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일 오후 5·18기념공원 추모승화공간에서 시민들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관련자 명단이 새겨진 명판을 바라보고 있다. [뉴스1]
“유공자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5·18기념공원 관계자, 시설을 관리하는 5·18선양과가 있는 광주시 민주인권평화국 관계자들은 이것이 유공자 명단인 것에 대해 “거의 확실하다…” “보훈처의 원 자료를 다 알지 못하기에 확답할 수는 없지만, 5·18 유공자 명단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5·18 유공자가 아니면 여기에 이름을 새길 수 없다”는 답변을 했다. 우회적으로 인정한 것이다.그러나 이 명단을 토대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고 문익환 목사가 5·18 유공자로 선정됐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당시 광주에 있던 동명이인(同名異人)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명단에는 김문수가 포함돼 있었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1970년대부터 운동권 활동을 해왔기에 일부 인사는 그를 김 전 지사로 판단했다.
그러나 김 전 지사는 “5·18 유공자 중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과는 무관한 김대중 내란사건 관련자들도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안다.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김 전 대통령을 체포한 것은 1980년 5월 17일이었다. 내 담당 형사로부터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바로 도망쳤다. 그때 체포됐거나 도망을 다녔던 이들이 그 후 5·18 유공자로 선정됐으니, 나도 신청했다면 유공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청하지 않았고, 5·18과 관련된 보상금이나 연금을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추모실 벽면의 김문수는 김 전 지사가 아닌 동명이인인 것이다. 추모실 명단은 아무 설명 없이 한글로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동명자(同名者)가 있는 경우에는 생년월일을 덧새겨놓았다. 추모실에는 강◯일이란 이름이 두 개 있는데, 첫 번째 강◯일에는 1950. *. *, 두 번째 강◯일에는 1956. *. *로 새겨 두 사람을 구분해놓았다.
추모실 벽면에 새겨진 이름은 총 4296명이다. 국가보훈처(보훈처)가 2018년 초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5·18민주유공자 명단은 추모실 명단보다 85명이 많은 4381명이었다. 또 보훈처가 밝힌 2018년 12월 말 자료에서는 4415명이었다. 유공자 수가 계속 늘기 때문이다.
광주시청 관계자는 유공자 신청을 7차례 받았다고 밝혔다. 기념공원 관계자는 추모실을 1999년 12월에 만들 때 3800여 명의 이름을 새겼고, 그 후 한 차례 400여 명을 추가해 4296명이라는 것. 기념시설 관계자는 “추가 유공자도 추모실에 이름을 새겨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33%인 ‘그밖의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논란
[뉴시스]
보훈처 명단에는 유공자의 출생연도가 들어 있다. 유명인의 출생연도는 공개돼 있는 경우가 많다. 추모실에는 희성(稀姓)인 ‘도’씨 성을 가진 이가 2명, ‘동’씨는 1명, ‘라’씨는 2명, ‘류’씨는 14명이 새겨져 있었다. 따라서 희성을 가진 유명 인사의 출생연도와 비교해보려 했으나 보훈처는 이를 막으려는 듯 희성은 초성마저 적지 않았다. 보훈처는 완전 익명인 ◯◯◯으로 처리한 33명 가운데 24명에 대해 ‘특이 성’이라는 비고를 달아놓았는데, 이는 희성을 이용한 유공자 추적을 막기 위한 조치로 보였다. ‘황보’처럼 복수성(複數姓)이나 외자 이름도 모두 초성+◯◯으로 표기해 역시 추적이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훈처 명단은 ‘근거’란에 각 인물을 유공자를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선정 이유는 ‘5·18민주화운동 사망자 또는 행방불명자’ ‘5·18민주화운동 부상자’ ‘그밖의 5·18민주화운동 희생자’였다. 보훈처의 2018년 12월 자료는 4415명 가운데 2762명이 ‘5·18민주화운동 부상자’이고, 1472명이 ‘그밖의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나머지 181명은 ‘5·18민주화운동 사망자 또는 행방불명자’라고 밝혔다. 이 중 논란에 휩싸인 것은 전체 유공자의 33.3%인 1472명의 ‘그밖의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다.
1998년 행정안전부법(‘행정안전부 소관 비상대비자원 관리법 시행규칙’)으로 시행된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의 제22조 1항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생계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에게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일부는 1999년부터 정부로부터 생계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02년 국회는 보훈처법인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 제4조 3호에서는 위의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의 제22조 1항에 따라 지원받는 이를 ‘그밖의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로 한다고 정의하고, 이들도 5·18민주유공자로 예우하도록 해놓았다. 이렇게 되자 행정안전부법에 따라 생계 지원을 받던 이들이 5·18민주유공자로 선정되면서 5·18민주유공자 수는 33% 이상 늘어났다.
행정안전부법으로 생계 지원을 받았는데 보훈처법으로 5·18민주유공자로도 선정되면서 보상금 외에 교육·의료 지원을 받게 됐다. 이중 지원을 받은 셈이다. 5·18기념공원 추모실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 때문에 5·18민주유공자 선정이 철저하지 못했다는 시비가 일고 명단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나왔다. 이해찬 대표는 이러한 요구를 정면으로 받았던 사람이다. 이 대표는 2012년 이를 시인하고 5·18민주유공자증을 공개했다. 이 대표 측근은 “이 대표는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4조 3호에 따라 ‘그밖의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그밖의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은 침묵하고 있다. 5·18기념공원 추모실의 명단이 업데이트를 하지 못한 민주유공자로 확인된 이상 민주유공자의 실명과 선정 기준을 밝히라는 요구는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