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에 사는 한 지인이 방을 빼게 돼 집주인에게 전세보증금을 요구했다. 그런데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빼주지 않고 있다. “새로 들어올 세입자가 있어야 보증금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 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자 지인은 집주인을 비난했다. “이 많은 원룸 세입자로부터 보증금을 받았으니 돈이 엄청나게 많을 텐데 돈을 안 준다.” “보증금으로 받은 돈을 다른 데로 빼돌려 쌓아두고 있다.” 지인은 집주인을 비난하면서 보증금 사기로 고소할 계획이라고 했다.
다세대주택 주인이던 A 씨가 있다. 그 전에 A 씨는 단독주택에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주변 단독주택들이 다세대주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동네 주민들이 “왜 여기만 단독주택으로 있느냐”며 “동네 망치지 말고 다세대주택으로 바꾸라”고 요구를 해왔다. A 씨도 단독주택을 헐고 다세대주택을 짓고 싶었다. 하지만 다세대주택을 지으려면 건축비가 필요했다. 월급쟁이인 A 씨는 그 정도 목돈이 없었다.
건축사업자는 A 씨에게 돈이 없어도 다세대주택을 지을 수 있다고 했다. 다세대주택을 지은 후 각 세대로부터 전세금을 받아 건축비를 내면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A 씨는 8세대가 거주할 수 있는 다세대주택을 짓고, 그중 하나에 직접 살았다. 나머지 7세대는 전세를 줬고, 그 보증금으로 건축비를 냈다. A 씨는 “내 돈을 들이지 않고 새집을 얻었으니 이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전세는 집주인이 손해 보는 시스템이었다. 집 수리비와 관리비, 세금이 지속적으로 지출됐다. 그런데 전세로는 그 돈을 충당할 수 없었다. A 씨는 월급을 받는 직장에 다녔고, 자기 월급으로 그 지출들을 부담해야 했다. 그간 월급을 생활비로만 사용했는데, 여기에 건물 유지비 등이 추가되니 오히려 생활수준이 낮아졌다.
가장 큰 문제는 세입자가 나갈 때였다. 세입자가 나가면 전세보증금을 줘야 하는데, 전세보증금을 건축비로 모두 사용한 탓에 손에 쥐고 있는 목돈이 없었다. 다음 세입자로부터 돈을 받아야 보증금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역시 운이 아주 좋을 때만 가능했다. 물론 A 씨도 계약서상 날짜에 반드시 보증금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입자가 “나가겠다”고 말하면 보증금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은행, 공제조합, 친구, 친척, 직장동료 등 사방에서 돈을 꿨다. A 씨의 일기장을 보면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구하려고 여기저기서 돈을 꾸고 갚고 한 이야기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전세를 월세로 바꾸는 과정은 지난했다. 일단 전세보증금을 다 돌려줄 수 있는 현금이 있어야 전세를 월세를 바꿀 수 있었다. 월급 대부분을 쓰지 않고 차근차근 모아야 그 돈이 마련됐다. 그러다가 한 집이 전세에서 월세로 바뀌면 그 월세 수입과 월급을 다시 모아 다른 집들도 전세에서 월세로 바꿔나갔다. 결국 모든 집이 다 월세로 바뀌었다. 월세라고 해도 세대별 보증금이 3000만~5000만 원은 됐지만, 어쨌든 모든 세대에서 월세 수입이 나왔다. 이렇게 만들기까지 거의 15년이 걸렸다.
옆에서 지켜본 그는 다세대주택에 얽매인 삶을 살았다. 직장에서 정년퇴임 후 여유로운 삶을 살기를 원했지만, 세입자가 나가고 들어오는 것에 맞춰 보증금을 준비하고 지불해야 했다. 그사이 악성 세입자와 분쟁도 많았고 주차 문제와 쓰레기 배출 문제, 소음 문제도 계속됐다. 가장 큰 문제는 세입자가 나갈 때 보증금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A 씨는 나중에서야 “그때 단독주택을 다세대주택으로 바꾸지 말았어야 한다”며 후회했다. 단독주택에 살았다면 그런 문제를 신경 쓰지 않고 살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올해 3월 A 씨는 죽었고 자식이 다세대주택을 물려받았다. 자녀 B 씨는 그동안 A 씨가 고생해온 것을 옆에서 봐왔기에 건물주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그냥 맘고생하지 말고 편하게 운영하자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는 물려받은 다세대주택의 월세 수입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별 무리가 없었다. 그래서 돈에 민감하게 굴지 않았고 임차인의 요구를 다 들어줬다. 각 세대마다 수도계량기를 달아 자기가 쓴 만큼 정확히 수도요금을 내게 했으며, 보안을 위해 폐쇄회로(CC)TV도 달았다.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를 위해 도배와 도색을 새로 했고 싱크대를 바꿔달라는 요구도 수용했다. 이외에도 화장실 수리와 문틀 교체 등 세입자가 요구하는 사항을 다 들어줬다. 계약 기간을 채우지 않고 나간다고 할 때도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말하지 않고 “언제든 나가도 된다”고 했다. 재계약할 때는 월세를 올리지 않고 그냥 기존 임대료만 계속 받았다. 맘씨 좋은 임대인 코스프레였다.
