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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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믿은 ‘힘의 축구’ 줄줄이 퇴장

기술력 앞세운 ‘전술+조직력+투지’가 승리의 조건…예년 비해 스피드·정확성 ‘괄목상대’

  • 입력2005-07-20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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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덩치 믿은 ‘힘의 축구’ 줄줄이 퇴장
    기원전 58년 5월. 로마군과 게르만군의 제2차 전투. 카이사르가 이끄는 로마군은 6개 군단의 3만6000명, 게르만군은 모두 12만명. 라인강을 건너온 게르만인들은 바로 그 라인강을 등뒤에 지는 배수진을 치고 로마군을 압박하고 있었다. 전투의 승패를 가름하는 기병수도 로마군은 속국인 갈리아(라인강 서쪽 지방. 지금의 프랑스를 중심으로 벨기에-룩셈부르크-네덜란드 남부-독일 서부-스위스 지역) 기병까지 합해서 4000명, 게르만군은 6000명.

    누가 봐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로마군 진영에서는 게르만군에 대한 공포감이 급속히 퍼졌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는 소문들이 진중에 나돌았다.

    “게르만인들은 키가 너무 커서 로마인들은 모두 한참 올려다봐야 한다.”

    “그들과 전쟁을 해본 갈리아인들은 그들의 산 같은 몸집과 형형한 눈빛에 놀라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도망쳤다.”

    사실이었다. 로마 남성들은 키가 작다고 갈리아인에게까지 놀림을 받고 있었다. 또한 게르만인들은 용맹스러웠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로마 군인들은 실용적이고 합리적이었지만 목숨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로마군은 싸우기도 전에 패배감이 전군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카이사르가 이끄는 로마군은 이 전투에서 이겼다. 어떻게 이길 수 있었을까.

    3일 새벽 프랑스의 극적인 우승으로 막을 내린 2000유럽축구선수권은 바로 이 로마군과 게르만군의 전투와 닮은꼴이 많다. 우승한 프랑스나 준우승한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는 체구가 작은 민족이다. 그들은 거의 2000여년 동안 북쪽의 게르만족 바이킹족 등 체구가 큰 민족들과 끊임없이 싸워왔다.

    게르만족인 독일을 비롯한 잉글랜드 체코 노르웨이 스웨덴 벨기에 덴마크 등 중북부 유럽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체구가 엄청나게 크다. 190cm는 보통이다. 그래서 이들의 축구는 힘이 넘친다. 헤딩슛이 많고 자연히 좌우 코너 부근에서 올려주는 센터링이 많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단순하다. 그러나 체구가 작은 나라의 선수들에겐 그게 만만치 않다. 뻔히 보고도 당하기 일쑤다.

    ‘유로2000’은 작은 체구의 팀들이 이들을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 그 해법을 제시해준 대회다. 잉글랜드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체코 등 힘으로 하는 축구는 8강에도 오르지 못하고 1회전에서 우수수 탈락했다. 대신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체구는 작지만 기술이 좋은 라틴계와 힘과 기술을 겸비한 발칸반도의 루마니아 유고, 그리고 터키 등이 8강에 올랐다. 힘 좋고 키 큰 나라 중에서 유일하게 8강에 오른 네덜란드는 기본적으로 남미식의 섬세한 기술축구를 한다는 점에서 잉글랜드 독일 축구와는 차원이 다르다.

    자, 그럼 이들은 어떻게 힘 좋은 그들을 이겼을까.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4S+2B의 승리라 말할 수 있다. 4S는 기술(SKILL)+속도(SPEED)+투쟁심(SPIRITS)+체력(STAMINA)을 말한다 2B는 경기 조절능력(BAL-LANCE)+두뇌(BRAIN)다. 여기에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은 기본이다.

    그 예의 하나로 이탈리아를 보자. 전통적으로 로마의 후손인 이탈리아인들은 실용적이다. 잉글랜드 독일 등과 정면으로 맞붙어서 결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움츠러든다. 수비를 튼튼히 한다. 최종 수비라인인 포백만이 수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의 미드필드진 4명도 적극적으로 몸을 던져 1차방어에 나선다. 미드필더 4명은 기본적으로 지역방어를 하고 포백의 4명은 대인방어가 기본이다.

