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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트럼프가 폼페이오 카드를 꺼내 든 까닭

북  ·  미 정상회담에서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국무장관 인사로 피력한 셈

트럼프가 폼페이오 카드를 꺼내 든 까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내정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내정자.

북한 ‘아리랑 공연’은 평양 능라도 5 · 1경기장에서 10만 명을 동원해 각종 집단체조(매스게임) 등을 펼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야외공연이다. 특히 아리랑 공연에 출연하는 어린 학생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몇 달간 피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 때문에 국제인권단체들은 아리랑 공연을 북한이 인권을 유린하는 대표적 사례로 비판해왔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은 북 · 미 정상회담을 준비하고자 2000년 10월 23일부터 2박 3일간 현직 국무장관으로는 처음 북한을 방문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북한의 권유로 5 · 1경기장을 방문해 아리랑 공연의 전신이자 집단체조인 ‘백전백승 노동당’을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회 위원장과 나란히 앉아 관람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과 함께 북한을 방문했던 웬디 셔먼 전 미국 행정부 대북정책조정관은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당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며 “하루 회의를 마친 뒤 김 위원장이 ‘당신들을 놀라게 할 일이 있다. 차가 이미 준비돼 있다’고 갑작스럽게 말해 우리는 북한의 일상적인 서커스 공연을 보러 가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매우 불편한 자리였다”

당시 공연은 1998년 최초 발사됐던 대포동 미사일을 묘사하는 장면을 비롯해 철저하게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내용이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공연을 보면서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이 발언이 미국 언론 사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그는 귀국 직후 “매우 불편한 자리였다”고 해명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자서전에 “김정일이 ‘대포동 미사일은 우리가 최초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쏜 미사일’이라고 밝혔다”고 적었다. 그는 김정일이 거짓말을 한 줄 전혀 몰랐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에게 북 · 미 정상회담 개최를 건의했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당시 중동 평화협정 체결이 더 시급했고 같은 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가 승리해 상황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 28일 시간 부족 등을 이유로 북한 방문 계획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부시 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북 · 미는 대화를 이어갔지만 2002년 북한이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을 진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북핵 위기가 증폭됐다. 

이처럼 북한은 기만전술에 상당히 능하다. 미국 ‘블룸버그’의 외교 · 안보 전문 칼럼니스트이자 올브라이트 전 장관 방북 당시 동행 취재했던 엘리 레이크는 “올브라이트 전 장관이 북한에서 성대한 대접을 받으면서 김정일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것이라고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북한의 기만전술을 간파하고 김정일을 강하게 밀어붙여야 했다”고 지적했다. 레이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독재자와 협상하려면 기만전술에 넘어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도 경고했다.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특사 역시 “과거 사례를 보면서 북한과 협상을 통해 중요한 결과를 낼 수 있지만, 동시에 북한이 우리를 속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며 “심지어 지금 북한은 핵무기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미국 조야에서 신중론이 계속 제기되자 트럼프 정부는 북 · 미 정상회담을 위해 범정부적 준비 체제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의 지휘 아래 백악관이 주도하고 국무부가 뒷받침하면서 관련 부처가 모두 참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를 지명하기 전 이미 그에게 북 · 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트럼프가 북한 정권 교체까지 주장한 대북 강경파 폼페이오를 국무장관에 기용해 북 · 미 정상회담 준비를 총괄하게 한 것은 북한과 협상에서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폼페이오는 역대 정부의 북 · 미 합의 실패 전철을 밟지 않고자 과거 중앙정보국(CIA)의 협상 관련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폼페이오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북한의 비핵화(CVID)를 위해 제재 완화 등 어떠한 양보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끝까지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어떠한 양보도 없다”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대위로 예편한 폼페이오는 하버드대 법과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변호사로 일하다 기업을 설립해 직접 경영하기도 했다. 2011년 캔자스주 공화당 하원의원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 4선까지 한 폼페이오는 정보위원회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하루 2시간씩 안보 평가보고서를 읽었고, 그의 책상에는 북한과 헤즈볼라 관련 서적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CIA 국장으로 발탁된 이후에도 그는 최우선 목표로 북핵 문제 해결을 내세웠고, 지난해 5월 CIA에 코리아임무센터(KMC)도 설치했다. CIA가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정보 총괄조직을 만든 것은 처음이었다. KMC는 CIA 요원은 물론이고 국방정보국(DIA)과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리, 재무부 소속 금융제재 전문가 등으로 구성돼 있다. KMC 책임자는 50대 중반의 한국계 미국인 앤드루 김(한국명 김성현)으로, CIA 한국지부장과 아시아·태평양(아태)지역 책임자(차관보급)를 지냈다. 폼페이오는 북·미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KMC를 적극 활용할 것이 분명하다. 

북 · 미 정상회담 준비팀의 실무 책임자는 매슈 포팅어 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중국 특파원 출신인 포팅어는 2005년 해병대에 입대한 후 아프가니스탄전쟁에 참전해 정보장교(대위)로 복무했다. 그 뒤 미국외교협회(CFR)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NSC에 들어왔으며 중국은 물론, 한반도 문제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때 실무 준비를 지휘하기도 했다. 국무부의 경우 존 설리번 부장관의 지휘 아래 동아태지역 담당 외교관 20여 명이 지원 업무를 맡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기업을 경영할 때도 승부처라고 판단되면 모든 자원을 동원해 집중적으로 해결하곤 했다. 하지만 북 · 미 정상회담의 복병은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즉흥성이라는 말도 나온다. 준비팀이 A, B, C안을 준비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에서 전혀 다른 카드를 꺼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짧은 준비 기간이지만 미국이 북 · 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할지 주목된다.




주간동아 2018.03.28 1131호 (p54~55)

  •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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