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이 ‘꿈 같은 계획’에 민주노총·참여연대 등 23개 시민단체가 연합해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5월29일 성명서를 발표해 “정부는 전자 건강보험증 계획을 즉각 중단하고 허위·부당 청구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했다. 반대 논리의 골자는 개인정보 유출 우려와 부당청구 방지의 실효성 문제. 먼저 개인정보 부분에 대한 지적은 행정자치부가 도입을 추진하다 지난 98년 여론의 반대로 무산된 전자주민등록증에 대한 비판과 같은 맥락이다. 보건복지민중연대의 강동진 위원은 “개인의 건강정보가 담긴 카드를 다른 사람에게 유출할 경우의 피해는 전자주민증보다 훨씬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카드를 도둑맞는 경우는 물론, 정보를 모아둔 중앙 서버가 해킹당할 때의 혼란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 지난 4월19일 국회 보건복지위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논의한 바 있다.

시민단체의 이같은 문제 제기에도 “이미 시행하기로 했으므로 계속 진행한다”는 복지부의 기본 방침은 변함이 없다. 구체적인 방안이나 사업형태는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향후 진행과정에서 문제점을 최소화하겠다는 것. 현재까지 확정한 것은 정부 예산을 쓰지 않고 민간자본을 끌어들인다는 정도일 뿐이라고 담당자는 거듭 강조했다. 김장관이 발표한 내용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다. 한편 시민단체측은 기본사항조차 검토하지 않고 섣불리 사업시행을 발표한 당국의 무성의에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일부 단체에서 “무조건 앞서나가는 업계의 전략에 정부 실무자가 끌려가는 형국”이라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 예산을 사용하지 않고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기로 하면서 복지부가 내건 ‘당근’은 신용카드사와의 연계. 계획대로 보험카드를 신용카드와 연계할 경우, 3027만 피보험자는 신용카드에도 가입해야 하며 피부양자 역시 상당수가 따로 개인카드를 발급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유료·무료 여부를 아직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이 경우 신용카드 발급비용과 연회비는 고스란히 가입자의 부담이 될 전망. 한 업체의 내부 추산자료에 따르면 2700만 명 규모의 어마어마한 신규시장이 별도의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형성된다.
또한 연간 보험급여를 15조 내외로, 수수료를 2.86%(현재 국내업체들의 카드 수수료)로 상정하면 연간 4300억 원 이상의 수입이 카드사에 돌아간다. 수수료율과 환자의 카드 사용비율은 유동적이지만 카드와 판독기 보급, 네트워크 구축 등에 드는 비용이 4000억~1조 원 사이라는 추산이고 보면 업체들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도 당연지사. 복지부의 발표 다음날인 4월16일, 스마트카드 및 병원 네트워크 전문기업의 주식은 ‘의보카드 수혜주’라는 새로운 테마를 형성하며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는 씨엔씨엔터프라이즈 중심의 건강보험시스템(HIS)과 삼성SDS 주도의 한국건강카드(KHC) 등 모두 5~6개 컨소시엄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을 확정하기도 전인 2월에 이미 이루어진 주요 컨소시엄은 4월부터 복지부 장관과 담당자 앞에서 사업설명회를 가진 바 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사업 진행의 앞뒤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업계의 ‘열광에 가까운 호응’과 정치인 출신 장관의 ‘성급한 업적지상주의’가 겹쳐 나타난 혼란이라는 것. 최소한 6월 말 결과가 나오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타당성 검토 용역을 지켜본 뒤 사업시행을 공표해 업체들과 접촉해야 했다는 지적이다.
업계 호응, 장관 업적주의 맞물려?

좌초한 행정자치부의 전자주민등록증 사업 준비에 들어간 예산은 300억 원 정도였다. 지난 99년 정부가 서둘러 추진한 플라스틱 주민등록증 갱신은 예산이 사장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 철저한 사전준비 없이 인권단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하는 ‘건강보험증 스마트카드화 사업’은 과연 전자주민증의 전철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또 다른 시행착오의 반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