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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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 司正으로 레임덕 막아라”

여권, “더이상 끌려갈 수 없다” 한계 상황 인식…‘국가 중추기관 무력화 전략’에 대한 반격

  • 입력2005-06-02 14: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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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방위 司正으로 레임덕 막아라”
    최근 정부가 발표한 전방위 사정(司正) 방침에 대해 말들이 많다. 야당의 검찰 수뇌부 탄핵이라는 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국면 전환용이라는 비판에서부터 ‘또 사정이냐’는 냉소적인 반응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마지막 결전’이라고까지 밝힌 김대중 대통령의 비장한 각오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사정은 여야를 넘나드는 고강도 사정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우선 주목할 것은 전방위 사정 방침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정부의 사정 방침은 한빛은행 및 정현준 불법대출 사건, 동방금고 사건 등에서 집권여당 인사 연루의혹이 제기되고, 금융개혁을 주도하는 금융감독원 간부와 8급직 청와대 청소원의 비리가 잇따른 가운데 나왔다. 따라서 이번 사정이 ‘국면 전환용’이라는 야당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정부여당의 사정 방침이 나오게 된 배경과 사정 정국에 대한 인식을 면밀히 살펴보면 단순한 국면 전환용만은 아닌 것 같다는 관측이다.

    정부여당의 사정 방침이 처음 공개된 것은 11월10일 서영훈 민주당 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서였다. 서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사정당국에 고강도 사정을 촉구’하는 형식으로 사정을 거론했다. 그러자 집권당 대표가 사정을 촉구한 발언에는 여권 핵심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는 관측이 대두됐다. 집권 후반기에 자칫 해이해질 수밖에 없는 공직사회의 기강 확립을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청와대측과의 사전 교감이 있었으리라는 얘기였다. 서대표의 연설문 작성은 이해찬 정책위의장이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것은 ‘당-청 6인회의’다. 매주 금요일에 개최되는 이 오찬 모임의 멤버는 민주당의 서영훈 대표-김옥두 사무총장-정균환 총무-이해찬 정책위의장과 청와대의 한광옥 비서실장-남궁진 정무수석이다. 11월10일 오찬 회동에도 이들이 모두 참석해 ‘사정을 통한 공직 기강확립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8월부터 정례화된 당-청 6인 회동의 취지는 시중 여론을 폭넓게 청취하는 당쪽의 의견을 대통령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한편, 대통령의 의중을 당에 전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11월10일 회동에서도 서대표의 사정 건의를 청와대가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서대표의 사정 촉구 연설이 6인 회의에서의 당-청 교감에 의해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대통령의 의중에는 못미쳤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당초 청와대측에서는 ‘전방위 사정’의 필요성을 적극 제기해 서대표의 연설문 초고에는 훨씬 더 강도 높은 사정을 촉구하는 표현이 포함돼 있었는데 막상 연설에서는 그런 표현이 빠졌다는 것이다. 자칫 야당의 ‘불필요한 오해’를 살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대통령의 의중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것. 그래서 고심 끝에 SBS 창사 10주년 기념 특별회견(11월13일)에서 대통령이 직접 고강도 사정 의지를 밝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감사원을 비롯한 정부기관을 총동원해 ‘마지막 결전’이라는 생각으로 비리를 척결해 나가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는 설명이다.

    이는 사정기관을 총동원한 전방위 사정 방침이 단순한 국면 전환용이 아니라 여권 핵심부의 절박한 상황 인식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전방위 사정을 결심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정현준 스캔들과 청와대 청소원 비리지만 김대통령의 사정 의지는 10월 중순 이상수 총재특보단장을 불러 ‘시중 민심을 있는 그대로 직보해 달라’고 당부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면서 여권 핵심부의 상황 인식을 이렇게 요약했다.

    “정부로서는 집권 이후 줄곧 공직 부정비리 일소를 강조해왔지만 부분적으로나마 부정이 진행돼온 것에 낭패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공직사회의 일부 부정이 야당에 의해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왜곡-증폭되는 상황도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권 핵심부로서는 전방위 사정을 통해 공직 기강을 확립하는 것만이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고 집권 후반기의 레임 덕 현상을 막아 국정 추진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했음 직하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주목할 대목은 여권 핵심부가 전방위 사정을 결심하는 상황 인식에 이르게 된 과정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를 “한빛은행 등 최근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야당과 정국에 대한 상황 인식이 달라졌다”는 말로 요약했다. 그렇다면 이 사건들을 계기로 여권 상황 인식이 어떻게 달라진 것일까.