그렇게 8개월이 지났다. 현재 B 씨의 다세대주택 사업자 통장 잔액은 마이너스다. 2400만 원이나 손실을 봤다. B 씨는 자기 돈을 들여 그 손실을 메우고 있다. 이렇게 손해가 큰 이유는 한 세대가 나가 전세보증금 3000만 원을 내줬는데, 이후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왔다고 해도 통장은 600만 원 정도 흑자였을 것이다. 8개월에 600만 원 수익이니, 한 달 평균 75만 원을 번 셈이다.
한 달 임대료로 75만 원을 버는 정도면 2억 원가량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이 다세대주택은 자산가치가 몇십억 원에 달한다. 이 정도 가액에 월 75만 원 수입이면 은행 이자도 안 나온다. 명목상으로는 플러스지만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엄청난 적자다.
“세입자가 들어왔다면 한 달 75만 원 정도 수입은 됐을 텐데”라고 가정하는 것은 의미 없다. 당장 2400만 원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B 씨가 이를 자신의 돈으로 메울 여유가 없었다면 사기꾼으로 고소당했을지도 모른다.
B 씨는 고민이다. 세입자가 보일러를 새로 바꿔달라고 하는데, 그 정도는 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이 같은 요구를 다 들어주면 통장에 언제 돈이 모일지 기약할 수 없다. 하지만 보일러를 고쳐주지 않으면 임차인은 그를 돈밖에 모르는 악덕 임대인이라고 욕할 것이다. B 씨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자기가 임대사업을 하는지, 복지 사업을 하는지 헛갈려 하고 있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집주인 역시 세입자와 마찬가지로 보증금 반환 문제로 속이 타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GettyImages]
보증금 없는 집주인 다수
계약 기간이 지났는데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내가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은 집주인이 돈이 있으면서도 돈을 주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이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나. 집주인은 부동산은 갖고 있지만 현금은 부족할 것이다. 수천만 원이라는 돈을 돌려주려면 정말 다음 세입자로부터 보증금을 받아야 할 수 있다. 물론 집주인이 보증금을 노린 사기꾼이라면 어딘가 돈을 숨겨놓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을 손에 쥐고 있지 않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보증금 사기로 고소당할 수 있는 상황인 만큼 집주인도 속이 타들어갈 것이다.
다세대주택 주인이던 A 씨가 있다. 그 전에 A 씨는 단독주택에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주변 단독주택들이 다세대주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동네 주민들이 “왜 여기만 단독주택으로 있느냐”며 “동네 망치지 말고 다세대주택으로 바꾸라”고 요구를 해왔다. A 씨도 단독주택을 헐고 다세대주택을 짓고 싶었다. 하지만 다세대주택을 지으려면 건축비가 필요했다. 월급쟁이인 A 씨는 그 정도 목돈이 없었다.
건축사업자는 A 씨에게 돈이 없어도 다세대주택을 지을 수 있다고 했다. 다세대주택을 지은 후 각 세대로부터 전세금을 받아 건축비를 내면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A 씨는 8세대가 거주할 수 있는 다세대주택을 짓고, 그중 하나에 직접 살았다. 나머지 7세대는 전세를 줬고, 그 보증금으로 건축비를 냈다. A 씨는 “내 돈을 들이지 않고 새집을 얻었으니 이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전세는 집주인이 손해 보는 시스템이었다. 집 수리비와 관리비, 세금이 지속적으로 지출됐다. 그런데 전세로는 그 돈을 충당할 수 없었다. A 씨는 월급을 받는 직장에 다녔고, 자기 월급으로 그 지출들을 부담해야 했다. 그간 월급을 생활비로만 사용했는데, 여기에 건물 유지비 등이 추가되니 오히려 생활수준이 낮아졌다.
가장 큰 문제는 세입자가 나갈 때였다. 세입자가 나가면 전세보증금을 줘야 하는데, 전세보증금을 건축비로 모두 사용한 탓에 손에 쥐고 있는 목돈이 없었다. 다음 세입자로부터 돈을 받아야 보증금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역시 운이 아주 좋을 때만 가능했다. 물론 A 씨도 계약서상 날짜에 반드시 보증금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입자가 “나가겠다”고 말하면 보증금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은행, 공제조합, 친구, 친척, 직장동료 등 사방에서 돈을 꿨다. A 씨의 일기장을 보면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구하려고 여기저기서 돈을 꾸고 갚고 한 이야기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임차인 요구 다 들어줬더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전세 시세가 폭락하자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세입자들이 “시세가 낮아졌으니 보증금 일부를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이었다. 당시 A 씨는 보증금 일부를 돌려줄 돈이 없었고. 세입자들은 그의 멱살을 잡은 채 “돈을 내놓으라”고 욕을 했다. A 씨는 이 일로 한이 맺혀 두 집 정도는 언제 나가더라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모아두기로 결심했다. 또한 장기적으로 전세를 모두 월세로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전세를 월세로 바꾸는 과정은 지난했다. 일단 전세보증금을 다 돌려줄 수 있는 현금이 있어야 전세를 월세를 바꿀 수 있었다. 월급 대부분을 쓰지 않고 차근차근 모아야 그 돈이 마련됐다. 그러다가 한 집이 전세에서 월세로 바뀌면 그 월세 수입과 월급을 다시 모아 다른 집들도 전세에서 월세로 바꿔나갔다. 결국 모든 집이 다 월세로 바뀌었다. 월세라고 해도 세대별 보증금이 3000만~5000만 원은 됐지만, 어쨌든 모든 세대에서 월세 수입이 나왔다. 이렇게 만들기까지 거의 15년이 걸렸다.
