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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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개월 동안 보고를 제대로 못 했다 vs 내가 결재한 굵직한 일은 유령이 했나

유선주 전 공정위 심판관리관, 갑질 이유 직위해제 “부당하다” 반발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9-04-29 08: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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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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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징계혐의자는 직원들이 국장실 불투명 창문 틈을 통해 보고가 가능한지 등을 알 수 있었는데, 그 창문의 작은 틈을 모두 가리고, 주로 오전에는 내내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해서 보고를 하지 못하고, 오후에는 개인적으로 점심시간을 1시에서 2시 사이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그 이후에도 불을 끄고 문을 잠그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 

    유선주 전 공정거래위원회 심판관리관(국장급) 아래에서 일했던 직원이 이른바 유 국장의 갑질에 대해 쓴 진술서의 일부다. 이 진술의 요지는 간단하다. 유 전 국장이 의도적으로 직원들을 피해 21개월간 제대로 보고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른 진술서에는 폭언, 욕설, 성희롱, 업무방해 같은 갑질로 고통받았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진술서가 사실이라면 직원들은 뭘 했나?”

    하지만 유 전 국장은 진술서 내용을 부인했다. 그는 “보고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한 21개월간 내가 맡았던 5개 부서에서 굵직한 사건을 많이 처리했다. 당시 보도가 될 정도로 사회적으로 비중 있던 사건만 2건이다. 진술서 내용이 사실이라면, 아래에서 보고한 일이 없는데 내가 혼자 이 일을 처리했다는 뜻인가”라고 반문했다. 

    유 전 국장은 지난해 10월 15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정위원회(공정위)의 가습기 살균제 조사가 허술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 증언을 하기 닷새 전인 10월 10일 공정위는 유 전 국장에게 직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담당 과장을 포함한 공정위 부하직원 20명이 유 전 국장의 갑질을 참을 수 없다며 신고해왔다는 것이다. 

    4월 10일 모처에서 만난 유 전 국장은 보고를 받지 않았다는 진술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했다. 그는 “문을 잠그고 보고를 어렵게 한 적이 없다. 점심시간은 월요일은 국장들 오찬, 화요일은 국과장서기관 오찬, 수요일 전원회의 담당자 오찬, 목요일과 금요일 점심은 출장이나 개인적 약속을 해 다른 국 직원들과 식사했다. 혼자 1~2시에 점심을 먹지 않았다. 보고는 문자, 전화, 전산, 대면, 서면 등 각종 방법으로 원활하게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는 또 “공정위 업무 기록만 봐도 그 기간에 보고를 하지 못했다는 주장의 허위를 입증할 수 있다. 특히 2016년 1월~2017년 9월까지는 처리할 일이 수도 없이 많았다. 직원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직제상 나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으면 일 진행이 불가능하다. 업무 기록에는 전부 내 이름이 올라가 있다”고 밝혔다. 

    유 전 국장이 맡았던 5개 부서는 실제로 그 기간에 글로벌 통신기업 퀄컴에 과징금 1조 원을 부과했다. 표준특허를 빌미로 삼성전자와 애플 등에 장기간 부당한 계약을 강요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공정위에 따르면 2015년 11월 시작된 사건으로 2016년 7월부터 5개월간 7차례 검토를 거쳐 내린 결정이었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합병 심사도 있었다. 공정위는 7개월간 심사를 거쳐 2016년 7월 두 회사의 합병 불허 결정을 내렸다. 2017년에는 시멘트업체 성신양회에 대한 과징금 부당감면을 바로잡았다. 

    2016년 2월쯤부터는 제지업계의 원지 가격 담합 사건에 18개 사업자가 관련돼 있었고, 5월부터는 원단 및 상자 담합 사건도 담당했다. 2016년 9월부터는 가습기살균제 사건 관련 모든 자료를 검토해서 신속하게 재조사 및 재심의 할 것을 진정했다. 상부에서 거부하자 관련 보고서를 작성. 사무처장, 부위원장, 위원장, 관련 위원들 모두에게 재차 진정했다. 

    유 전 국장은 “사건마다 심판정에 참석한 인원수만 해도 100명가량이었다. 사건별 검토와 결정이 필요한 쟁점도 10개 이상이 되는 복잡한 사건이 많았다”고 밝혔다. 