    앞서의 청와대 관계자는 한나라당의 공세로 박지원 문화부 장관이 물러난 것(한빛은행 사건)과 면책특권을 무기로 이른바 KKK+P씨(권노갑 최고위원-김옥두 사무총장-김홍일 의원-박준영 공보수석)의 실명을 거론한 것(정현준 사건), 그리고 검찰 수뇌부의 무력화 기도(검찰총장-대검차장 탄핵안 제출) 등을 예로 들었다. 즉 박지원 전 장관의 먼 친척(한빛은행 사건)과 청와대 8급 위생직 공무원(정현준 사건)이 불법-비리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왜곡-증폭하거나 검찰 수뇌부에 대한 탄핵으로 몰아가는 야당의 공세는 여권 핵심 세력과 국가 중추기관을 무력화하려는 ‘공작정치’의 일환이라는 상황 인식이다. 따라서 전방위 사정은 야당의 ‘국가 중추기관-세력 무력화 전략’에 더는 끌려갈 수 없다는 상황 인식에서 나온 반격인 셈이다.

    김대통령은 지난 10월 초 열린 여야 영수회담에서 이회창 총재에게 한빛은행 사건으로 박지원 장관을 물러나게 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총재는 영수회담에 다녀와서 측근들에게 “박장관에 대한 김대통령의 신임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오히려 “한빛은행 사건을 철저히 파헤쳐 박지원 장관이 이 정권에서 재기용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이회창 총재의 직계로 분류되는 판사 출신 이주영 의원이 시중 증권가 정보지에 정현준 사설펀드에 가입된 것으로 유포된 이른바 KKK의 실명을 거론한 것도 동교동계 핵심세력을 무력화하려는 일종의 ‘공작정치’라는 것이 여권 핵심부의 시각이다. 이와 관련해 여권 일각에서는 한나라당 정보통인 모의원이 당 차원의 유언비어 수집팀 지원을 받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여권은 이 유언비어 수집팀을 시중 여론을 파악하는 창구이자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창구로 지목하고 있다. 비리설이 나도는 정치인의 경우 증권가 정보지에 통상 실명이 거론되는데 이번에는 KKK라는 이니셜과 함께 거론된 것부터가 유포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여권은 특히 정현준씨가 검찰에 출두하기 전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과 만난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여권은 야당의 검찰 탄핵안 상정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야당이 이례적으로 검찰총장뿐만 아니라 대검차장까지 묶어서 탄핵안을 제출한 것은 ‘정치적 목적’이 있지 않느냐는 것. 목포고 출신인 신승남 대검차장은 옷로비 사건에 휘말린 김태정 검찰총장의 후임으로 박순용 총장체제가 들어설 때부터 이미 ‘차기 총장’설이 나돌았던 인물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탄핵 화살은 현직 총장보다는 차기 대선 기간에 검찰을 지휘하게 될 차기 총장을 겨냥한 것으로 이는 결국 검찰 조직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정치공세라는 것이 여권의 상황 인식이다.

    정부 여당은 특히 야당이 탄핵안을 제출한 것만으로도 검찰의 통상적인 사정 활동조차 위축되는 등 충분히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현실을 주시하고 있다. 야당의 탄핵안 상정 강행 방침이 정해지면서 검찰 간부들이 국회로 출근해 연줄이 있는 한나라당-자민련 의원들을 만나고 검사들은 검사들대로 삼삼오오 모여 촉각을 곤두세우는 등 조직이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번 전방위 사정은 야당의 여권 핵심 세력과 국가 중추기관 무력화 전략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여권 핵심부의 상황 인식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형태를 띨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여론의 냉소적인 반응과 심각한 경제난이다. 따라서 이번 ‘마지막 결전’의 칼은 ‘피아를 구별하지 않는 양날의 칼’이 될 수밖에 없다. 칼은 청와대가 뽑았지만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장이 주재하는 사정 관련 차관회의를 중심으로 범정부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사정 조율 업무에 관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표적 사정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전방위 사정이다. 정치권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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