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서 양육비해결모임 대표. 박해윤 기자]
기자가 받아든 고소장에 적힌 고소인은 주민등록번호가 0으로 시작하는 중학생 A군이었다. 고소 상대는 양육 의무를 저버린 자신의 아버지. 한창 학교에 다니며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나이에 어쩌다 이 학생은 아버지를 상대로 고소장을 내게 된 걸까. 학생의 고소를 돕고 있는 비영리단체 ‘양육비해결모임’(양해모)의 강민서 대표를 7월 13일 경기 김포시 사무실에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홈페이지에 불량 부모 신상 공개
2018년 9월 만들어진 양해모는 회원 5000여 명이 가입한 단체로,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아동학대 처벌과 신상 공개 등을 요구하는 단체다. 2018년 11월부터 전국을 돌며 ‘나쁜 엄마, 아빠 사진전’을 15차례 개최하고 국민 서명을 받으며 사회 인식 변화에도 힘쓰고 있다. 2019년 2월에는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의 생존권인 기본권 침해’라며 첫 양육비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냈다.인터뷰 도중에도 강 대표의 휴대전화는 수시로 울렸다. 양육비를 받길 간절히 원하는 부모의 문의전화가 밤낮 가리지 않고 걸려온다고 했다. 강 대표는 자신의 휴대전화번호를 네이버 카페 ‘양육비해결모임’ 최상단에 공개해놓았다. 그는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고통받는 부모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언제든 기댈 수 있고 열려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인터뷰가 끝나면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학생의 아버지와 통화해 양육비 지급을 독려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학생에 따르면 9세 때 아버지가 가출했다고 해요.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도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면 위축되곤 했대요.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16세 연하와 재혼하고 심지어 애도 낳은 사실을 알게 된 거예요. 자신의 집에서는 아버지 역할 하기를 거부하고 나간 사람이 새 가정을 꾸린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해요. 한번은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갔는데 주거 침입으로 고소당했대요. 이후 이 학생이 인터넷을 검색해 아동복지법을 찾아보고, 단순히 신체적 학대뿐 아니라 양육비를 주지 않는 것도 정신적 아동학대라고 생각해 고소장을 쓰게 된 거예요.”
‘아동복지법’ 제3조에 따르면 ‘보호자’는 친권자, 후견인, 아동을 보호·양육·교육하거나 그러한 의무가 있는 자 또는 업무·고용 등의 관계로 사실상 아동을 보호·감독하는 자를 말한다. 또한 ‘아동학대’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 또는 가혹 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을 이른다. 제17조 5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강 대표는 “이혼이나 별거를 하더라도 아이를 지키는 건 양육자와 피양육자를 떠나 부모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양해모는 양육비를 장기간 지급하지 않는 부모들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배드페어런츠’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7월 13일 기준으로 홈페이지에 사진과 이름이 공개된 이들은 총 23명. 면면을 살펴보니 TV에도 여러 차례 출연한 사람부터 일반인까지 직업과 연령대가 다양했다. 신상을 공개하다 보니 이와 관련된 문제도 불거졌지만, 강 대표는 “이렇게 해서라도 양육비를 받을 수 있다면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강 대표는 한 피양육자와 관련 내용으로 재판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고소인은 전부인에게 양육비를 못 주겠다며 위장전입까지 했다. 홈페이지에 올린 내용이 정말로 문제가 있어 벌금이 나온다면 내고, 구치소에 가야 한다면 가겠다. 이렇게 해서라도 양육자가 양육비를 받고 사람들의 인식이 개선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감수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강 대표에 따르면 20여 년간 홀로 자녀 둘을 키우며 갖은 일을 하다 건강이 나빠진 한 여성이 병원 치료비와 아이들 학자금 대출로 신용불량자가 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강 대표는 양육비를 주지 않은 피양육자의 신상을 배드페어런츠 홈페이지에 공개했고, 이 남성은 홈페이지에 올라온 내용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며 그를 고소했다. 검찰이 강 대표를 기소해 벌금 1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렸으나 강 대표는 정식 재판을 청구한 상태다. 이 재판은 7월 16일 열린다.
