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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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 글씨의 향기 부활하다

위창 오세창 편역 ‘근묵’ 실물 재현 … 국역 곁들여 책값 100만원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9-06-25 1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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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조들 글씨의 향기 부활하다

    1981년 출간된 ‘근묵’ 상·하권(위)과 여기에 실린 정몽주의 편지 (촬영협조· 가회고문서연구소).

    ‘해마다 보내주시는 햅쌀을 받는데, 마음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6월부터 이질을 앓아 30일이 되어가는데, 요즘은 조금 나아졌습니다….’

    포은(圃隱) 정몽주가 고려 말 문신 이집(李集)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미시적 역사 읽기가 어느 때보다 각광받는 요즘, 선조들이 남긴 편지야말로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최적의 사료다. 또한 당시 서체를 감상할 수 있는 예술작품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구한말의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 서예가, 서화 수집가인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1864~1953)은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그는 신라시대부터 1920년대까지 1117명의 역대 서화가를 기록한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사 책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을 펴냈을 뿐 아니라, 고려 말에서 대한제국 말까지 서화가들의 진필을 수집해 ‘근역서휘(槿域書彙)’ ‘근역화휘(槿域畵彙)’ ‘근묵(槿墨)’ 등을 펴냈다. 그가 편찬한 책들만 살피더라도 한국서예사를 꿰뚫을 수 있을 정도다.

    위에 인용한 정몽주의 편지는 ‘근묵’에 실려 있다. 1943년 출간된 ‘근묵’은 정몽주를 비롯해 퇴계 이황, 다산 정약용 등 1136명의 서화가와 학자들의 서간·시문·현판 등 1136점의 친필을 34책으로 엮은 서책이다. 고문서 연구에 몰두해온 역사학자 하영휘 가회고문서연구소장은 “600여 년에 걸친 작품들이 한데 실렸기에 한국서예사 흐름과 서체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뿐 아니라, 조선시대 사회상을 읽을 수 있어 사료적 가치 또한 높다”고 평가했다.

    이런 ‘근묵’이 조만간 대중 앞에 선보인다. ‘근묵’을 소장한 성균관대 박물관이 1136점의 작품 전부를 정밀하게 촬영, 실물 크기와 원색을 살려 펴내기 때문이다. 또한 최초로 국문 번역까지 완료해, 일반인이 그 내용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국역판까지 합쳐 모두 5권으로 구성된 이 책의 정가는 100만원이 될 예정. 성균관대 관계자는 “1000부만 한정 제작하며, 원래의 서책이 국보로 지정되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책의 출간을 맡은 성균관대 출판부는 최근 일간지 광고를 통해 ‘근묵’을 ‘국보급 유물’로 칭하며 예약 판매 중임을 알렸다.



    서체는 물론 생활상도 볼 수 있는 국보급 古書

    위창이 엮은 서화집 중 실물 그대로 재현되고 국역까지 이뤄지는 것은 이번에 나오는 ‘근묵’이 처음이다. 서울대 박물관이 소장한 ‘근역서휘’와 ‘근역화휘’는 1990년대 초 일부만 출판됐다. 성균관대 박물관은 1981년 ‘근묵’을 상·하권으로 나눠 출판했는데, 실물 크기도 아니고 흑백 인쇄라는 한계가 있었다. 국역도 되지 않았고, 인쇄 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권당 5만원에 출간된 ‘근묵’ 또한 요즘 고서점에서 100만원 넘는 가격에 거래될 만큼 가치가 높다고 한다.

    위창이 선조들의 글씨를 모아 펴낸 것은 호사스러운 취미가 아닌, 나라 잃은 민족의 역사와 문화, 혼을 지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육당(六堂) 최남선은 ‘근역서화징’에 대한 서평에서 “조선이 예술국이지만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들이 매몰되어 그 면모가 엄폐된 것을 갖은 난관을 무릅쓰고 찾아내고 보존하여 조선의 예술적 터전을 지켰다”고 평가했다. 위창은 ‘근역서휘’ 발문에 “후세 사람들이 옛사람을 오늘날의 사람처럼 가까이 대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썼다.

    이번에 국역까지 되어 출간되는 ‘근묵’은 그러한 위창의 뜻을 잘 살린 것이다. 한편 성균관대 박물관은 출간을 기념해 ‘근묵’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창 바람’이 얼마나 넓고도 향기롭게 퍼질지 기대해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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