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정이가 구속됐으면 됐지, 더 이상 희생은 없었으면 좋겠다.”
김태정 전 법무장관은 요즘 구속 당시의 격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한결 차분한 심정을 갖고 있다고 그의 변호인인 임운희변호사가 전했다. 김전장관은 구속후 부인 연정희씨와 임변호사를 제외하고는 외부인사의 면회를 일절 거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전장관은 임변호사 등에게 자신의 구속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됐으면 한다는 심정을 토로하고 박주선전비서관에게 미안하다는 얘기를 자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구속될 때만 해도 자신의 구속이 ‘여론 잠재우기’ 차원에서 결정된 것이라고 생각한 듯 “로비를 시도했던 사람은 건재하고, 로비를 차단하고 구속을 결정한 사람이 감옥에 가야 한단 말이냐”고 반발했었다.
‘이형자 음모론’ 강하게 제기
그는 구속되기 1개월 전쯤인 10월말 한 사석에서 옷사건과 관련한 언론과 정치권의 움직임에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었다고 한다. 폭탄주가 몇 잔 돈 뒤 그는 ‘애처가’답게 부인 연정희씨 걱정부터 했다는 것.
“마누라가 자살하겠다고 해서 미치겠다. 마누라 달래야지, 말도 안되는 지엽말단적인 옷사건 해명해야지, 정말 미치겠다. 하도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아 한번은 미사리에 가서 펑펑 울었다.”
소위 ‘이형자 음모론’도 강하게 제기했다.
“세간에서는 내가 최순영전회장과 같은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로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솔직히 최순영은 내가 법무차관 시절까지 교회에서 만나도 나를 제대로 아는 체 하지도 않았다. 재벌 회장이라고 목에 힘주는 꼴이 정말 싫었다. 솔직히 내 마누라도 검사 부인 노릇하면서 받아서는 안될 게 무엇인지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는 눈치는 있다. 그런 사람이 이형자에게 옷을 받고 싶었다면 아무도 몰래 조용히 받지, 어떻게 옷을 외상으로 구입해놓은 다음 옷값 내놓으라고 떠들고 다닐 수 있겠느냐. 한번 생각해보라. 특별수사 결과 옷 로비 의혹은 이형자의 시나리오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드러나게 돼 있다. 이형자 입장에서는 나를 죽여야 자기 남편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겠느냐?”
그는 여론이 그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얘기하자 갑자기 이회창 한나라당총재를 겨냥해 독설을 퍼부었다.
“특검 결과가 발표된 후에도 야당이나 언론에서 계속 의혹을 제기하면 딱 한마디만 말하고 싶다. ‘한나라당 이회창총재가 특별검사로 나서서 옷사건을 다시 수사하면 수사받을 용의가 있다. 이총재도 대법관을 역임한 분이니 특별검사 자격이 충분히 있는 분 아닌가’라고.”
그는 또 “정치는 하고 싶지 않지만 이회창총재와 한번 붙어볼 생각은 있다”는 말도 하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세풍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에 있는 이석희전국세청차장과 직접 통화도 했다. 내가 부산지검장 할 때 이석희차장이 부산지방국세청장을 했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다. ‘석희야, 내가 총장으로 있을 때 들어오는 게 너한테도 좋지 않겠냐. 그러니 빨리 돌아와라’라고 설득해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그런데 얼마후 갑자기 돌아오지 않겠다는 얘기를 한다고 들었다. 한나라당 쪽 사람들이 들어오지 말라고 설득하지 않았겠나?”
김중권 당시 청와대비서실장에 대한 섭섭한 감정도 털어놓았다. 그 중 ‘5·24’개각 직전의 얘기 한 토막. “김실장이 5월22일에 전화를 해 갑자기 ‘김장관님’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장관님, 제가 장관에 추천했습니다. 저는 김장관님의 팬입니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뒤에 옷사건이 문제되자 기자들에게 ‘김태정은 내가 추천하지 않았다’고 발을 뺐다.”
옷사건이 불거진 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자신의 억울함을 해명했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솔직히 장관 좀 오래하고 싶어 열심히 뛰었다.”
