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경찰청 통계, “특가법(운전자 폭행)으로 입건된 2471명에 대해 기소의견”
단순 폭행은 36% 기소 의견…“블랙박스 없는 이 차관 사건, CCTV로 재확인해야”
출처: 경찰청 경찰범죄통계(2019)
이 차관은 변호사로 지냈던 11월 6일 자택인 서울 서초구 서초동 아파트 앞에서 자신을 태운 택시 기사를 술에 취해 멱살을 잡는 등 폭행했다. 택시 기사의 신고로 출동한 서울 서초파출소 경찰들은 당초 이 차관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운행 중 운전자 폭행 혐의로 보고했지만 이후 서초경찰서에서 형법상 단순 폭행 사건으로 처리했다. 폭행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검경이 처벌하지 않는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에 택시 운전사가 처벌 불원서를 제출하면서 이 사건은 내사 종결됐다.
하지만 22일 사건 발생 당일 택시기사가 “도착할 때 즈음 목 부위를 잡았다”고 진술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특가법이 적용될 확률이 높아졌다. 당초 진술대로라면 이 차관이 운전 중인 기사를 폭행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에 해당한다. 택시기사는 사흘 뒤 경찰에 출두해 “목적지에 도착한 뒤 멱살을 잡았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과 단순폭행죄는 처벌 수위에서 큰 차이
시민단체들은 경찰이 이 차관에게 단순 폭행죄를 적용해 사건을 조기 종결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는 19일 대검찰청에 특가법 위반 혐의로 이 차관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했다. 사법시험준비생모임도 이날 같은 내용으로 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법세련은 다음날 대검에 사건담당자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특가법상 운전자 폭행과 단순폭행죄는 처벌 수위에서 차이가 크다. 특가법을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반면 단순 폭행의 경우 형법 제260조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입건 이후 사건 처리 양상에서도 차이는 두드러진다.
경찰청 ‘경찰범죄 통계’는 특가법 적용 여부에 따른 처벌 수준의 차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타 교통수단 내(지하철 제외 교통수단)에서 4149건의 폭력범죄가 발생했다. 이 중 특가법에서 규정한 운전자 폭행 혐의로 검거된 사람은 2703명. 매일 7.4명꼴로 운전자 폭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운전자 폭행으로 검거된 피의자 중 91.4%가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됐다. 운전자 폭행으로 입건되면 열에 아홉 기소의견으로 검찰로 송치되는 셈이다. 이 차관은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국가 형벌권 행사에서의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다.
운전자 폭행 혐의로 입건된 피의자 중 경찰이 불기소의견으로 송치한 경우는 231명으로 전체 피의자의 8.5%에 불과하다. 경찰의 불기소 의견 유형을 보면 △혐의없음(77.5%) △공소권없음(15.2%) △기소중지(5.6%) 등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단순히 ‘시동이 꺼졌다’ 등의 이유로 불기소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사건 개개마다 상황을 고려해 판단해 어떠한 경우에 해당 판단이 내려지는지 일괄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청 통계에서 단순 폭행 사건은 피의자의 36.3%만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됐다. 이 폭행죄의 경우 이 차관의 사례처럼 피의자와의 합의로 사건이 종결되기도 했다. 경찰청 통계도 특가법 적용 유무에 따른 처벌 강도의 현격한 차이를 보여준다.
이 차관에 대한 내사 종결을 두고 경찰은 2008년의 대법원 판례를 처분 근거로 제시했다. 당시 대법원은 ‘공중의 교통안전과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없는 장소에서 계속적인 운행의 의사 없이 자동차를 주 정차한 경우’에는 ‘운행 중’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차관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던 12월 21일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피해자가 목적지인 아파트에 도착했고 정차 중인 상태였고 (차안에서) 멱살을 잡히긴 했지만 다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아파트 앞은 교통안전과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장소가 아니라 보고 폭행 혐의로 판단했다”며 “경찰 역시 수사기관이다. 내사 관련 규칙에서도 수사개시의 필요성이 없으면 내사 종결을 할 수 있도록 돼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른바 ‘조국흑서’(원 제목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의 공동 저자인 권경애 변호사는 22일 페이스북에서 ‘혐의가 확인되지 않았다라는 해명이라면 모를까. 단순폭행죄로 판단해서 내사종결 처리를 했다’며 ‘반의사불벌죄에서 처벌불원의 의사가 확인되면 공소권 없음의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할 일이지, 내사종결 처리할 사안이 아니다. (경찰의) 말이 꼬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폭행죄는 여타 범죄와 마찬가지로 경찰이 ‘공소권없음’ 의견으로 송치하면 검찰에서 대다수가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된다. 지난해 경찰청 통계의 경우 경찰은 폭행죄 피의자의 86.9%에 대해 이 같은 조치를 내렸다.
“특가법 개정 이전의 대법원 판례도 인용된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21일 “경찰이 이 차관에게 반의사불벌죄 규정을 적용해 내사 종결한 것에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 전인 2008년 대법원 판례와 2015년 헌재 결정례를 근거로 제시한 것은 법무차관 수사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라며 “친문무죄, 비문유죄의 편파적 수사는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그렇지만 교통사고 전문가들과 변호사들은 “법 개정 이전의 판례를 근거로 제시했다”는 비판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한다. 당시 특가법 개정 취지는 ‘운행 중’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명확히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경일 교통사고 전문변호사(법무법인 엘앤엘)는 “2008년의 대법원 판례는 지금도 재판에서 원용된다. 2015년도의 법 개정 취지도 처벌 범위의 확대가 아니다”며 “법원은 여전히 운전자 폭행에 대한 예외 상황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차가 차고지에 도착한 후, 시동을 끄고 운전자가 내린 상태로 해당 사건이 발생했다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택시는 손님을 내린 후 다시 출발한다. 시동이 걸린 상태에서 폭행을 당 하면 브레이크를 놓치거나 핸들이 돌아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블랙박스를 확인해야 하는데 영상이 없다고 말하는 상황이다. CCTV 영상 등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여러 자료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와 별도로 ‘운행도중 이 차관이 택시기사의 목덜미를 잡았다’는 의혹이 검찰 수사에서 인정되면 이 차관에 대한 특가법 적용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특가법상 ‘계속적인 운행의 의사’에 대해서는 지난 달 헌법재판소가 관련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11월 26일 특가법 관련 위헌소원 심판에서 “여객의 승ㆍ하차 등을 위한 일시정차의 경우’에 대해 ’일반적으로 계속적인 운행이 예정되어 있어 운전자에 대한 폭행ㆍ협박이 발생하면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대중교통에서의 하차를 위한 일시 정차도 “계속적인 운행이 예정됐다”고 본 것이다.
한 요건이 충족되지 않더라도 다툼의 여지는 있다. 이 변호사는 “물론 운전자 폭행 사안이 특가법 적용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두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통상적인 판례나 실무 처리 과정을 봤을 때 두 요건 중 한 가지 요건만 충족해도 동일한 효과를 달성할 수 있어, 운전 중 상황에 대한 예외로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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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최진렬 기자입니다. 산업계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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