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시행하는 예방접종 후 장애가 발생한 경우 예방접종 이후 일정 기간 내 장애가 나타난 사실만 증명하면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원고는 1998년 7월쯤 경기 파주보건소에서 DTaP 예방접종을 하고, 그다음 날 복합부분발작 증세를 보여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그 후 발작 증세가 악화해 2008년 1월쯤 난치성간질 등 후유장애로 종합장애등급 1등급 판정을 받기에 이른다. 예방접종 후 졸지에 장애인이 된 원고는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예방접종 피해보상액으로 장애일시보상금을 신청했지만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위임받은 질병관리본부장이 2008년 12월 30일 난치성간질과 백신 사이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보상금 지급을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이 사건의 쟁점은 먼저 예방접종으로 장애가 발생했다는 인과관계에 대한 증명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있다. 즉 피해자가 자신의 장애가 예방접종 때문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부가 예방접종과 피해자가 입은 장애 사이에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지 문제다. 다음으로는 옛 ‘전염병예방법’(현행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한 예방접종으로 생긴 장애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가 해당 행정청의 재량에 맡겨진 것인지에 대한 다툼이었다.
대법원은 결국 원고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이 사건의 판결을 통해 아주 중요한 선언을 했다. 먼저 예방접종 피해에 대한 국가의 보상책임은 법률이 특별히 인정한 독자적인 피해보상제도임을 지적했다. 즉 이러한 책임은 예방접종의 사회적 유용성과 이에 따른 국가적 차원의 권장 필요성, 예방접종에 의한 부작용이라는 사회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손해에 대한 사회보장적 이념 등에 비춰 “꼭 필요한 것”이라고 봤다.
먼저 입증책임에 대해선 예방접종 부작용으로 사망까지 이를 가능성이 있는 반면, 예방접종으로 장애 등이 발생하는 이유는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고 현재의 의학 수준에 의하더라도 부작용을 완전히 방지할 수 없다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보상을 받으려면 반드시 피해자가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하는 게 아니라, 예방접종 전에는 증상이 없던 피해자에게 예방접종 이후 일정 기간 내에 장애가 나타난 사실만 증명하면 사실상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또 예방접종 피해에 대한 보상은 행정청의 재량 행위라고 볼 수 있기는 하지만, 법률 취지를 고려하면 실질은 피해자의 특별한 희생에 대한 보상에 가깝다고 할 것이므로, 보건복지부 장관은 너무 엄격하게 그 요건을 따져 보상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이 판결은 신종인플루엔자(신종플루) 등 새로운 전염성 질환의 등장으로 예방접종의 필요성은 증가하는 반면 예방접종 피해는 현대의학으로도 100% 막을 수 없기에, 국민을 보호하는 정부의 책임을 중시해 심각한 피해에 대한 보상이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케 한다. 이번 판결은 국민 복지가 법원 판결에 의해서도 향상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줬다는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