장관에서 물러난 뒤의 생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해외에는 나갈 수 없어 지방에 많이 다녔다. 그런데 나를 알아보고 사인해 달라는 사람들이 많더라. 안흥찐방집에 갔더니 영광이라면서 오히려 빵을 더 주더라. 또 집 근처에서 조깅을 해도 여자들이 ‘힘내세요’라고 격려하더라. 이들은 집사람은 밉지만 나를 사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
알려진 대로 그는 김영삼전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에 힘입어 97년 8월 호남 출신으로는 최초로 검찰총장에 올랐다. 김영삼전대통령은 김전장관과 단 둘이 있을 때는 그를 “태정아”라고 부를 정도였다는 것. 다음은 김전장관이 털어놓은 97년 8월 총장 임명 당시의 비화.
“검찰총장 임명을 앞두고 김영삼전대통령이 청와대로 불러 들어갔더니 나를 보자마자 ‘니, 내일 아침 8시30분 무렵에 차를 타고 청와대 주변을 돌고 있어라. 그러다 내가 전화하면 얼른 달려와서 임명장을 받아가거라’라고 총장 임명 사실을 통보해주었다.”
김전장관은 또 97년 대선 당시 김대중후보 비자금 사건 수사 유보 결정을 내린 것도 나름대로 감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한나라당이 ‘DJ 비자금’을 고발한 후 김영삼전대통령이 청와대로 불러 들어갔더니 김전대통령이 뭘 읽고 있다가 ‘태정아, 이거 한번 읽어봐’하면서 보던 것을 건네주었다. 국회 속기록이었다. 그런데 그 속기록은 박정희정권 당시 김영삼전대통령이 국회에서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를 상대로 김대중대통령의 도쿄 납치사건 의혹을 해명하라고 따지는 부분이었다. 내가 그걸 읽고 ‘역사의 아이러니군요’라고 말했더니 김전대통령이 ‘그렇제, 아이러니제’라고 답했다. 내가 비자금 사건 수사를 유보한 것은 김전대통령의 이런 뜻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는 김영삼전대통령과 김대중대통령이 손을 잡아야 국정이 안정된다는 견해도 밝혔다.
“김대중대통령당선자 시절 두 번 만났는데, 한번은 ‘김영삼전대통령의 부탁도 있고 하니 김현철을 사면해주어야 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고 물으셔서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고 대답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당분간 여행이나 하며 지내고 싶다는 소박한 꿈도 털어놓았다. 하지만 구속으로 그같은 소박한 꿈도 접어야 했다.
김태정 전 법무장관은 요즘 구속 당시의 격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한결 차분한 심정을 갖고 있다고 그의 변호인인 임운희변호사가 전했다. 김전장관은 구속후 부인 연정희씨와 임변호사를 제외하고는 외부인사의 면회를 일절 거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전장관은 임변호사 등에게 자신의 구속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됐으면 한다는 심정을 토로하고 박주선전비서관에게 미안하다는 얘기를 자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구속될 때만 해도 자신의 구속이 ‘여론 잠재우기’ 차원에서 결정된 것이라고 생각한 듯 “로비를 시도했던 사람은 건재하고, 로비를 차단하고 구속을 결정한 사람이 감옥에 가야 한단 말이냐”고 반발했었다.
‘이형자 음모론’ 강하게 제기
그는 구속되기 1개월 전쯤인 10월말 한 사석에서 옷사건과 관련한 언론과 정치권의 움직임에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었다고 한다. 폭탄주가 몇 잔 돈 뒤 그는 ‘애처가’답게 부인 연정희씨 걱정부터 했다는 것.
“마누라가 자살하겠다고 해서 미치겠다. 마누라 달래야지, 말도 안되는 지엽말단적인 옷사건 해명해야지, 정말 미치겠다. 하도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아 한번은 미사리에 가서 펑펑 울었다.”
소위 ‘이형자 음모론’도 강하게 제기했다.
“세간에서는 내가 최순영전회장과 같은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로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솔직히 최순영은 내가 법무차관 시절까지 교회에서 만나도 나를 제대로 아는 체 하지도 않았다. 재벌 회장이라고 목에 힘주는 꼴이 정말 싫었다. 솔직히 내 마누라도 검사 부인 노릇하면서 받아서는 안될 게 무엇인지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는 눈치는 있다. 그런 사람이 이형자에게 옷을 받고 싶었다면 아무도 몰래 조용히 받지, 어떻게 옷을 외상으로 구입해놓은 다음 옷값 내놓으라고 떠들고 다닐 수 있겠느냐. 한번 생각해보라. 특별수사 결과 옷 로비 의혹은 이형자의 시나리오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드러나게 돼 있다. 이형자 입장에서는 나를 죽여야 자기 남편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겠느냐?”
