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4월 2일 서울 종로구청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뉴스1]
‘종합선물세트’ 내놓았으나…
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반값 공약을 연거푸 발표했다. 민주당이 선거 때 자주 활용하던 무상 또는 반값 공약의 후속 시리즈다. 대표적인 것이 ‘반값 아파트’다. 국유지나 시유지를 활용한 토지임대부 방식으로, 향후 5년 동안 공공분양주택 30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박 후보는 선거 막바지인 4월 2일 ‘반값 통신비’ 공약을 발표했다. 서울시 만 19~24세 이하 청년에게 매월 5기가바이트의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 바우처를 지급하겠다는 내용이다. 전날은 ‘반값 교통비’ 공약도 발표했다. 만 19~24세 이하 청년에게 약 40% 할인된 요금으로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한 정액권 서울청년패스를 발급하겠다는 것이다. 모두 청년층을 겨냥한 공약이었다.
박 후보는 3월 19일 서울시민 인당 10만 원의 보편적 재난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울시장 당선 후 1호 결재로 서명하겠다고 약속한 공약이다. 1조 원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국민의힘 오세훈 당시 후보가 3월 24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포퓰리즘 표현이 너무 점잖아 돈퓰리즘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고 비판하자 박 후보는 다음 날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그만큼 그 공약이 아프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서울시에 1조3500억 원가량의 잉여 세금이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관련해 민주당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 공약을 내걸었다. 빛의 속도로 입법을 추진해 보궐선거를 한 달여 앞둔 2월 26일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개문발차(開門發車) 수준이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겼는지 민주당 김영춘 후보는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을 연결하는 메가시티 구축과 돔야구장 건설을 공약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힘을 실어줬다. 문 대통령은 2월 25일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 보고’ 행사에 참석했고, 가덕도 신공항 건설 예정지까지 방문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묵은 숙원이 하루라도 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조속한 입법을 희망한다”며 “정부도 특별법이 제정되는 대로 관련 절차를 최대한 진행하고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드린다”고 했다.
김 후보도 박 후보 못지않게 다양한 반값 공약을 선보였다. 먼저 3월 4일 청년과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반값 주택’ 1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땅값은 지불하지 않고 주택값만 지불하면 30년을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내용이다.
김 후보는 3월 30일 어르신을 위한 ‘반값 택시’와 ‘반값 극장’ 공약도 내놨다. 전국 최초로 중년위기수당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뿐 아니다. 4월 1일 부산시장에 당선하면 1년 안에 전체 부산시민에게 지역화폐 ‘동백전’으로 10만 원씩을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매표는 여당이 자주 활용하는 선거 전략이다. 국민의힘도 여당 시절 마찬가지였지만 이번처럼 총체적이고 대규모적으로 활용하지는 않았다. 민주당의 이번 매표 전략은 흔히 하는 말로 ‘종합선물세트’에 가까웠다.
민주당은 매표 전략에 비방전까지 섞었다. 네거티브는 선거 때면 등장하는 약방의 감초다. 이번에는 탁도(濁度)가 달랐다. 비방전으로만 치른 선거라는 느낌까지 들 정도다. 대선 전초전이라지만 과했다.
비방전은 통상적으로 불리한 후보 측에서 제기한다. 앞서 가는 후보는 굳이 비방전을 펼칠 이유가 없다.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은 스스로에게도 부정적 인식을 준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비방전을 주도한 것은 민주당과 소속 후보들이었다. 결국 민주당은 선거에서 패했다. 1년 전 총선에서 압승해 180석을 차지한 거대 여당답지 않은 이례적 행보다.
정책 토론이 사라졌다
비방전의 최대 폐해는 정책 실종이다. 누가 시정을 더 잘 운영할지에 대한 평가가 밀려났다. 선거는 덜 나쁜 후보자를 선택하는 과정으로 변질됐다. 유권자는 차악의 선택을 강요받았다. 차악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도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것과 타율적으로 강요받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선거는 마쳤지만 후과(後果)가 우려스럽다. 매표 전략에 비방전을 뒤섞은 비빔밥 선거전이 반복되면 한국 민주주의는 발전할까. 사회적 불평등은 어떻게 될까. 국민 인식에 미치는 악영향도 문제다. 매표 전략과 네거티브전을 당연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매표 전략과 비방전은 ‘정치 적폐’이다. 한국 선거 개혁의 역사는 ‘돈 봉투와의 전쟁사’였다. 매표 전략은 선거를 거치며 나날이 업그레이드됐다. 최근 매표 전략이 과거와 다른 점은 돈 봉투를 직접 전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거 전에 지급하지도 않는다. 선거가 끝난 후 유권자에게 현금성 혜택을 부여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박 후보가 공약했던 10만 원 재난위로금 역시 매표 행위가 아닐까. 이는 도로나 교량 건설 등과 차원이 다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승리하면서 공약은 실현되지 못했다. 현금성 혜택을 투표일 직전 공약으로 내놓는 것이 온당한지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또는 국회 차원의 공론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