    그러나 큰 틀이 그렇다는 것일 뿐 이들의 수비 시스템은 톱니바퀴 같다. 더구나 이들은 상대의 슈팅을 몸으로 막아내는 데 탁월하다. 그만큼 공의 길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기회를 엿본다. 그래서 아마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게 이탈리아 축구경기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후반 20분경까지만 그렇다. 상대가 힘이 빠졌다고 느끼는 순간 이탈리아는 그동안 축적해 놓은 힘을 일시에 활화산같이 분출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마치 성난 파도 같다.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축구경기도 이탈리아 축구경기의 후반 20분 이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는 그 상식을 뒤엎는 작전으로 나와 프랑스 벤치의 허를 찔렀다. 카이사르가 기습작전을 즐겨 쓰는 것과 닮았다. 전반 초반부터 과감한 선제공격으로 먼저 1골을 넣은 후 빗장을 걸어 잠갔다. 적어도 이 작전은 90분 경기 중 89분간은 성공했다.

    이탈리아에는 세계적인 골잡이가 드문 대신 세계적인 수비수들은 많다. 이탈리아가 자신들의 간판 골잡이로 델 피에로를 내세우며 연봉도 유럽 최고 수준인 360만 파운드(약 61억원)나 주고 있지만 그것은 이탈리아인들의 자존심용 인상이 짙다. 피에로는 발재간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탈리아의 기습공격에 적합한 스피드가 절대 부족하다. 만약 그 자리에 네덜란드의 클루이베이트나 오베르 마스, 잉글랜드의 오웬, 혹은 차라리 한국의 서정원이 뛰었으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솔직히 이탈리아에서는 왼쪽 수비수 말디니가 몇배나 뛰어나다. 그것은 이탈리아 프로리그인 세리에 A리그를 살펴보면 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호나우두, 지단 등 세계 유명 골잡이들은 대부분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고 있다. 그리고 이들을 막는 수비수들은 대부분 이탈리아 선수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골의 길을 훤히 꿰뚫고 있다.

    이탈리아-네덜란드의 준결승전은 이탈리아식 축구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슈팅수 4-21. 볼점유율 35%-65%. 네덜란드의 21개 슈팅에는 페널티킥이 2개나 포함돼 있었다. 더구나 이탈리아는 10명이 싸우고 네덜란드는 11명이 뛰었다. 그래도 이탈리아는 이겼다. 이것을 기적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다음에 맞붙어도 이탈리아가 이길 확률이 높다. 79년 이후 이탈리아가 네덜란드에 4승2무의 압도적인 우위를 지키고 있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만큼 이탈리아는 네덜란드 축구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축구가 갈수록 격렬해지고 빨라지고 있다. 이번 유로2000을 보면 마치 농구나 핸드볼 경기를 보는 것 같다. 전원 공격 전원 수비는 기본.

    상대 골문 앞에서 주고받는 짧은 패스가 이젠 자기편 골키퍼까지로 이어지는 긴 패스로 바뀌었다는 것도 눈에 띈다. 또한 주고받는 패스들은 하나같이 당구대 위를 오가는 당구공처럼 정확하게 굴러갔다.

    체력소비도 엄청났다. 대부분의 경기가 잠시도 쉼없이 밀물과 썰물처럼 ‘우’ 밀고 올라갔다가 다시 ‘우’ 밀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다리에 쥐가 나서 쓰러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또한 상대의 슈팅 기회가 예상되면 지체없이 파울로 그 흐름을 끊었다. 이젠 파울도 기술이라는 이야기다. 이탈리아-네덜란드전의 파울수는 33-34로 무려 67개나 됐다. 레드카드 1장에 옐로 카드 10장. 한 경기에 한 선수가 3개 이상의 파울을 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코너킥이나 센터링한 공의 속도는 이젠 슈팅한 공이나 별로 차이가 없어졌다. 양쪽 사이드에서 올려주는 공은 차라리 슈팅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그만큼 골키퍼는 그 공을 잡기가 힘들어졌다. 결국 시속 100km를 넘는 그 공에 머리만 대면 골을 넣을 수 있다는 얘기다. 상대와 그 공을 머리에 댈 수 있는 확률은 50대 50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공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공을 안전하게 잡으려고 잠시 멈추면 그 공은 상대에게 어김없이 뺏겼다.

    자, 이제 카이사르는 로마군을 이끌고 어떻게 이겼을까, 대답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카이사르는 게르만인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초반엔 엄청난 공격력을 보이지만 전투가 진행될수록 힘이 떨어졌다. 또한 그들은 개인 하나하나는 강하지만 조직력이 약했다. 그에 비해 로마군은 상황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정도로 조직화됐다.

    작전 전술 조직력, 그리고 투쟁심의 승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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