    직원들의 진술서가 사실이라면 이 많은 사건을 유 전 국장에게 보고를 제대로 못 한 채 처리했거나, 유 전 국장 혼자 처리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공정위에 확인을 요청했다. 공정위는 서면을 통해 “유선주 전 심판관리관의 다수의 갑질 행위 혐의 내용 중 하나인 ‘국장 대면보고를 힘들게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사실관계 조사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인 신고인이 진술해주었다”고만 밝혔다.

    그때는 없었고, 지금은 있다

    유선주 전 공정거래위원회 심판관리관. [조영철 기자]

    유선주 전 공정거래위원회 심판관리관. [조영철 기자]

    공정위는 직무정지를 내린 지 6개월 만인 4월 2일 유 전 국장을 직위해제 처분했다. 당시 공정위는 “내부 감사 결과 일부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돼 직위해제했다”고 밝혔다. 직위해제의 근거는 직원들의 진술서였다. 진술서에는 유 전 국장이 직원들에게 폭언, 욕설, 폭행, 업무방해 같은 갑질을 일상적으로 저질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진술서에 기록된 폭언은 ‘그 좋은 머리를 가지고 일을 이런 식으로밖에 못 하느냐’ ‘하찮다’ 등이다. 지방대, 비(非)고시 출신을 차별했다는 진술도 있었다. 한편 속기사들은 ‘속기록을 빨리 내놓으라는 압박에 시달렸다’고 진술했다. 유 전 국장은 “이런 말을 한 적도 없다. 6개월 전 직무정지를 내릴 때 공정위가 폭언이나 폭행은 없었다고 인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방대, 비고시 출신 차별 발언은 전혀 한 적이 없다. 일을 못 한다며 타박을 한 적도 없다. 반대로 비고시 계약직이라고 중요사건을 다룰 기회를 갖도록 배려하고 격려했다. 행시출신 사무관이 비고시 출신 조사관에게 중요 업무를 주지 않으려 했을 때도, 비고시 조사관이 의욕적이니 어려운 일은 서로 도와가면서 하라고 권유했다. 계약직 공무원들에게는 정규직 공무원들 눈치 너무 보지 말고 자기 능력 발휘, 자기 계발에 힘쓰라고 조언했다.”고 밝혔다. 

    직무정지 처분을 받은 이후 보복성 발언을 했다는 진술도 있었다. 진술서에 따르면 유 전 국장은 10월 25일 국회 국정감사를 마친 후 대전역에서 부하 직원을 만났다. 유 전 국장은 부하 직원에게 “갑질 신고해줘 참 고맙다. 이것도 갑질을 했다고 추가 신고하라.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갑질이냐, 내가 말하는 게 무서우냐. 무시하는 것이냐. 가서 추가 신고하라”는 협박을 했다고 적혀 있다. 

    유 전 국장은 “이 같은 얘기를 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10월 25일에는 갑질 신고 때문에 직무가 정지됐다는 사실만 알았지, 누가 갑질 신고를 했는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전혀 몰랐다. 이 직원과는 인사만 나눴을 뿐이다. 갑질 신고에 관한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서는 “유선주 전 심판관리관에 대한 갑질 신고 조사 결과, 징계를 요청할 충분한 혐의가 확인돼 중징계 의결을 요구하고 그에 따른 후속 조치로 직위해제 조치했다. 현재 징계 절차가 진행 중인 관계로 직원에 대한 갑질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해줄 수 없으나, 국가공무원법상 징계를 요구할 정도의 위반 혐의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정위원회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 해명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동아DB]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정위원회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 해명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동아DB]

    유 전 국장의 갑질 의혹이 제기된 지난해 10월로 돌아가보자. 당시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직원 수십 명이 갑질 피해 신고를 했다”며 유 관리관을 불러 직무정지를 명령했다. 지난해 11월 김 위원장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경제부처 예산심사에서 “갑질 신고가 있으면 피해자 권익 보호를 위해 기관장 차원에서 상급자와 하급자를 분리할 수 있다”며 직무정지 처분 이유를 밝혔다.

