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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욱의 술기로운 생활

전통주도 구독할 수 있다

전통주도 구독할 수 있다

‘청산녹수’ 양조장이 운영하는 전통주 쇼핑몰 ‘술팜’에서 판매되는 다양한 제품들.

‘청산녹수’ 양조장이 운영하는 전통주 쇼핑몰 ‘술팜’에서 판매되는 다양한 제품들.

모든 것이 다양화, 세분화되는 세상이다. 한때는 ‘자판기 커피’가 최고였는데 어느새 수많은 종류의 커피전문점이 성업 중이다. 동네 빵집 카스텔라가 가장 맛있는 빵이었는데, 요즘은 일본 카스텔라를 구해 먹는다. 최근 10년간 두드러지게 다양화, 세분화된 시장 가운데 하나가 주류업계다. 하우스 맥주(집이나 점포에서 소규모로 제조한 맥주)의 매장 밖 유통이 허가되자 ‘크래프트 비어(Craft Beer)’라는 신규 시장이 생겨났다. 기존 소주에 물린 소비자들은 원료의 맛을 지닌 증류식 소주를 찾고 있다. 전통주시장도 비즈니스 모델을 왕성하게 진화시키고 있어 흥미롭다.


경쟁사 제품도 판매 가능해져

양조장은 술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다. 하지만 최근 5년 사이 양조장은 견학과 시음은 물론, 체험과 교육의 공간으로 진화했다. 양조장의 100년 역사를 재조명하며 한국 근대문화를 소개하는 역할도 한다.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는 전국 34곳의 ‘찾아가는 양조장’을 지정했다. 대표적인 신규 양조장이 경기 용인의 ‘술샘’ 양조장과 강원 홍천의 ‘예술주조’다. 2013년 설립된 술샘 양조장의 건물은 파격적인 파스텔 톤을 자랑한다. 지하 1층은 양조장, 지상 1층은 카페, 2층은 체험장. 언제든 이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막걸리, 증류주, 청주 등을 무료로 시음할 수 있다. 예술주조는 귀촌한 변호사 정회철 씨가 2012년에 세운 곳이다. 막걸리 빚기, 누룩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이곳에서 결혼식이 열리기도 했다. 두 양조장 모두 감미료를 전혀 쓰지 않고 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사용해 고부가가치 전통주를 만든다. 일반 주류보다 비싸지만 지역적 특성과 생산에 들어간 노력에 귀 기울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구매로 이어진다. ‘소통 마케팅’이 통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전통주의 인터넷 판매가 확산되면서 어디서나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됐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네고시앙(negociant)’이라는 와인 상인들이 있다. 네고시앙은 프랑스어로 상인(merchant)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포도밭을 보유하진 않는다. 그 대신 와이너리들로부터 숙성되지 않은 와인을 구매해 숙성시킨 뒤 자신의 라벨을 붙여 출고한다.


구독하면 매달 ‘인생주’ 보내줘

‘술담화’가 고객에게 배송하는 전통주 박스. 다양한 전통주와 한국 와인, 해당 술에 대한 스토리 카드 등이 담겨 있다. [사진 제공 · 술담화]

‘술담화’가 고객에게 배송하는 전통주 박스. 다양한 전통주와 한국 와인, 해당 술에 대한 스토리 카드 등이 담겨 있다. [사진 제공 · 술담화]

경기 용인 ‘술샘’ 양조장 1층에 마련된 카페 겸 전통주 시음 체험장. [사진 제공 · 전통주갤러리]

경기 용인 ‘술샘’ 양조장 1층에 마련된 카페 겸 전통주 시음 체험장. [사진 제공 · 전통주갤러리]

충북 단양 ‘대강 양조장’에서 조재구 대표(오른쪽)가 견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대강 양조장]

충북 단양 ‘대강 양조장’에서 조재구 대표(오른쪽)가 견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대강 양조장]

강원 홍천 ‘예술주조’에서 열린 결혼식. [사진 제공 · 예술주조]

강원 홍천 ‘예술주조’에서 열린 결혼식. [사진 제공 · 예술주조]

