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5월 2일 청와대 본관 인왕실에서 열린 사회원로들과 오찬간담회를 갖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원로는 이홍구 전 국무총리, 윤여준 윤여준정치연구원 원장, 이종찬 우당장학회 이사장,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김우식 창의공학연구원 이사장, 정해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송호근 포항공대 석좌교수,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 안병욱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김영란 양형위원회 위원장, 김지형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 등 12명이었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오찬간담회에서 원로들은 대통령에게 어떤 조언을 했을까. 청와대는 간담회 내용 일부만 발표해 원로들이 어떤 발언을 했는지 전모는 알 수 없었다.
‘주간동아’는 오찬간담회에 참석한 12명의 인사와 개별 접촉했고 윤여준 원장, 김명자 회장, 이종찬 이사장, 김지형 위원장, 김우식 이사장, 안병욱 원장 등 6명으로부터 간담회에서 한 말과 미처 꺼내지 못한 말에 대해 들었다.
청와대 발표에 따르면 윤여준 원장은 “대통령이 정국을 직접 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윤 원장은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취임 초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찾아가 만나는 등 협치를 위해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그동안 야당을 끝까지 설득하고 포용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난해 판문점에서 열린 4·27 남북정상회담 만찬을 가장 큰 실책으로 언급했다. 국회의장단과 북한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야당 측 인사를 초대하지 않았기 때문. 당시 청와대가 만찬에 초대한 야당 의원은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 한 명뿐이었다.
윤 원장은 “남북관계는 필연적으로 남남갈등을 야기해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 일로 굉장히 힘들어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급진전시키며 지난해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다. 그런데 저녁 만찬에 국회의장단과 야당 의원을 초청하지 않았다. 이는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엄청난 국가적 과제를 추진하면서 반대편은 배제하겠다는 의도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이어 “대통령이 정국을 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발언과 관련해 “현재 자유한국당이 진행하는 투쟁의 강도를 보면 더불어민주당의 대응만으로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다. 이럴 때는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임기 2년이 지났고 얼마 안 가 절반을 넘어서게 되는데 구체적인 성과를 내놓아야 할 때다. 하지만 지금처럼 국회 기능이 마비돼 있으면 행정부가 하고자 하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당연히 성과는 저조하고 그 부담도 고스란히 대통령이 지게 된다”며 우려를 표했다.
윤 원장은 적폐청산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은 보수-진보로 나뉘어 싸우는 것이다. 적폐청산을 하려면 이 고질병부터 없애야 한다. 처음부터 어느 한 세력만 배제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적폐를 청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일본에 미소 보여줄 때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5월 2일 청와대에서 윤여준 윤여준정치연구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이 이사장은 “아베 총리는 굉장히 영악한 사람이다. 그가 혐한 분위기를 이용할 수 없도록 우리가 ‘미소작전’을 펼쳐야 한다. 오히려 강경하게 나가면 아베 총리의 행보에 날개를 달아주는 결과가 된다. 한국이 먼저 일본에게 관계 개선을 이야기하면 일본은 갑자기 우호적으로 나오는 한국의 태도에 당황할 것이다. 이 같은 방법을 통해 아베 내각의 혐한 전략을 김새게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를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현 태도를 고수하면서도 일본과 사이좋게 지내는 강온양면이 필요한 때다. 잠시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를 덮어두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는 식의 ‘투트랙 전략’으로 가자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4차 산업혁명도 정답은 제조업
[뉴시스, 동아일보]
그는 “제조업 경쟁력이 없으니 기술 기반의 창업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창업은 운송, 운수, 식당 등 생계형이 압도적이다. 근본적인 (경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1~3차 산업혁명 모두 제조업에서 일어났다. 4차 산업혁명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기기를 만들 수 있는 제조기술과 생산능력을 보유한 나라가 산업 강국이 될 것이다. 제조업 발전을 위해서는 기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예를 들어 3D 프린팅으로 알려진 AM(Additive Manufacturing·첨삭가공) 기술을 제조업에 도입하는 식이다. 세계 각국은 새로운 제조업 시대를 준비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그런 움직임이 없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김 회장은 “과학기술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다른 부문에 비해 상당히 뒤로 밀려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과학기술계의 사기가 진작돼야 연구개발 투자 대비 성과도 높아질 수 있다. 대통령이 과학기술 발전에 기를 넣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관을 지낸 김지형 위원장은 그동안 여러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위원회를 맡아온 소회를 밝혔다. 그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면서 느낀 문제점은 아직 한국 사회의 갈등 해결이 일시적, 단발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갈등 해결을 위한 공론화 과정을 법·제도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또 이런 공론화 과정에서 리더뿐 아니라 각 참여 주체의 책임도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위원장을 맡은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에 관해서는 “고(故) 김용균 씨 사망 사고에서 드러나듯 산업현장의 노동 안전 수준은 부끄러울 정도다. 4월 시작한 특조위 활동 기한이 7월 말까지여서 시간이 촉박하지만 노조, 기업, 주무부처 등과 협의해 산업 안전 전반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고 싶다”고 밝혔다.
탈원전이라는 말은 이제 그만
안병욱 [뉴스1]
에너지 정책에 대해서 김 이사장은 “(그날 대통령에게) 노골적으로 ‘탈원전’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자고 제안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자력발전소 수주를 부탁해올 만큼 한국은 세계적인 원자력 기술을 보유했다. 하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관련 인재 양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당장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도 원자력공학과 대학원에 지원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다고 한다. 대통령은 임기가 5년이지만 인재를 키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수십 년이다. 탈원전 일변도의 정책을 편다면 한국의 원자력 기술은 물론, 관련 업계와 학계 가릴 것 없이 고사할 수 있다. 탈원전 대신 단계적인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 연구를 동시에 진행해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원자력보다 높아지게 만들면, 굳이 탈원전 정책을 펴지 않아도 원자력발전 산업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안병욱 원장은 “현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것이 부담감으로 작용해 여러 가지 정치적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하지만 미국 정치학 연구의 권위자 로버트 달이 지적했듯, 민주주의는 성공한 만큼 실패와 좌절도 뒤따른다. 세종대왕이 젊은 나이에 왕이 된 후 32년간 재위하며 쌓은 업적을 오늘날의 우리도 누리고 있지 않은가. 그것처럼 일희일비하지 말고 후대를 위한 초석을 다진다는 생각으로 긴 호흡에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또 “참석자 대부분이 문제를 지적해 나는 주로 격려를 했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는 표현처럼 대통령 혼자 애써서는 뜻을 이룰 수 없다. 사회 각계의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송호근 교수는 “간담회에 대해 더 얘기하는 것은 결례인 것 같다”고 말했고, 다른 참가자들도 비슷한 입장을 밝혀왔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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