    피해자의 목소리만 증거입니다

    하지만 직무정지 뒤에도 유 전 국장은 계속 출근해 김 위원장이 바랐던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유 전 국장은 직무정지 한 달 반 뒤인 11월 23일 병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당시 KBS 보도에 따르면 공정위 관계자는 “폭행이나 폭언 등 물리적 폭력으로 갑질을 한 것은 아니므로 물리적 격리는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6개월 뒤 진술서에는 폭언, 욕설, 폭행에 대한 진술이 추가돼 있었다. 공정위는 지난해 말과 지금 유 전 국장의 혐의가 달라진 이유에 대해 “올해 4월 유선주 전 심판관리관에 대한 직위해제 조치는 2018년 직무정지 이전 갑질 혐의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유 전 국장은 공정위의 갑질 신고 감사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판사 출신인 그는 “갑질 의혹이 불거지면 피해자 보호가 우선이지만, 가해자에게도 해명 기회를 줘야 한다. 하지만 공정위 내부 감사팀은 ‘내부 지침에 따르면 피해자의 진술서만으로도 증거가 될 수 있다’며 해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답변서를 통해 “심판관리관실 전·현직 직원들과 익명의 신고인들이 2018년 9월 초부터 ‘직장 내 갑질신고센터’를 통해 수차례 갑질 신고를 했다. 먼저 신고인들을 상대로 사실 확인 절차를 거친 후 같은 해 11월 말부터 수개월에 걸쳐 지속적으로 유선주 전 심판관리관에게 갑질 신고 내용에 대한 의견 진술 기회를 부여했으나 이에 응하지 아니하였음”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유선주 전 심판관리관의 사무실을 방문해 협조 요청을 했으나 응하지 않았고, 이후 유선주 전 심판관리관은 연가 및 병가를 사용해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 이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우편물로 의견서 제출을 두 차례 요청했다”고 밝혔다. 

    유 전 국장은 이 같은 공정위의 주장에 대해 “징계 결과에 따르라는 압박만 있었을 뿐, 해명할 기회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실질적인 증거 조사를 줄곧 요구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공정한 절차와 객관성 증거자료로 감사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병가를 낸 당일인 2018년 11월 23일 감사담당관 소속 조사관 2명이 찾아와 징계하겠다는 취지의 문답서를 내밀더니 답 부분을 기재하라고 요구했다. 이런 형식의 감사는 일방적이어서 거절했다. 병가 중에는 감사담당관 소속 조사관이 감사를 거부하고 있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로 압박을 가해왔다. 이후에도 감사담당관 명의의 등기우편물을 보내왔다. 징계하겠다는 취지의 첫 문답서와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고, 감사 거부로 불이익을 주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유 전 국장은 이어 “만약 정말 갑질이 있었다면 공정위가 이를 증명하는 것은 몹시 쉬운 일”이라며 “구체적으로 갑질을 한 날짜와 장소, 행위를 기재해 그 시간에 이러한 행위가 있었는지 증거를 통해 입증하면 되는데, 공정위는 진술서만 증거로 내세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정위의 미운 오리

    유 전 국장은 공정위가 갑질을 이유로 자신을 징계한 것에 대해 “공정위 내부의 부패 행위 신고와 공익 신고에 대한 보복행위”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해 6월 검찰은 공정위를 압수수색했다. 공정위 퇴직자들이 대기업 및 대형로펌에 취업해 공정위가 사건을 처리할 때 로비를 하려 했다는 의혹이었다. 유 전 국장은 당시 조사에 협조했다. 재취업 비리 의혹 몇 가지를 검찰 측에 알린 것. 이 진술조서가 재취업 비리 재판의 증거자료로 사용됐다. 이 사실이 공정위에 알려지자 내부에서 유 전 국장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생겼다고 한다. 

    유 전 국장은 공정위와 기업의 유착 사례가 의심되는 사건을 전부 정리해놓고 있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2016년 한 기업의 과징금 재부과 사건이다. 437억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지만 적자를 이유로 218억 원을 감경받았다. 유 전 국장의 주장에 따르면 한 공정위 간부가 과징금 처분을 받은 기업의 법률대리인(로펌)에게 연락해 적자를 이유로 과징금 감경을 주장하라고 권유했다는 것. 이를 해당 로펌 소속 전직 공정위 관료가 받아들여 감경을 받았다. 

    하지만 유 전 국장이 재무제표 허위 작성을 이유로 과징금 재부과를 건의했고, 공정위가 승소해 원래대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 전 국장은 이 사건 때문에 ‘주의’ 처분을 받았다. 진작에 재무제표가 허위라는 사실을 알아내지 못한 관리 책임을 물은 것이다. 

    유 전 국장과 공정위는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유 전 국장은 공정위원장의 직무정지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직위해제에 대해서는 소청 심사를 청구했다. 직원들의 신고에 대해서는 65명 직원을 무고죄로 형사 고소했다.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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