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를 포함해 생태운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10여명의 사람들이 지난해 9월 핀드혼을 비롯한 해외 환경공동체를 방문하며 고민했던 것은 ‘이런 식의 기준이 적용되는 사회가 과연 제대로 된 사회인가’라는 의문이었다. 196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공동체운동은 바로 이런 고민에서 시작됐다.
영국 스코틀랜드 북동쪽 포레스(Forres)역에서 내려 자동차로 약 10분, 비행기로는 인버네스 공항에 도착해 약 1시간을 달려가면 핀드혼만(灣)이 있다. 홍합과 자개가 지천으로 깔린 해변 위쪽에 핀드혼 공동체가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 있다. 모래언덕을 넘어서면 북쪽으로 모레이만과 북해로 이어지는 바다가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머나먼 땅 한국에서 온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핀드혼 사람들과 함께 둘러본 마을 풍경은 우선 그 건축부터 모습이 달랐다. 이곳에서는 인근 지역에서 얻은 독성 없는 자연재료만 사용해 집을 짓는다. 외형적으로는 유럽 전통의 목조건축을 지향하고 있지만, 지붕에는 최대한의 에너지 효율을 위해 잔디를 심고, 단열을 위해 3중 유리창을 사용하는 등 인공적인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에너지도 75kw급 풍력발전기를 이용해 20%의 전력을 충당하고 태양전지 등 재활용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28%에 달했다. 수생식물과 미생물, 박테리아를 이용한 하수처리 시설 역시 하루 300명분의 생활오수를 처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농장에서 지켜본 재배방식은 철저한 무농약 자연농업이다. 생태적으로 건강한 공간을 꿈꾸며 그린 모든 것, 한국에서는 책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계획들이 그곳에서는 현실로 존재하고 있었다.


1년 365일 교육만 받는 것일까. TV도, 록 음악도, 화끈한 액션영화도 찾아보기 힘든 이 조용한 마을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우리를 유난히 반갑게 맞아준 한 마을 주민은 “그런 것이 없어도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교육이라 해도 게임과 노래, 춤을 통해 이뤄지다 보니 오락과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것. 아예 게임 개발 연구팀이 별도로 있어 다양한 오락을 연구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우리나라의 강강술래처럼 다같이 손 잡고 추는 ‘영적인 춤’ 역시 마음에 오래 남았다. ‘바구니 짜기 춤’이라고도 하는 이 춤은 옆사람 건너 사람의 손을 잡아 촘촘해진 원에서 조금씩 움직이는 춤이었다. 참가자의 상당수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경험한다. 고요한 분위기에서 부른 노래와 춤은 정말 사람의 마음을 고요하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격정적이게 했다. “초기의 에일린 캐디와 도로시는 ‘자연의 내면의 소리’와 교감하는 능력이 있었고, 이를 통해 작물과 가축에도 놀라운 영향을 주곤 했지요.” 방문객을 놀라게 하는 경험들은 그렇게 계속됐다.

핀드혼은 그 자체가 모범적인 생태공동체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들은 생태마을을 “생태적·경제적·문화적·정신적으로 지속 가능한 인간 정주지”라고 정의하고 있고, 이러한 모델을 농촌과 도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막론하고 모든 형태의 인간 거주지에 적용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한국사회의 시민운동 역시 ‘반대’의 운동만으로는 한계에 이른 것이 아닐까. 하나의 난개발이나 오염을 저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새로운 대안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고 그 씨앗을 만드는 작업을 위해 핀드혼을 비롯한 생태공동체 프로젝트들은 진지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핀드혼을 떠나면서 우리 일행의 마음에 남은 가장 큰 화두는 바로 그것이었다.