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응준 전 엔비디아코리아 대표. 박해윤 기자
엔비디아코리아 대표를 지낸 유응준 준AI컨설팅 대표가 3월 3일 인터뷰에서 강조한 말이다. 유 전 대표는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엔비디아 한국지사 대표를 맡으며 회사 성장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그는 7년 동안 매분기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과 QBI(Quarterly Business Innovation) 회의를 했다. 회의는 주말 이틀 동안 이어졌고 한 번 열리면 매일 10시간씩 진행됐다. 가까이서 관찰한 황 CEO는 장교 같은 통솔력을 지닌 인물이다. 150명 넘는 고위 임원이 참석하는 분기 회의에서도 황 CEO가 마이크를 잡으면 회의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다. 유 전 대표가 퇴임한 2023년 무렵 엔비디아는 그래픽카드를 만드는 회사에서 인공지능(AI) 핵심 인프라인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만드는 기업으로 완전히 변해 있었다. 유 전 대표에게 엔비디아의 성장 뒷이야기를 들었다.
2~3년 걸릴 일을 1년 만에
시가총액 1위 엔비디아는 사실 매우 작은 조직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직원이 약 23만 명, 구글 알파벳은 약 20만 명으로 대규모를 자랑하는 반면, 엔비디아는 4만2000명 수준이다. 매출과 영향력을 고려하면 소수 정예다. 그럼에도 엔비디아는 2023년 시가총액 1조 달러 클럽에 진입해 2024년부터는 시가총액 1위를 유지하고 있다.유 전 대표는 그 비결로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실행력을 꼽았다. 엔비디아에선 업계 표준이 통하지 않는다. AMD, 인텔 등 경쟁사를 포함한 반도체업계에선 새로운 GPU를 출시하기까지 통상 2~3년이 걸린다. 그러나 엔비디아는 1년마다 GPU를 업데이트해 내놓는다. 일정에 맞추려고 퇴근하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회의에서 “나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금기다. 특정 프로젝트 때만 속도를 높이는 것도 아니다. 항상 최고 속도로 달린다. 엔비디아 내부에서는 이를 ‘Speed of Light(빛의 속도로 일하라)’ 문화라고 부른다.
강도 높은 문화에도 조직은 흔들리지 않는다. 황 CEO의 강한 리더십이 회사를 단단히 묶고 있기 때문이다. 유 전 대표는 “실리콘밸리는 업무 문화가 자유롭다는 인상이 있지만, 엔비디아는 가족 같은 분위기와 군대 같은 정렬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황 CEO는 분기 회의에서 모든 임원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경험만 강조하면서 “대표님, 그것은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라고 답하면 거친 질책이 돌아온다. 비속어도 서슴지 않는다. 황 CEO는 “Please listen carefully, understand clearly and answer correctly(잘 듣고, 정확히 이해하고, 제대로 답하라)”라고 강조한다.
모든 임직원이 보내는 이메일 읽으며 경청
그렇다고 황 CEO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만 하는 리더는 아니다. 유 전 대표는 황 CEO가 누구보다 경청을 잘한다고 말했다. 엔비디아 모든 직원은 황 CEO에게 격주마다 ‘Top 5 Things’라는 이메일을 보낸다. 각자가 진행 중인 업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5가지와 최근 시장에서 관찰한 내용을 정리해 보내는 것이다. 누군가 내용을 취합하지 않은 날것의 보고다. 유 전 대표는 황 CEO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이 이메일을 읽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라고 전했다. 중요한 사안이 있으면 해당 이메일에 발신자의 상사를 참조로 넣어 분석을 지시한다. 엔비디아의 AI 전용 가속기인 텐서코어 역시 이 ‘Top 5 Things’ 이메일에서 시작됐다. 구글 담당 엔지니어가 2017년 구글이 딥러닝 아키텍처 ‘트랜스포머’를 발표했다는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자 황 CEO가 이 모델에 맞는 GPU를 설계하라고 지시했던 것이다.‘워라밸’은 기대하기 어렵고 CEO도 깐깐하지만, 엔비디아 이직률(2.5%)은 업계(약 18%) 최저 수준이다. 유 전 대표는 엔비디아를 “당근이 꽤 좋은 회사”라고 표현했다. 엔비디아는 분기마다 사흘씩 ‘리프레시 휴가’를 준다. 매년 지급되는 연차와 별도로 전사가 동시에 쉰다. 스톡옵션도 제공한다. 최근 2년 주가 가운데 가장 낮은 가격의 약 80% 수준으로 연봉의 20%까지 주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유 전 대표는 “회사가 성장하면 개인 자산도 함께 불어난다”며 “직원 가운데 파이어족(짧은 시간에 은퇴 이후 자금을 마련해 이른 나이에 은퇴하거나 은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엔비디아 주가는 주춤하다. 지난해 4분기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했지만 주가는 약 7% 하락했다. 구글 등 빅테크도 엔비디아 의존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유 전 대표 역시 엔비디아 독점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점유율이 낮아지더라도 매출과 영향력은 계속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AI 시장 자체가 급격히 확대되고 있어 시장 파이가 커지는 속도가 점유율 하락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는 설명이다. 최근 AI가 202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부른다는 시트리니 리포트가 화제였는데, 이 역시 AI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잡음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제임스 반 길런 시트리니 창업자도 “해당 보고서는 예측이 아니라 시나리오일 뿐”이라고 명시했다.
유 전 대표는 앞으로 엔비디아가 피지컬 AI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엔비디아는 늘 ‘0조 원 시장’에 먼저 깃발을 꽂는 전략을 선택해왔기 때문이다. 잠재 시장 규모는 막대하지만, 아직 어떤 기업도 선뜻 시도하지 않은 영역을 노린다. 유 전 대표는 황 CEO에 대해 “스펙이나 현 시장점유율보다 산업 진화 방향을 읽는 탁월한 기업가”라고 설명했다.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윤채원 기자입니다. 눈 크게 뜨고 발로 뛰면서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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