양육비해결모임은 ‘배드페어런츠’ 홈페이지에 장기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의 신상정보를 공개한다. ‘배드페어런츠’의 첫 화면. [홈페이지 캡처]
양육비 달라고 하자 “친자 맞나”
강 대표가 물불 안 가리고 양육비를 받는 데 앞장서는 이유는 누구보다 그런 고통을 받는 부모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 역시 21년째 전남편을 상대로 양육비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아이가 돌이 되기 전 (전남편과) 헤어졌어요. 지금 그 아이가 성인이 됐는데 그동안 양육비 소송만 27번을 했죠. 처음에는 재판 결과가 나오면 양육비를 받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전남편은) 이행명령을 지키지 않고 양육비도 주지 않은 채 전화번호마저 바꾸고 잠적했죠. 나중에는 감치명령을 받아 감치(유치장 등 특정 장소에 가두는 조치)됐는데, 양육비 지급 없이 그냥 그 기간을 채우고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다시 처음부터 소송해야 해요. 아이 졸업식 때는 계좌번호까지 받아놓고 양육비를 주지 않았어요. 아예 줄 돈이 없으면 모를까, 지금도 고급 취미를 즐기며 잘살고 있습니다.”
그는 “소송하는 동안 신경이 곤두서고, 그 와중에도 아이는 계속 커갔다”며 “(전남편과) 소송을 수차례 진행하면서 비양육자가 이런 식으로 양육비 지급 의무를 지속해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한번은 그의 소재지를 찾아갔더니 ‘친자가 맞느냐’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더군요. 그러면 친자 검사를 하자고 하니 연락이 끊겼어요. 저 같은 피해자가 많으리라 생각해 인터넷 카페를 만든 게 양해모의 시작이죠. 법원 내부 지리를 외울 정도로 자주 드나들며 홀로 싸우다 보니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이렇게 힘들 때 누가 옆에서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저 같은 피해자가 있다면 그가 누구든 도와야겠다고 저 자신과 약속했어요.”
이후 강 대표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와 양육자 사이에서 소통의 중재자 역할을 하며 양육자와 아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양육비 미지급자들로부터) 협박도 많이 받았어요. 아마도 만만한 전배우자와 상대하다 누군가 둘 사이에 나선다는 사실이 싫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네가 뭔데 나서느냐, 사무실로 쫓아가겠다,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는데 제가 삭발도 하고 언론에 여러 차례 나온 이후로는 협박성 연락을 하는 분이 많이 줄었어요.”
정부가 양육비를 먼저 지급하고 이후 양육비를 보내지 않은 비양육자의 소득에서 원천징수하는 ‘양육비 대지급제도’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일 때 내놓은 공약이지만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당시 국회에도 관련 내용을 담은 법안이 제출돼 있었는데 20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모두 폐기됐다.
강 대표는 2019년 새해 첫날 청와대 앞에서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출국 금지와 운전면허 정지, 신상정보 공개 등의 조치를 요구하며 삭발을 감행했다. “당시 회원들이 응원 의미로 모자를 많이 보내줬다. 지금 머리가 그 후 1년 반가량 기른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회원 5000여 명이 가입한 네이버 카페 양육비해결모임. [홈페이지 캡처]
그깟 몇 푼? 아이의 생존권!
강 대표와 양해모는 지금까지 양육비 미지급 사례 100여 건을 해결했다. 양해모를 통해 양육비를 받아간 사람들이 활동에 다시 도움을 주기도 할까. 강 대표는 멋쩍게 웃으며 “생업이 바쁘다 보니 그런 분이 많지는 않지만, 앞으로는 도움을 주는 분도 늘어나길 바란다”며 “가정에서 아이를 잘 키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외국처럼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형사처분을 받고 수입원이 있다면 양육비가 1순위로 지출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인터뷰와 활동을 하다 보면 일부에서는 ‘양육비 그거 얼마나 된다고 악착같이 받아내려 하느냐’고 비난하기도 하는데, 이걸 개인 간 채무 문제로 보면 곤란해요. 못사는 사람만 받는 게 양육비가 아니거든요. 비양육자가 아이에게 지는 최소한의 책임인 거죠. 양육자가 잘산다고 해서 안 줘도 되는 돈이 아니라, 아이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을 명심하고 의무를 회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부모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고 아이를 나 몰라라 하는 부모들에게는 “언젠가 자식에게 꼭 진정한 사과를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양해모는 상처받은 양육자와 아이들을 위한 마음 치유 프로그램을 소규모로 진행하고 있는데, 강 대표는 이를 확대해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제 와 사과한다고 해서 아이와 양육자가 상처받은 지난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면 최소한 부끄러운 부모가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라며 “양육비 미지급 문제도 아동학대로 처벌될 수 있도록 법을 바꾸는 활동을 이어가겠다. 앞으로의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도 많은 힘을 보태달라”고 말했다.
강민서 양육비해결모임 대표. [ 박해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