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노 한국플라스틱리싸이클링공제조합 초대 이사장. [지호영 기자]
11월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만난 이 전 이사장은 현행 플라스틱 재활용 제도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폐플라스틱 재활용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데도, 사업 주체인 정부가 사업 전략은 물론 홍보까지 소극적인 모습만 보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전 이사장은 “(폐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로 자기 주머니에서 돈 나가는 사람이야말로 재활용 사업의 적임자”라며 “정부 대신 기업이 재활용 문제를 이끌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이사장에게 폐플라스틱 재활용 해법에 대해 들었다.
재활용 효자 산업, 폐플라스틱
-언택트 산업이 커지면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생산기업에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는 추세다.“폐플라스틱 처리를 위한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는 처음에는 민간에서 도맡아 했다. 당시 고(故) 성재갑 한국석유화학협회장, 김명자 당시 환경부 장관 등 관련 인사들의 논의를 거쳐 한국플라스틱리싸이클링협회가 만들어졌고, 이후 내가 한국리싸이클링공제조합 초대 이사장을 맡아 운영했다.”
-초창기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운영은 순탄했나.
“당시 길거리에는 플라스틱 조각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폐플라스틱 수거가 활발했다.”
-그 비결이 뭔가?
“플라스틱 원료를 생산하는 석유화학협회에서 100억 원을 출자하고, 그 돈을 기업은행에 맡겨 폐플라스틱 재활용수집업자나 플레이크(세척 후 파쇄한 플라스틱 조각) 제조업자에게 무이자로 자본금을 대출해줬다. 자본금이 충분치 않아도 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에 뛰어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 것이다. 폐플라스틱을 수거하는 사업이 ‘돈’이 되도록 지원해준 것이다.”
-과거에는 플라스틱 재활용은 원활히 이뤄졌나.
“플라스틱 재활용 방식은 크게 3가지가 있다. 첫째는 머터리얼 리사이클(material recycle)로 플라스틱 제품을 다시 재활용해서 제품 원료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둘째는 플라스틱을 고형화 연료로 만들어 소비재로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셋째는 폐플라스틱을 활용해 다시 석유를 만드는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첫째 방식 밖에 하지 못했다. 그래서 (2002년 12월) 경기도 안성시에 고형화 연료 시범단지를 만들었다. 이후 정부와의 협업을 통해 시멘트 공장에서 해당 기술을 사용하도록 이끌어냈다.”
시멘트 산업은 지금도 폐플라스틱 재활용에 있어 효자 산업으로 꼽힌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시멘트 업계가 재활용한 폐플라스틱은 약 100만 톤이다. 하지만 상황을 낙관하기는 이르다. 이 이사장은 “현행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는 아쉬운 점이 많다”며 “정부에서는 폐플라스틱 재활용 목표를 정고, 구체적인 달성 방법은 기업이 머리를 짜내 실현하도록 해야 하는데, 지금은 관(官) 주도로 관련 사업이 이뤄지면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생산자책임제도의 어떤 부분이 문제인가.
“기업에서 주도적으로 재활용 방안을 강구하도록 해야 한다. 즉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생할수록 제품을 만든 기업들이 수거에 대한 부담을 지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누구보다 절실하게 쓰레기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려고 나설 것이다. 제품 연구·개발은 물론 재활용 처리 방법까지 여러 방안이 있을 텐데, 관에서 주도하는 것보다는 기업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민간에서 정부로 넘어간 재활용사업
4월 14일 서울 송파자원순환공원 내 재활용쓰레기 분류 작업장에 폐플라스틱 등이 분류되지 않은 상태로 쌓여있다. [최진렬 기자]
생산자책임제도가 처음 도입된 2003년에는 △플라스틱 △페트병 △캔 △유리병 △종이팩 △스티로폼 6개 분야로 구분돼 있었지만 2013년 이들 공제조합을 통합,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이 출범했다. 효율적인 재활용이 사업 통합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 전 이사장은 “그 과정에서 사업의 주도권이 민간에서 정부로 넘어갔다”고 지적했다.
-현재 생산자책임제도를 담당하는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역시 민간 영역에 속하지 않나. 많은 민간 기업 대표가 이사로 참여한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퇴직 공무원을 위한 조직으로 변질돼 있다. 환경부 출신 공직자들이 퇴임 후 조합 이사장 자리를 맡는 낙하산 자리가 된 것이다. 쓰레기 문제로 직접적인 손해를 입는 기업인이 조직을 맡아 운용하는 것과 임기를 채운 후 떠나는 퇴직 공무원이 조직의 수장을 맡는 것에는 책임의식 측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재활용 모범국인 독일에서 DSD사 등 민간을 통해 폐플라스틱 재활용산업이 굴러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생산자책임이라는 제도 이름과 동떨어진 반쪽짜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반쪽은 무슨, 지금은 하나도 책임 지지 않는 방식이 되고 말았다. 생산자재활용책임 제도라는 용어는 정확하지 않다. 하나의 플라스틱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 다양한 업체가 참여한다. 현재의 제도는 ‘최종’생산자책임제도라는 용어가 더 정확하다. 포장재 등 최종 제품을 생산한 사람이 재활용의무를 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행 방식은 문제가 많다.”
-어떤 문제가 있나.
“플라스틱 제품 최종생산자의 규모와 종류는 다양하다. 대체로 중소기업이 여기에 속하는데 생산하는 품목이 다르다보니 어떤 기업은 부담금을 부과하고 어떤 기업은 부과하지 않는 형평의 문제가 발생한다. 또 사업체의 규모가 작으면 재활용 의무를 면제해주기 때문에 관련 제도에 구멍이 생기기도 한다. 초창기 정부가 업계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예외 사항을 만들며 제도를 이렇게 설계한 것인데 올바른 방식은 아니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14개 업종에서 제품·포장재의 재활용의무 면제 대상 사업장의 업종 및 규모를 지정했다. 대부분의 경우 ‘전년도 연간 매출액이 10억 원 미만인 제조업자 또는 전년도 연간 수입액이 3억 원 미만인 수입업자’가 면제 대상이다. 이 전 이사장은 “소규모 생산 업체가 많은 플라스틱 업계의 경우 재활용의무 면제 사업장이 많아 여기 저기 구멍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 어떤 방식이 바람직한가.
“플라스틱 원료 생산자에게 재활용 의무를 부과하면 폐플라스틱 재활용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있다. 대기업들로 구성된 플라스틱 원료생산자에게 재활용 문제를 책임지도록 할 경우 연구·개발은 물론 폐플라스틱 재활용에 대한 홍보까지 다방면에서 지금보다 나은 방식으로 재활용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고형화 원료를 걱정한다. 사용 과정에서 유독물질이 발생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고형화 연료를 1300도 이상으로 가열해 사용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플라스틱 원료를 생산하는 기업에게 폐플라스틱 재활용 책임을 지우면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 그 해법을 반드시 내놓을 것이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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