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43

2018.06.20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2018년 마시멜로는 쓴맛

개인 의지력보다 부모 능력이 아이의 미래를 만든다

  • 입력2018-06-19 15: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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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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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후반 미국 스탠퍼드대의 젊은 심리학자 월터 미셸은 기발한 실험을 고안했다. 대상은 스탠퍼드대 교수나 교직원들의 자녀가 다니는 부설유치원 어린이들이었다. 미셸은 3~5세 어린이를 모아놓고 마시멜로를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먹고 싶으면 지금 먹으렴. 하지만 선생님이 잠깐 자리를 비우는 동안 마시멜로를 안 먹고 있으면 하나를 더 줄게.” 

    그런 다음 미셸은 15분간 자리를 비웠다. 다시 돌아와 보니, 어린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15분을 꾹 참고 기다린 어린이도 있고, 반대로 달콤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마시멜로를 먹은 어린이도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뻔한 결과다. 미셸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시간이 흘러 이들 어린이가 어떻게 자랐는지 추적한 것이다. 

    미셸의 추적 관찰 결과는 놀라웠다. 어렸을 때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15분간 기다린 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맞닥뜨린 갖가지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학교 성적도 우수하고, 나중에는 좋은 직장을 얻어 소득도 높았다. 미셸의 ‘마시멜로 테스트’는 곧바로 유명해졌다. 어린 시절부터 어떤 일을 이루려는 마음을 꿋꿋하게 지키려는 의지력(willpower)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도 이때부터다. 

    그러나 마시멜로 테스트의 결과는 그동안 여러 비판을 받았다. 미셸이 처음 마시멜로 테스트에 동원한 어린이는 총 653명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들은 미셸의 자녀를 포함해 스탠퍼드대 부설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대다수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중산층 어린이였다.



    반박당한 마시멜로 테스트

    수저계급론처럼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는 부모의 경제력이었다. [shutterstock]

    수저계급론처럼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는 부모의 경제력이었다. [shutterstock]

    애초 미셸은 이들을 추적 관찰할 생각도 없었다. “그때 마시멜로를 먹은 아이와 안 먹은 아이가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우연히 자녀와 대화하다 나온 아이디어가 연구로 이어졌을 뿐이다. 수소문해 653명 가운데 185명을 찾았고, 그중 94명이 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SAT) 점수를 제출했다. 나중에 40대까지 추적이 가능한 이는 50명가량에 불과했다. 

    마시멜로 테스트의 해석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비판이 있었다. 미국 로체스터대의 인지과학자 셀레스티 키드 등이 2013년 1월 발표한 논문(‘Rational Snacking’)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마시멜로 테스트를 약간 비틀었다. 어린이 28명에게 컵을 꾸미는 미술 활동을 할 것이라고 설명한 뒤 일단 크레용을 줬다. 그리고 나중에 색종이와 찰흙을 더 주겠다고 약속했다. 

    14명은 색종이와 찰흙을 받았고, 나머지 14명은 색종이와 찰흙을 받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이 두 그룹을 대상으로 마시멜로 테스트를 해봤다. 색종이와 찰흙을 받은 어린이는 평균 12분 넘게 참았고, 그 가운데 9명은 끝까지 마시멜로를 먹지 않았다. 반면 어른의 거짓말을 경험한 어린이는 평균 3분 정도만 참다 마시멜로를 먹었다. 끝까지 참은 아이는 딱 1명뿐이었다. 

    이 실험 결과는 마시멜로 테스트를 이렇게 반박한다. 마시멜로를 빨리 먹어치운 어린이 가운데 일부는 의지력(참을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중에 돌아오면 하나를 더 주겠다’는 어른의 말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불신이 깔린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는 기회가 있을 때 일단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5월 25일 미국 뉴욕대의 심리학자 타일러 와츠 등이 발표한 논문(‘Revisiting the Marshmallow Test’)의 반박도 살펴보자. 이들은 만 4세가량인 총 918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마시멜로 테스트를 한 뒤 15세 때 성취도를 추적 관찰했다. 이 중 500명 정도는 일부러 어머니가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집의 어린이를 택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마시멜로 테스트와 청소년기의 학교생활, 학업 성적 등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어머니가 대학 교육 이상 받은 어린이는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았든, 곧바로 집어 먹었든 15세가 됐을 때 차이가 없었다. 또 어머니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어린이만 놓고 봐도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아봤자 청소년기에 특별히 나은 이득이 없었다. 

    씁쓸한 결과다. 마시멜로 먹기를 참을 수 있는 의지력은 청소년기의 성취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반면, 자녀 교육 지원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넉넉한 살림 같은 사회·경제적 배경이 오히려 결정적 변수였다. 어렸을 때부터 의지력이 강하다 해도 현실에서는 자수성가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가슴 아픈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가난한 어린이는 눈앞의 마시멜로를 곧바로 먹어치우는 경향이 강했다. 앞에서 소개한 불신이 어린이의 의사 결정에 미치는 결과를 염두에 두면 이런 가설이 가능하다. 부모의 소득이 변변치 못한 어린이일수록 불신 환경에 여러 번 노출됐을 개연성이 크다.

    마시멜로 테스트가 아니라 세상이 변했다

    그런 어린이에게 확실히 보장된 미래는 없다. 몇 분 뒤 마시멜로를 한 개 더 줄지, 말지는 당장의 관심사가 아니다. 눈앞에 있는 마시멜로를 먼저 먹어치우는 것이 남는 장사다. 실제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장기 계획보다 단기적 보상에 더 집착한다는 여러 증언과 연구 결과가 있다.
     
    그렇다면 미셸의 마시멜로 테스트는 무가치한 가십일 뿐일까. 미셸의 실험과 와츠 등의 재현 실험 사이에는 수십 년의 격차가 존재한다. 미셸의 마시멜로 테스트에 응한 어린이가 살던 30년(1970~90년대)과 와츠의 마시멜로 테스트에 응한 어린이가 자랐던 10년(2000년대)의 미국 사회는 달라도 엄청 다르다. 

    개인의 의지력이 한 사람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적어진 데는 이렇게 달라진 미국 사회의 변화도 한몫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하기 힘들어진 사회에서 의지력이 아닌 부모의 경제적 지원 같은 ‘금수저’의 존재가 더욱 또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1930년생인 미셸은 만 88세다. 그는 마시멜로 테스트가 마치 성공할 아이는 떡잎(의지력)부터 다르다는 식으로 해석되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그는 아이의 의지력은 충분히 북돋울 수 있으며, 그렇게 북돋운 의지력이 살아가는 데 큰 버팀목이 되리라고 믿었다. 지금 미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왠지 앞으로 마시멜로가 달지 않고 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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