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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탐구

정현의 테니스 플레이를 보고

곡선이 그리는 가장 아름다운 스포츠에서 상상 못 했던 것을 구현해내다

정현의 테니스 플레이를 보고

공은 둥글다. 그래서 곡선을 지향한다. 공의 궤적은 부드럽고 완만하게 떠올랐다 내려앉는다.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은 대부분 공이 그리는 곡선의 아름다움에서부터 매료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곡선은 힘이 약하다. 그래서 멀리 보내는 시합(던지기, 골프)이 생겼을 테고 상대 골대에 집어넣고 막는 스포츠(농구, 축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네트를 쳐놓고 도구를 사용해 공을 보내고 상대가 받지 못하거나 돌려보내지 못하면 이기는 경기(배구, 테니스, 탁구)가 등장했다. 그리하여 곡선을 지향하는 공을 직선으로 힘 있게 보내는 기술이 중요해진다. 결국 현재의 공놀이 스포츠는 곡선인 공의 궤적을 얼마만큼 빠르고 직선에 가깝게 상대에게 보내느냐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 테니스는 가장 미(美)적인 운동이다. 테니스는 네트를 쳐놓고 상대가 받을 수 없는 곳에 공을 보내 실수를 유도하고, 선 안에 집어넣어 점수를 내는 경기다. 탁구나 배드민턴, 배구도 그러하듯 네트가 쳐진 스포츠는 가장 신사적이고 매너 있다. 서로의 몸이 닿지 않고 오로지 정해진 룰 안에서 경기가 진행된다. 선 안으로 공을 보내 상대가 받지 못하면 이기는 스포츠. 그것은 오직 자신만의 실력 외적인 그 어떤 것에도 기댈 수 없는, 반칙이 없는 유일한 스포츠인 셈이다. 

우리가 테니스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런 스포츠 미학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멀리서 서로에게 공을 보내고 상대가 받지 못하도록 하는 움직임과 실력이 테니스의 전부라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우리는 가장 아름다웠던 그 곡선에서 직선으로 바뀌는 찰나의 광경,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쓰는 미적인 동태를 정현(22)의 경기를 통해 보게 됐다. 그가 아직 젊고 아주 많은 대회를 남겨놓은 동시대 사람이고, 같은 국민으로 살게 된 것은 일생의 어떤 행운이다.


선을 넘으면 안 된다

우리가 정현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이번에 거둔 성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 사람은 그가 이번 ‘2018 호주오픈테니스대회’(호주오픈) 16강전서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를 꺾은 다음에야 알게 됐을 테지만, 테니스 좀 친다거나 중계되는 대회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그의 경기를 기다려왔을 것이다. 

내가 그의 경기를 처음 본 것은 ‘2017 프랑스오픈테니스대회’(프랑스오픈)였다. 정현에 대한 정보 없이 순전히 우연히 본 그 경기에서 아직 어린, 완성되지 않았으나 가능성 넘치는 어떤 것을 보게 됐다. 우리 테니스 선수도 잘만 하면 될 수 있겠구나 느낀 처음의 일이었다. 

실제 나는 메이저 대회에서 한국 선수의 경기를 거의 처음 보았고, 그게 엄청 신기하기만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는 정말 잘 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실제 존재하는 것보다 더 낮은 자존감을 가졌던 게 아닌가 싶다.

현재의 ‘정현 신드롬’은 그가 거둔 성적 때문만이 아니다. 이제 우리 국민은 1등 해서 뜨고, 성적에 모든 찬가를 다 쏟아붓는 그런 시대를 뒤로한 지 오래다. 어떤 노력에 대한 존중, 열정과 패기에 대한 선망 같은 것이 이런 스포츠 선수 신드롬을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정현도 처음 테니스를 시작했을 적에는 상대가 받을 수 없는 곳에 공을 넣는 연습을 한 것은 아니었을 터다. 공을 받고 상대방이 공을 잘 넘길 수 있는 위치로 보내는 연습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네트 너머 상대에게 공을 곡선으로 보내는 연습과 더불어 곡선에서 직선으로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움직임과 열정에 우리는 매료됐다. 그간의 노력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스포츠는 그런 의미에서 사람이 만들어내는 그 어떤 예술품보다도 완성된 미의 걸작이 아닐까 싶다. 

선을 넘지 말아야 하는 숙명 안에 테니스는 있고, 정현이 만들어내는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우리는 즐기게 됐다. 정현 신드롬의 정체는 바로 그것이다. 

모든 스포츠에서 요구되는 것이 매너이지만, 승부에 대한 집착으로 우리는 그것이 쉽게 무너지고 내동댕이쳐진 순간을 너무나 많이 목도해왔다. 이미 말했듯 테니스는 네트를 쳐놓고 멀리 떨어져 상대에게 공을 보내는 것이니, 스포츠 매너 면에서는 테니스만 한 것이 없겠다. 모든 것은 내 탓이거나, 내 실수로 지고 내가 잘해야 이기는 스포츠인 셈. 상대를 탓할 게, 반칙이나 편법을 탓할 게 전혀 없는 스포츠다. 그래서 매너가 더 소중하다고 테니스 팬들은 말한다. 

정현과 조코비치가 보여준 상대에 대한 배려와 칭찬, 로저 페더러(스위스)와 정현이 서로를 향해 쏟아냈던 스포츠맨십에 대한 존중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가 하는 것은 꼭 테니스 팬이 아니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번에 부상으로 8강전에서 기권한 라파엘 나달(스페인)을 포함해 페더러, 조코비치, 감히 말하자면 물론 현재도 이 삼총사의 시대는 진행형이지만 정현의 출현이 새 시대를 알리는 서막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터다(하지만 삼총사가 동시에 코트에서 사라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좀 슬프기도 하다). 

이 셋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는 기록으로 증명된다. 지금까지 이 삼총사가 메이저 대회(US오픈테니스대회, 프랑스오픈, 호주오픈, 윔블던테니스대회)에서 왕좌에 오른 횟수가 페더러 20회, 나달 16회, 조코비치 12회다. 모두 합치면 48회로 12년 동안 모든 메이저 대회 우승 횟수와 같다.


매너는 테니스의 가장 중요한 룰이다

실은 이들이 있어서 테니스 코트는 언제나 황홀하기만 했지만, 그래서 조금 심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페더러 잡는 나달이나, 나달 잡는 조코비치나, 조코비치를 발라버리는 페더러의 경기가 우리가 원한 최고 경기임을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정현의 등장으로 우리는 더욱 역동적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정현의 등장은 시원하다. 정현 신드롬이 생성된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호주오픈에서 정현의 최고 경기로 조코비치와 16강전을 꼽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개인적으로 32강에서 만난 알렉산더 즈베레프(독일)를 제압한 경기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즈베레프는 키가 2m에 육박하고 서브 속도가 시속 200km를 가볍게 넘긴다. 가끔 페더러를 가뿐히 밟아주던 그를 향해 정현이 꽂아 넣던 패싱 샷, 아름답다는 말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었다. 정현이 예상보다 손쉽게 이기는 것을 보고 나는 좀 충격을 받았더랬다. 그건 내 상상에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테니스 메이저 대회에서 한국인 선수가 누군가를 이긴다는 것이 언제나 불가능한 일처럼 생각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현에게 매료된 것은 바로 상상하지 않았던 그 일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든 데 있을 것이다. 아직 젊다는 것에 더 흥분된다. 동시대에 정현의 플레이를 만나는 것은 훗날 다시 증언하게 되겠지만 정말 우리에겐 행운이다.




주간동아 2018.02.07 1125호 (p62~64)

  • | 백가흠 소설가 gahu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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