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3월 16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기자실에서 6·4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 출마 공식 선언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3월 2일 서울 남산공원 백범광장에서 서울시장 예비후보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 의원은 3월 17일 오전 11시 여의도 대하빌딩에 마련한 김 전 총리 캠프를 찾을 예정이었지만, 이번에는 김 전 총리 측에서 일정이 맞지 않는다며 난색을 표해 정오로 순연됐다. 정 의원이 김 전 총리를 만나는 모습을 주도적으로 연출하는 것에 순순히 따라가지 않겠다는 의지 표시였다. 우여곡절 끝에 첫 만남은 이뤄졌지만 두 후보는 ‘뼈 있는 말’을 주고받으며 한 치 양보도 없는 신경전을 벌였다. 김 전 총리의 ‘김기춘 실장과 상의’ 발언 뒤인 18일에는 서울지역 당협위원장 만찬장에서 양측이 거친 말싸움을 하기도 했다.
#김황식, 인지도 올리면 역전 가능
김 전 총리가 새누리당 서울시장 경선 레이스에 합류하면서 서울시장에 출마한 새누리당 후보는 모두 6명이 됐다. 군소 후보를 제외하면 정몽준, 김황식 두 후보가 한 발짝 앞서 있는 상황에서 이혜훈 후보가 그 뒤를 바짝 추격하는 모양새다.
정몽준, 김황식 두 후보가 양강 구도를 이루지만,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정 의원이 김 전 총리보다 당내 후보 적합도에서 10%p 이상 앞서고 있다. 민주당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양자 대결에서도 정 의원은 오차범위 내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반면, 김 전 총리는 지지율 격차가 두 자릿수다. 정 의원 측에선 “김 전 총리가 출마 시기를 실기(失期)했다. 사실상 끝난 게임”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김 전 총리 측에선 “인지도를 끌어올리면 역전 가능하다. 게임은 이제부터”라고 반박한다.
김 전 총리 측은 ‘검증된 후보론’과 ‘본선 경쟁력 우위론’을 기본 전략으로 역전을 꿈꾼다. 대법관, 감사원장, 국무총리 등으로 일하며 법률, 행정,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정 경험을 한 점을 다른 후보들이 가질 수 없는 장점으로 내세운다. 김 전 총리의 캠프 총괄을 맡은 이성헌 전 의원은 “일을 해본 사람, 행정력을 겸비한 사람이 1000만 서울시민의 삶을 제대로 책임질 수 있다”며 “선거 기간 이 점을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총리 측은 재벌 출신 정 의원이 본선에 나설 경우 ‘재벌(정몽준) 대 서민(박원순)’ 프레임에 걸려 필패할 것으로 본다. 반면 김 전 총리는 ‘호남 출신 여권 후보’라는 희소성으로 표 확장성 면에서 정 의원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한다. 관리형 이미지가 강해 역동성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시간이 지나면 후보의 진면목을 알게 될 것”이라며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김 전 총리는 출마 선언 자리에서 “나는 마음속에서 마그마가 끓는 눈 덮인 휴화산과 같다”며 “나를 가까이 경험한 분들은 나에게 역동성이 있다고 평가한다”고 응수했다.
김 전 총리는 친박근혜(친박)계, 친이명박계 인사는 물론 김대중(DJ) 정부 인사까지 합류하는 ‘연합군’으로 캠프를 꾸렸다. 친박 ‘조직통’이라 부르는 이성헌 전 의원이 캠프 총괄을 맡았으며, 국회 대변인을 지낸 허용범 동대문갑 당협위원장과 오신환 관악을 당협위원장 등 범친박계 10여 명과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박선규 영등포갑 당협위원장도 캠프에 합류했다. 여기에 2012년 대통령선거(대선) 기간에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한 DJ 측 인사들도 캠프 합류를 타진 중이다.
경선 캠프에서 눈에 띄는 조직은 스마트운동본부, 국민소통본부, 글로벌운동본부다. 스마트운동본부가 모바일을 통해 후보 소식을 알리고, 국민소통본부는 대표전화를 설치해 서울시민의 민원을 적극 접수한다. 글로벌운동본부는 글로벌 시정운영을 위한 아이디어를 모으는 임무를 맡았다.
캠프는 당원은 물론 국민에게조차 김 전 총리가 낯선 만큼, 언론 인터뷰와 현장 방문 등을 통해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4월 초까지 상승 추세가 이어져 격차가 좁혀지면 권역별 순회 경선과 TV 토론 등을 통해 충분히 역전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캠프 관계자는 “김 전 총리가 말한 듯 역전 굿바이 홈런을 반드시 쳐내겠다”고 말했다.
3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새누리당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역단체장 공천신청자 간담회에서 이성복, 정몽준, 정미홍, 이혜훈, 김황식, 강성현 서울시장 예비후보(왼쪽부터)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7선 국회의원과 당대표, 대선후보까지 지낸 정 의원은 높은 대중성을 바탕으로 당심과 민심을 사로잡아 단 한 번의 역전 기회도 허용하지 않고 본선으로 직행한다는 전략이다. 높은 여론조사 지지율이 보여주듯 민심에선 승기를 잡았다는 판단이다. 현행 경선 룰인 ‘대의원(20%), 당원(30%), 국민선거인단(30%), 여론조사(20%)’에서 대의원에 해당되는 20%에 총력을 기울여 판세를 굳히겠다는 복안이다.
정 의원은 ‘역동적이고 활력 있는 경제 시장론’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김 전 총리의 다양한 공직 경험이 주어진 일을 관리하는 데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변화가 필요한 서울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2002 한일월드컵 개최를 성사시키고 현대중공업 회장 출신인 자신이 적합하다는 논리다.
정 의원 측 핵심 관계자는 “태평성대일 때는 김 전 총리처럼 관리하는 스타일도 괜찮지만 현재처럼 서울이 활력 없고 어려울 때는 도전적으로 치고 나갈 수 있는 추진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일자리를 창출하고 장사가 잘되도록 서울 경제를 살리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종일관 강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이 현대중공업 대주주로서 부각되는 ‘재벌’ 이미지를 극복하고 상대적으로 공직 경험이 많은 김 전 총리와 차별화하려는 선거 전략으로 풀이된다.
용산개발사업 재추진 카드 역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뉴타운 사업을 앞세워 신승을 거둔 것을 벤치마킹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그 밖에 정 의원 측은 실천력 있는 경제 시장 이미지를 부각하는 차원에서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서울을 서울답게’ 또는 ‘으라차차 서울’ 가운데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총리 측에서 주장하는 ‘서민 대 재벌’ 구도에 대해 정 의원 측은 “정 의원이 재벌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아는 사실로, 이미 여론조사에 반영돼 있다”며 “새로운 재벌 비리가 나오지 않는 이상 큰 영향이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김 전 총리의 표 확장성에 대해선 “이것 역시 여론조사에 반영된 것으로, 표 확장성이 있다면 지지율이 높게 나와야 하지만 여전히 낮게 나타난다”며 평가절하하고, “다만 출마 선언 후 여론조사 변화 추이가 있는지 지켜보려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정 의원 캠프는 정 의원이 당대표 시절 특보단장을 지낸 이사철 전 의원과 비서실장 출신인 정양석 전 의원이 주축을 이룬다. 안효대, 김용태, 조해진, 이노근, 염동열 의원 등이 정 의원을 돕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