이다. 80세 이상 여성은 83%가 혼자 산다. 미혼이나 비혼 인구가 늘고 있으니 앞으로 혼자 사는 여성의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은 ‘화려한 싱글, 돌아온 싱글, 언젠가 싱글’(이덴슬리벨 펴냄)이다.

    책은 여자가 혼자가 된 다음 어디에서 어떻게 살 것이며, 누구와 어떻게 사귈 것이며, 돈은 어떻게 벌고, 도움은 누구에게 어떻게 받을 것이며, 어떻게 마지막을 맞이할 것인지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50, 60대 여성에게 ‘베드 메이트’는 없어도 ‘테이블 메이트’는 꼭 있어야 한다는 충고다. 혼자 사는 여자가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보다 행복하기 때문이란다. 섹스는 비일상적이고 식사는 일상적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서 나는 어느 자리에서 차라리 술 한잔까지 함께 하는 ‘와인 메이트’는 어떠냐는 이야기를 던져보았다.

    혼자 사는 여성에 대한 책은 많이 접할 수 있었지만 혼자 사는 남성에 대한 책은 별로 없다. 오십을 훌쩍 넘기고 지난해부터 잡지를 하나 더 창간하려고 동분서주하다 보니 고충이 적지 않았다. 자금을 모으고, 직원을 모집하고, 편집위원회를 구성하는 일 모두가 첩첩산중이었다. 무엇보다 사람 구하기가 만만찮았다. ‘내가 헛살았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며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하는 후회도 수없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이런 고민을 상의할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집에는 딸과 어머니뿐이니 상의할 수가 없었다. 직원들에게 털어놓자니 능력 없는 경영자로 찍힐까 두려웠고 친구들과 상의하자니 다들 힘겨워하는데 내 고민만 늘어놓는 것 같아 혼자 전전긍긍했다. 그래서 한강에서 혼자 소주병을 비운 적이 여러 번이다. 그런 고비 끝에 새 잡지는 나왔고,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독일의 유명한 남성 전문 심리치료사인 비요른 쥐프케의 ‘남자 심리 지도’는 “남자로 태어나, 남자로 길러지고, 남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책이다. 몇 장 넘기지 않아 보이는 것이, 남자는 ‘울부짖지 못하는 동물’이란다. 내면의 소리를 외면하고 감정을 억압하다 보니 알코올 중독, 폭력성, 사회적 고립, 극단적인 자기파괴나 과대망상 같은 왜곡된 모습으로 존재를 드러내게 된단다. 딱 내 이야기다. 나는 ‘자학’과 ‘자뻑’ 사이를 수없이 넘나드는 삶을 살아왔다.

    남자는 참으로 힘겹다. 남자가 여자에게 인정받으려면 밖에서는 슈퍼히어로, 집에서는 자상한 로맨틱 가이가 돼야 하며, 초콜릿 같은 ‘식스팩’과 휘핑크림을 잔뜩 얹은 카페모카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모습의 두 얼굴을 동시에 지녀야 한다. 하지만 솔직히 이럴 자신은 없다. 그러니 잘할 수 있는 것만 한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아무래도 자신 있으니 휴일에도 회사에 나와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일은 무척 자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열심히 달려왔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아니, 불행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세상의 기대는 크고 나는 그에 맞는 행동을 계속할 수 없으니 심히 불안하다. 저자는 네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데 소홀했으니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남자가 자아를 찾아가는 네 단계의 여정을 알려준다. 첫째, 자기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는 ‘문제 인식’이다. 남자는 외향화 때문에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지만 한 번 마음을 열면 변화가 시작된다. 둘째, 지금까지 익숙한 ‘개념’을 과감하게 무너뜨리는 문제 직면의 단계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자신의 내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문제의 본질이 쉽게 발견된다. 셋째, 무력감을 떨쳐버리고 감정을 발견하는 감정 발견의 단계다. 남자가 자신의 결점을 확인하면 해결책을 찾지 못해 무력감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무력감이란 고통, 슬픔, 실망, 통증보다 심각한 최악의 감정이다. 마지막은 문제 해결의 단계다. 자신의 남성 딜레마와 적극적으로 마주하고 지금까지 외면했던 감정, 욕구, 동경을 깨달으면서 감정 지향에 바탕을 둔 위기 극복 전략을 구상할 줄 알아야 한다. 결국 울부짖는 자만이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책에는 저자가 상담하는 과정에서 만난, 나와 같은 고민을 겪은 30명의 남자가 나온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덕분에 그들이 겪는 갈등과 고독, 트라우마 등에 대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만의 동굴에서 벗어나 자신 있게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어느 정도 얻은 것 같다. 이 책이 고단한 남자의 “탁월한 ‘마음여행’ 안내서이자 완전한 행복을 알려주는 길잡이”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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