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은 증거가 중요하다. 청산유수처럼 말을 잘해도, 비록 사실이라 해도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으면 소용없다. 그래서 법률전문가들이 재판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이 입증 책임에 따라 적절한 증거를 제출하는 일이다.
가장 어려운 것이 ‘부재(不在)의 증명(證明)’이다. 과거에 있지도 않았던, 혹은 발생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밝힐 것인가. 수사 과정이나 형사재판에서 당사자가 그 당시 그 장소에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다른 장소에 있었다는 식의 증거를 대기도 한다. 이른바 알리바이(alibi)다. 우회전략인 셈이다. 하지만 알리바이로 해결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 국민의당에 사달이 났다. 이른바 문재인 대통령 아들의 특혜채용 의혹에 관한 증거가 허위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은 6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월 5일 준용 씨의 미국 대학 파슨스스쿨 동료의 증언을 근거로 고용정보원 인사와 관련해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발표했는데, 당에 제보된 카카오톡 캡처와 화면 및 녹음파일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당으로서 책임을 느낀다. 준용 씨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개 숙였다. 대선일에 다다를 즈음 국민의당은 해당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파상공세를 펼쳤고, 더불어민주당은 이 증거가 거짓이라며 검찰에 고발했다.
현재 실무자들이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국민의 관심은 당 차원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는지에 쏠렸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박 비대위장은 6월 28일 “만일 당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면 당을 해체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뿐 아니다. 국민의당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은 페이스북에 ‘내가 조작 음모에 가담했다면 목을 내놓겠다’고 했다. 국민의당 최고 관계자들이 연이어 당과 개인의 최후(?)까지 언급하면서 배수진을 쳤다. 국민의당과 관계자들이 이 사안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알고 있다는 징표다.
대선은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국가원수이자 군통수권자를 뽑는 중차대한 국가적 이벤트다. 상대 후보의 이념 및 정책 공약, 경력, 인격, 나아가 가족사까지 철저히 검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후보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나라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직접 체험하지 않았나. 그런 까닭에 대선후보와 관련한 각종 의혹 제기는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허용된다(단, 정도를 넘어서면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비방이 돼 처벌받는다). 그래도 허위나 조작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길지 않은 선거 기간에 터무니없는 허위사실을 공포해버리면 상대방은 이를 방어할 방법도, 기회도 없게 된다. ‘부재의 증명’을 찾아 수렁에서 헤어 나올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국민의당이 조작된 증거를 공포한 것이 대선 나흘 전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후보 측의 반격 기회를 차단해 막판에 판세를 흔들려는 의도가 숨겨졌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자들은 만에 하나 작전이 성공한다면 허위 증거 조작 건을 묻어버릴 수 있으리라 자신했을지도 모른다. 또 정권을 잡으면 최소한 집권 기간이라도 검찰과 경찰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을 수도 있다. 이회창 대선후보의 아들 병역 면제 의혹 폭로는 사실상 거짓으로 드러났고 BBK 사건의 진실, 국가정보원과 군의 대선 개입 의혹 등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증거다. 잘못된 사인을 준 셈이다. 더는 헛된 믿음이 발붙이게 해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에 대선 기간 중 제기된 의혹은 끝까지 밝혀야 하고, 공직선거법 위반에는 관용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이를 입증하는 것이 정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