옆에서 지켜본 그는 다세대주택에 얽매인 삶을 살았다. 직장에서 정년퇴임 후 여유로운 삶을 살기를 원했지만, 세입자가 나가고 들어오는 것에 맞춰 보증금을 준비하고 지불해야 했다. 그사이 악성 세입자와 분쟁도 많았고 주차 문제와 쓰레기 배출 문제, 소음 문제도 계속됐다. 가장 큰 문제는 세입자가 나갈 때 보증금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A 씨는 나중에서야 “그때 단독주택을 다세대주택으로 바꾸지 말았어야 한다”며 후회했다. 단독주택에 살았다면 그런 문제를 신경 쓰지 않고 살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올해 3월 A 씨는 죽었고 자식이 다세대주택을 물려받았다. 자녀 B 씨는 그동안 A 씨가 고생해온 것을 옆에서 봐왔기에 건물주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그냥 맘고생하지 말고 편하게 운영하자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는 물려받은 다세대주택의 월세 수입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별 무리가 없었다. 그래서 돈에 민감하게 굴지 않았고 임차인의 요구를 다 들어줬다. 각 세대마다 수도계량기를 달아 자기가 쓴 만큼 정확히 수도요금을 내게 했으며, 보안을 위해 폐쇄회로(CC)TV도 달았다.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를 위해 도배와 도색을 새로 했고 싱크대를 바꿔달라는 요구도 수용했다. 이외에도 화장실 수리와 문틀 교체 등 세입자가 요구하는 사항을 다 들어줬다. 계약 기간을 채우지 않고 나간다고 할 때도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말하지 않고 “언제든 나가도 된다”고 했다. 재계약할 때는 월세를 올리지 않고 그냥 기존 임대료만 계속 받았다. 맘씨 좋은 임대인 코스프레였다.
그렇게 8개월이 지났다. 현재 B 씨의 다세대주택 사업자 통장 잔액은 마이너스다. 2400만 원이나 손실을 봤다. B 씨는 자기 돈을 들여 그 손실을 메우고 있다. 이렇게 손해가 큰 이유는 한 세대가 나가 전세보증금 3000만 원을 내줬는데, 이후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왔다고 해도 통장은 600만 원 정도 흑자였을 것이다. 8개월에 600만 원 수익이니, 한 달 평균 75만 원을 번 셈이다.
한 달 임대료로 75만 원을 버는 정도면 2억 원가량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이 다세대주택은 자산가치가 몇십억 원에 달한다. 이 정도 가액에 월 75만 원 수입이면 은행 이자도 안 나온다. 명목상으로는 플러스지만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엄청난 적자다.
“세입자가 들어왔다면 한 달 75만 원 정도 수입은 됐을 텐데”라고 가정하는 것은 의미 없다. 당장 2400만 원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B 씨가 이를 자신의 돈으로 메울 여유가 없었다면 사기꾼으로 고소당했을지도 모른다.
깐깐한 임대인이 돼라
무엇이 잘못됐을까. 맘씨 좋은 임대인 코스프레가 잘못된 것이다. 임차인들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면 안 됐다. 비용을 따지고 수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고려해 대부분은 거절해야 했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나간다고 할 때 그러라고 하지 말았어야 하고, 관리비용과 세금이 증가한 만큼 임대료도 올려야 했다. B 씨는 여기서 큰 수익을 올릴 생각이 없다. 여기서 수입이 나오지 않아도 사는 데 별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 적자는 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다세대주택을 운영하면서 자기 돈을 몇천만 원씩 넣을 수는 없지 않나. 따라서 적자를 면하려면 맘씨 좋은 임대인이 돼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깐깐한 임대인이 돼야 한다. 그러면 큰 수익이 나는 게 아니라, 적자를 면한다.
B 씨는 고민이다. 세입자가 보일러를 새로 바꿔달라고 하는데, 그 정도는 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이 같은 요구를 다 들어주면 통장에 언제 돈이 모일지 기약할 수 없다. 하지만 보일러를 고쳐주지 않으면 임차인은 그를 돈밖에 모르는 악덕 임대인이라고 욕할 것이다. B 씨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자기가 임대사업을 하는지, 복지 사업을 하는지 헛갈려 하고 있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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