앞으로 ‘한국식 네고시앙’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4월 1일부터 전통주 제조자는 다른 양조장의 전통주를 판매할 수 있게 됐다. 네고시앙과 똑같지는 않지만 양조장끼리 협업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막걸리 양조장에서 청주를, 증류주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판매하는 등 제품군이 넓어져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여러 양조장의 막걸리를 자사 홈페이지에서 판매하는 전남 장성 ‘청산녹수’의 김진만 대표는 “전통주 양조장들 간 협업체제가 탄탄해져 전통주 문화를 소비자에게 더욱 널리 알릴 수 있게 됐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우리는 고깃집에서는 맥주와 소주를, 파전을 파는 전통주점에서는 막걸리를 마신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다양한 전통주와 일품요리를 내는 한식주점이 각광받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하우스 막걸리’ 역시 발전하고 있다. 2016년 2월 주세법 개정으로 소규모 주류제조면허 대상이 맥주에서 탁주, 약주, 청주로 확대되면서 일반음식점에서도 하우스 막걸리나 전통주를 제조·판매할 수 있게 됐다. 주막에서 술을 빚어 판매하던 옛 문화가 현대적으로 복원된 셈이다. 예를 들어 경기 수원 ‘솔마당’, 전남 목포 ‘인동주마을’, 배상면주가의 ‘느린마을 양조장’ 등은 식당과 양조장을 함께 운영하며 하우스 막걸리를 만들어왔다. 그런데 주류법 개정에 따라 총시설(담금·제성·저장용기) 최소 기준이 5㎘에서 1㎘로 완화되면서 문호가 넓어졌다. 새롭게 등장한 ‘술 빚는 한식주점’ 가운데 큰 인기를 누리는 곳으로는 서울 관악구 ‘솟대’, 서울 중구 ‘월향’ 등이 있다. 느린마을 양조장도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에 나섰다. 

최근에는 넷플릭스와 같은 ‘전통주 구독 서비스’도 생겼다.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전통주 소믈리에 과정을 마친 이재욱 씨는 ‘술담화’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매달 찾아오는 인생술’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계절이나 기념일에 어울리는 전통주를 선별해 해당 술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보내준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구독 서비스의 주요 고객층이 2030세대라는 점이다. 이 업체는 전통주와 관련한 재미난 콘텐츠를 만들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도 올리고 있다. 

전통주를 다루는 인기 유튜브 채널도 있다. 구독자 16만 명을 보유한 ‘Leeby리비’, 테이스티코리아의 ‘술례자의 길’, 남희철 푸드스타일리스트의 ‘인천왕 마스터’는 전통주를 주요 소재로 해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주담’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이재민 씨는 전통주 맛 평가, 전통주와 어울리는 음식 등을 소재로 카드뉴스를 지속적으로 제작하고 있다. 2014년 전통주 소믈리에 대회에서 준우승자한 신혜영 씨는 다양한 스타트업과 제휴해 강연회를 진행한다. 대학생칵테일연합동아리 코콕(COCOC)은 공유오피스 ‘패스트파이브’와 제휴해 전통주 칵테일 강연회를 열고 있다.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발상으로 전통주 사업을 펼치자 트렌드에 민감한 2030세대가 반응하고 있다.


다양한 소통 위해 노력하자 2030세대가 ‘열광’

배상면주가 ‘느린마을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하우스 막걸리. [사진 제공 · 배상면주가]

배상면주가 ‘느린마을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하우스 막걸리. [사진 제공 · 배상면주가]

전통주 교육기관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농식품부로부터 우리술 교육기관으로 인정받은 한국식품연구원의 우리술 전문가 과정, 서울벤처대학원대 양조 전문가 양성 과정, 서울 종로구 서촌의 한국전통주연구소, 서울 중구 남산의 막걸리학교, 서울 서초구 한국가양주연구소 등이 대표적이다. 기존에는 술 빚는 법을 교육시키는 것을 중심으로 했다면 최근에는 전통주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 양조장 투어, 하우스 막걸리 제조, 전통주 생산자가 갖춰야 할 전문지식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 10년간 이들 교육기관을 통해 배출된 전통주 창업자도 상당히 많다. 

하지만 전통주 사업은 녹록지 않다. 술 종류가 워낙 다양하고 술을 빚는 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전국의 수많은 양조장을 찾아다니고, 지역 음식과 문화도 익혀야 한다. 술을 빚으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관리하는 섬세함, 술이 익는 동안 기다리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결국 철저한 준비와 더불어 우리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사랑하고, 우리 농산물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해야만 할 수 있는 사업이다. 단순히 전통주를 제조·판매하는 시장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창의적인 발상을 바탕으로 우리의 전통, 그리고 각 지역 문화에 대해 소비자와 활발하게 소통하는 전통주 비즈니스가 더욱 발전할 것으로 기대한다.






주간동아 2019.04.26 1186호 (p62~64)

  •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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