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왼쪽)이 7월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로 출근하며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동아DB]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은) 국내 최초 시도이고 국민과 매일 소통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나, 앞으론 감정적 발언이 아닌 절제된 표현이 나와야 한다.”(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 원장)
“지금 같은 소통 방식은 모든 뉴스의 중심에 윤석열 대통령만 서는 것이다. 과거 미국 정치를 혼란스럽게 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른바 ‘트위터 정치’와 다를 바 없다.”(박상병 정치평론가)
‘23일간 질의응답 95회.’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0일 취임 후 최근까지 진행한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도어스테핑·doorstepping) 횟수다. 윤 대통령은 취임 다음 날인 5월 11일부터 곧바로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출근길에 도어스테핑을 시작해 7월 5일까지 총 23일에 걸쳐 진행했다. 취임 후부터 7월 7일까지 휴일과 공휴일을 제외한 근무일 41일 가운데 23일(56%)간 진행해 이틀에 한 번꼴로 도어스테핑에 나선 셈이다.
이틀에 한 번꼴… 문답 시간 평균 2분 안팎
도어스테핑이란 흔히 대통령이나 총리 등 국가 지도자가 집무 공간을 오갈 때 기자와 간단하게 문답을 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영국, 일본의 대통령이나 총리가 보이는 언론 대응 방식 중 하나다. 한국 정치사에서는 윤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을 선보인 첫 대통령이다. ‘주간동아’는 한국 정치사에서 윤 대통령이 처음으로 시도한 도어스테핑을 전수조사한 뒤 그 특징과 의미를 분석하고 향후 개선점을 찾아봤다.지금까지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은 출근시간대인 오전 8시 30분부터 9시 사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 1층 로비에서 열렸는데, 해외 순방이나 지방 출장 등 특별한 일정이 있는 날에는 진행되지 않았다. 윤 대통령과 기자들의 문답 시간은 평균 2분이었고, 횟수를 거듭할수록 길어지는 추세다. 가장 짧은 도어스테핑은 5월 12일 “청문 보고서가 채택 안 된 장관도 임명할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윤 대통령이 “오늘은 일부만”이라고 답한 내용이다. 20번째 도어스테핑이 진행된 6월 23일에는 5분 50초 가까이 문답이 오가 가장 긴 시간을 기록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이뤄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검찰 인사 △수사기관 독립성 훼손 우려 △행정안전부 경찰국 설치 △경찰 치안감 인사 발표 논란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 단체 활동 중단과 관련한 문화예술인 병역 특례 등 5가지 질문에 비교적 상세히 답했다.
도어스테핑의 장점은 정부 주요 정책이나 정치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견해와 의중을 직접적으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고금리와 가계부채 증가 문제에 대해 “고물가를 잡기 위한 전 세계적인 고금리 정책에 따른 자산 가격 조정 국면”이라면서 “우리 경제 정책 당국이라고 해서 근본적 해법을 내긴 어려우나 리스크 관리를 해나가야겠다”(6월 21일)는 기조를 밝혔다. 그간 대통령이 구체적 언급을 피하던 국제관계에 관한 의중도 도어스테핑에서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기술 협력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대해 “인도·태평양 역내에서 경제·통상과 관련한 광범위한 룰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면서 “거기에 우리가 당연히 참여해야 되는 것이고 그 룰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빠지면 국익에도 피해가 많이 갈 것”(5월 23일)이라고 가입 의사를 밝혔다.
때론 도어스테핑에서 강한 어조로 정국을 돌파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6·1 지방선거 이틀 후인 3일엔 “지방선거 결과 국정운영 동력이 확보됐다는 평가가 많다”는 취재진의 말에 윤 대통령은 “지금 집 창문이 흔들리고 마당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거 못 느끼느냐”면서 “지금 우리 경제위기를 비롯한 태풍 권역에 우리 마당이 들어왔다. 정당의 정치적 승리를 입에 담을 상황이 아니다”라며 경제위기 해결을 우선시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정부 요직에 잇달아 검찰 출신 인사가 임명된 것을 두고 논란이 있자 “권영세(통일부 장관), 원희룡(국토교통부 장관), 박민식(국가보훈처장)같이 벌써 검사를 그만둔 지 20년이 다 되고 국회의원을 3선, 4선 하고 도지사까지 한 사람을 검사 출신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어폐가 있지 않느냐”면서 “필요하면 또 해야죠”(6월 9일)라며 정면 돌파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국민 궁금증 해소… 장점이 더 많아”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도입 자체는 신선한 시도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 원장은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이) 국내 최초 시도이고 국민과 매일 소통한다는 점에선 바람직하다”면서 “상당히 어렵고도 중요한 시도를 하고 있는 대통령의 용기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도어스테핑은 기자의 질문을 통해 국정 전반에 대한 국민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단점보다 훨씬 많다”고 말했다. 다만 홍 교수는 “정치인 출신이 아닌 윤 대통령이 구체적인 말하기 방식이나 정치적 맥락, 팩트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불쑥 내뱉는 형태로 (도어스테핑이) 이뤄지는 점은 아쉽다”고 평했다.국가 지도자의 도어스테핑은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 먼저 자리 잡은 정치문화다.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가 기자회견장과 같은 층에 있는 백악관의 특성상 미국 대통령과 기자들의 접촉은 빈번한 편이다. 즉흥적 메시지 전달을 선호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개인 공간에서도 도어스테핑에 나섰다. 2017년 8월 당시 북한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성공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에 있는 자신의 골프클럽에서 “북한이 미국을 위협하면 지금까지 전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화염과 분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경한 대북 메시지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는데, 이 또한 도어스테핑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보리스 존슨 총리를 비롯한 영국 역대 총리들도 공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문 앞에서 도어스테핑을 진행했다.