그는 여론이 그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얘기하자 갑자기 이회창 한나라당총재를 겨냥해 독설을 퍼부었다.
“특검 결과가 발표된 후에도 야당이나 언론에서 계속 의혹을 제기하면 딱 한마디만 말하고 싶다. ‘한나라당 이회창총재가 특별검사로 나서서 옷사건을 다시 수사하면 수사받을 용의가 있다. 이총재도 대법관을 역임한 분이니 특별검사 자격이 충분히 있는 분 아닌가’라고.”
그는 또 “정치는 하고 싶지 않지만 이회창총재와 한번 붙어볼 생각은 있다”는 말도 하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세풍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에 있는 이석희전국세청차장과 직접 통화도 했다. 내가 부산지검장 할 때 이석희차장이 부산지방국세청장을 했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다. ‘석희야, 내가 총장으로 있을 때 들어오는 게 너한테도 좋지 않겠냐. 그러니 빨리 돌아와라’라고 설득해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그런데 얼마후 갑자기 돌아오지 않겠다는 얘기를 한다고 들었다. 한나라당 쪽 사람들이 들어오지 말라고 설득하지 않았겠나?”
김중권 당시 청와대비서실장에 대한 섭섭한 감정도 털어놓았다. 그 중 ‘5·24’개각 직전의 얘기 한 토막. “김실장이 5월22일에 전화를 해 갑자기 ‘김장관님’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장관님, 제가 장관에 추천했습니다. 저는 김장관님의 팬입니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뒤에 옷사건이 문제되자 기자들에게 ‘김태정은 내가 추천하지 않았다’고 발을 뺐다.”
옷사건이 불거진 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자신의 억울함을 해명했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솔직히 장관 좀 오래하고 싶어 열심히 뛰었다.”
장관에서 물러난 뒤의 생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해외에는 나갈 수 없어 지방에 많이 다녔다. 그런데 나를 알아보고 사인해 달라는 사람들이 많더라. 안흥찐방집에 갔더니 영광이라면서 오히려 빵을 더 주더라. 또 집 근처에서 조깅을 해도 여자들이 ‘힘내세요’라고 격려하더라. 이들은 집사람은 밉지만 나를 사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
알려진 대로 그는 김영삼전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에 힘입어 97년 8월 호남 출신으로는 최초로 검찰총장에 올랐다. 김영삼전대통령은 김전장관과 단 둘이 있을 때는 그를 “태정아”라고 부를 정도였다는 것. 다음은 김전장관이 털어놓은 97년 8월 총장 임명 당시의 비화.
“검찰총장 임명을 앞두고 김영삼전대통령이 청와대로 불러 들어갔더니 나를 보자마자 ‘니, 내일 아침 8시30분 무렵에 차를 타고 청와대 주변을 돌고 있어라. 그러다 내가 전화하면 얼른 달려와서 임명장을 받아가거라’라고 총장 임명 사실을 통보해주었다.”
김전장관은 또 97년 대선 당시 김대중후보 비자금 사건 수사 유보 결정을 내린 것도 나름대로 감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한나라당이 ‘DJ 비자금’을 고발한 후 김영삼전대통령이 청와대로 불러 들어갔더니 김전대통령이 뭘 읽고 있다가 ‘태정아, 이거 한번 읽어봐’하면서 보던 것을 건네주었다. 국회 속기록이었다. 그런데 그 속기록은 박정희정권 당시 김영삼전대통령이 국회에서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를 상대로 김대중대통령의 도쿄 납치사건 의혹을 해명하라고 따지는 부분이었다. 내가 그걸 읽고 ‘역사의 아이러니군요’라고 말했더니 김전대통령이 ‘그렇제, 아이러니제’라고 답했다. 내가 비자금 사건 수사를 유보한 것은 김전대통령의 이런 뜻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는 김영삼전대통령과 김대중대통령이 손을 잡아야 국정이 안정된다는 견해도 밝혔다.
“김대중대통령당선자 시절 두 번 만났는데, 한번은 ‘김영삼전대통령의 부탁도 있고 하니 김현철을 사면해주어야 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고 물으셔서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고 대답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당분간 여행이나 하며 지내고 싶다는 소박한 꿈도 털어놓았다. 하지만 구속으로 그같은 소박한 꿈도 접어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