‘부라사가리’(ぶら下がり: 매달리기)는 일본판 도어스테핑이다.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도입한 이후 일본 정치문화로 자리 잡았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는 “고이즈미 전 총리는 비주얼 측면을 강조하는 ‘극장식 정치’를 통해 틀에 박힌 수상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였다”며 “부라사가리의 기본 취지는 사전에 질문을 전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총리에게 현안을 바로 묻는 것으로, 답변이 짧게 끝나더라도 (총리의) 표정이나 태도 등 액션이 주목받았다”고 설명했다. 하 교수는 “고이즈미 전 총리는 파벌이나 자유민주당 조직보다 대중적 인기를 중시했기에 이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펼쳤다”면서 “(부라사가리가) 당시 새로운 형태의 정치문화로 각광받아 일종의 관례로 자리 잡았으나 구체적 내용은 각 총리의 스타일이나 그날그날 정치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다른 나라와 한국의 도어스테핑에는 차이점도 있다. 도어스테핑 외에도 국가 지도자와 취재진 간 빈번한 접촉이 가능한지 여부가 핵심이다. 최진 원장은 “백악관에선 대통령이 필요하면 수시로 기자실로 직접 가 언론과 소통하기에 도어스테핑 비중이 그다지 크진 않다”면서 “이와 달리 현재 한국에선 (도어스테핑이) 대통령실 출입 기자가 대통령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창구”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에 기자들은 짧은 시간에 임팩트 있는 질문을 던지는 반면, 대통령은 그것에 대해 답하거나 어떤 때는 답을 피하기도 해 자칫 국민에게 무성의한 인상을 주고 설화가 일어날 여지도 크다”고 설명했다. 일본서도 내각 수뇌부와 언론의 소통 기회가 부라사가리만은 아니다. 총리 보좌기구인 내각관방의 수장이자 정부 대변인 격인 관방장관이 매일 오전·오후 두 차례 정례 기자회견을 한다. 하 교수는 “국회 회기 중엔 심의 과정에서 총리와 여야 의원 간 훨씬 더 긴 시간 답변이 오가므로 부라사가리가 (일본 총리의) 유일한 소통 방식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보라인 정상적으로 움직여야”
새로운 시도에도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은 회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논란이 커지는 모양새다. 초반의 신선한 이미지가 점차 상쇄되는 가운데 대통령의 일부 발언이 구설에 오른 것이다. 대통령 부인을 보좌하는 제2부속실 부활에 관한 질문에 답하면서 윤 대통령이 “(내가) 대통령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6월 15일)라고 말한 대목이 논란을 빚었다. 윤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에서 가장 많은 문답이 오간 인사 문제를 두곤 “과거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는가”(6월 8일), “이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는가”(7월 5일)라며 지난 정부에 견줘 정당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발언으로 정부 내 불협화음이 노출된 경우도 있다. 치안감 인사 발표를 놓고 행정안전부와 갈등을 빚은 경찰청에 대해 “어떻게 보면 국기문란”(6월 23일)이라며 격앙된 태도를 보이거나, 고용노동부(노동부)가 내놓은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을 두고 “노동부에서 발표한 것이 아니고 (추경호) 부총리가 노동부에 민간연구회라든가 이런 분들 조언을 받아 노동시간의 유연성에 대해 좀 검토해보라고 얘기한 상황” “아직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발표된 건 아니다”(6월 24일)라고 언급한 것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도어스테핑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홍성걸 교수는 “윤 대통령이 아직 정치나 소통 방식에서 국민적 눈높이에 비해 취약한 것으로 보인다”며 “대통령실 차원에서 예상 질문이나 대통령의 응답 포인트를 정리하는 등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진 원장은 “도어스테핑은 대통령이 출근길에 기자와 사적으로 만나 현안에 관해 몇 마디 나누는 것이 아닌, 국민에게 (대통령의) 현안 구상을 알리는 중요한 공적 자리”라면서 “(도어스테핑을) 임기 내내 할 것인지, 계속한다면 지금 같은 방식으로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어스테핑을 일주일에 한 번 할지, 혹은 기자들과 사전 논의를 거쳐 주제를 정해 정기적으로 문답할지 등 구체적인 소통 방식을 다시 정해야 한다”는 게 최 원장의 생각이다.
도어스테핑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대통령의 소통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이 신선한 시도라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대통령실과 각 정부 부처 공보라인이 정상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오면 사전에 관계 부처와 소통한 결과를 국민에게 전달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책임장관제’를 시행하겠다고 말한 만큼 현안이 생기면 대통령이 아닌 주무부처 장관이 나올 필요도 있다. 대통령이 그때그때 자신의 느낌만으로 얘기하면 장관이나 대변인의 말이 시시해 보이기 십상이다. 국정 방향의 로드맵을 차근차근 만들어가고 그 과정에 다양한 부처의 견해가 반영된 내용을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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